‘100% 환불‘ 계약 취소냐 ’일부 손배‘ 불완전 판매냐…헬스케어 펀드는 ‘불완전 판매’ 결론 나 시끌
독일 헤리티지펀드는 독일 정부가 문화재로 지정한 ‘기념물보존등재건물’을 현지 시행사인 저먼프로퍼티그룹(GPG)이 매입‧개발해 수익을 내는 구조로, 이 개발 사업에 투자한 펀드를 기초자산으로 한 상품이다. 하지만 독일 정부가 건물 인허가를 미루면서 GPG가 파산해 사업은 전면 중단됐다. 판매사들은 시행사인 GPG로부터 수익금을 받지 못했고 2019년 7월부터 만기 상환이 중단됐다. 헤리티지펀드 판매사는 신한금융투자, NH투자증권, 우리은행, 하나은행, 현대차증권, SK증권 등이 있다. 이들은 2017년 4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펀드를 판매했다. 헤리티지 펀드의 환매 중단 규모는 2020년 말 기준 5209억 원으로 라임펀드에 이어 두 번째 규모다.
앞서 라임·옵티머스 등 다른 펀드들의 분쟁조정 과정을 보면 사전간담회 후 일 주일 내 분조위를 개최하는데 독일헤리티지펀드만 사전간담회 후 두 달이 넘게 분조위가 미뤄지고 있다. 피해자연대는 “법률 검토까지 마치고 계약 취소 사유가 명백함에도 5대 사모펀드 중 독일헤리티지펀드만 분조위 개최가 지연된 상황에 대해 금감원은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해명을 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피해자들은 헤리티지펀드 분쟁조정에 대해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임원효 독일헤리티지펀드 피해자연대 고문은 “가입 당시 피해자들은 사모펀드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시행사의 자기자본이 10억 원대에 부채는 1000억 원을 육박해 사실상 부도상태”라고 말했다. 임원효 고문은 “이런 사실을 은행·증권사는 투자자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서류상 명시하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피해자들은 해당 펀드의 기초자산이 실재하지 않았고, 관련 시행사도 이미 2015년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부실회사라는 점을 들어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 결정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계약 취소 결정이 나면 투자자들은 원금 100%를 돌려받을 수 있다. 반면 ‘불완전 판매’로 결정되면 100%가 아닌 일부 금액만 손해배상 받는다. 5대 사모펀드 분쟁조정 중 라임과 옵티머스 펀드는 계약 취소로, 디스커버리와 이탈리아헬스케어 펀드는 ‘불완전 판매’로 결론난 바 있다.
헤리티지펀드 분쟁조정만 남겨놓은 상황에서 이복현 금감원장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이복현 원장은 취임 당시 사모펀드 사태에 대해 “개별 사모펀드 사건은 종결되고 수사당국으로 넘어간 것으로 이해한다”며 “다만 여러 가지 사회 일각의 문제제기가 있는 것도 알고 있다. 시스템을 통해 사건을 다시 볼 여지가 있는지 점검하겠다”며 사모펀드 사건 재조사 여지를 남기며 사모펀드 사태 피해자들의 기대감을 모았다. 하지만 이복현 금감원장 취임 후 처음 열린 이탈리아헬스케어 펀드 분조위 결정이 ‘불완전 판매’로 나오면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이복현 원장이 사모펀드 사태를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피해자들은 기대를 많이 했다”며 “그런데 계약 취소가 아닌 손해배상으로 결론이 나버리니까 피해자들이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복현 금감원장 취임 후 열린 첫 사모펀드 사태 분조위에서 이 같은 결과가 나와 헤리티지 분쟁조정도 불완전 판매에 대한 손해배상 결론이 나올 수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탈리아헬스케어 펀드 분쟁조정은 이복현 금감원장이 취임하기 전부터 이미 많이 진행됐던 상태라 분쟁조정 결과에 이 원장이 크게 관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분쟁조정위원 중 한 명이 금융회사 사외이사이자 은행 법학회의 기업이사였기 때문에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려워 분조위 위원에서 배제해달라고 금감원에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온 금감원장이고, 윤 정부의 국정기조는 공정과 상식이다. 은행과 이해관계가 얽힌 분조위 위원이 조정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불공정한데 이 원장이 헬스케어 분쟁조정 결과에 책임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분쟁조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조정위원이 은행‧금융사 등과 연관된 사람이었음에도 교체하지 않고, 손해배상으로 결정된 것으로 보아 헤리티지펀드 분쟁조정에서도 이 같은 일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더불어 사모펀드 사태가 은행‧증권사의 경영과 사업 진출 등에도 악영향을 미쳐 이를 고려해 분쟁조정 결과가 은행‧증권사에 유리하게 나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섣불리 판단하기는 이르다. 이 원장은 검찰 재직 당시 경제‧금융 범죄 수사 전문가로 이명박 전 대통령 횡령‧뇌물 사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경영권 불법승계 사건 등을 수사하며 ‘재계 저승사자’로 불렸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 삼정전자 경영권 불법승계 사건과 관련해서는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에도 불구하고 이 부회장의 기소를 강행하기도 했다. 당시 이 원장은 좌천을 이틀 앞두고 있는 와중에 이 부회장의 기소를 추진했다. 또 2017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부장검사로 재직 당시에는 법원의 영장 기각에도 굴하지 않고 세 차례에 걸쳐 구속영장을 청구해 결국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구속시켰다. 이 원장의 검사 시절 모습은 검찰 내에서 단호하고, 냉정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검찰 재직 당시 이 원장의 행보나 평가로 보았을 때 분쟁조정에서 은행‧증권사 등 금융권의 경제 사정을 봐주거나 제대로 된 조사 없이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익명을 요청한 모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독일 헤리티지펀드 피해자들이 많고 규모가 크기 때문에 분쟁조정위원회에서 신중하게 접근하려 하는 걸로 보인다”며 “이복현 금감원장이 과거 경제 관련 사건을 많이 맡았던 검사 출신이다 보니 이런 사건에 대해 소홀하게 판단하는 스타일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올해 금감원장이 바뀐 후 금리 인하 요구권에 대해 많이 홍보를 해 금리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하고, 취약차주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금융 소비자 위주로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헤리티지펀드 관련 자료는 계속 조사 진행 중”이라며 “분쟁조정 기일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며 조속하게 처리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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