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치료나 경찰 신고 대상 사건들이 예능 소재로…‘결혼하지 않겠다’는 평 넘치고 2차 피해 우려도
최근 시청자의 눈총을 받는 프로그램은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과 MBN ‘고딩엄빠2’가 대표적이다. ‘갈등 해결’을 이유로 내밀한 부부 사이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정작 문제의식을 나누거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는 실패하는 분위기다. 회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자극적인 소재로 이야기를 채워 눈총을 받고 있다.
SBS ‘동상이몽-너는 내 운명2’ 등 연예인이나 유명인 부부가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콘셉트의 부부 예능은 여전히 인기를 끌지만 최근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른 이들 프로그램은 일반인들이 출연한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TV 출연 이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프로그램에서 공개한 부부의 갈등이 또 다른 문제를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다.
#이혼소송에서나 볼 법한 사연
올해로 결혼 5년 차를 맞은 부부가 있다. 아내는 임신 6개월째이던 몇 년 전 남편으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했다고 고백한다. “남편이 때릴 만큼 다 때렸다”며 “임신 6개월이면 배가 많이 나온 상태였는데 무방비로 폭행을 당했고 얼굴이 멍이 생겼다”는 충격적인 고백까지 한다. 가정폭력은 심각한 범죄 행위인데도 아내의 충격적인 고백이나 이를 듣는 남편의 모습은 그저 덤덤하다.
70대 아내는 34년 동안 외도를 멈추지 않은 남편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 자녀 양육비 등 생활비도 가져다주지 않아 생활고를 겪었던 과거를 털어놓는 아내 앞에서 남편은 “지난 일을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폭발한다.
쌍둥이 남매를 둔 7년 차 부부는 밤마다 서로를 향해 폭언과 욕설을 쏟아낸다. 혼자 쌍둥이를 키우는 아내는 산후 우울증까지 겪고 있지만 남편은 1년 내내 술을 마셨고,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돌변해 폭언에 이어 폭행까지 가한다.
이혼소송에서나 볼 법한 이런 사연이 낱낱이 공개되는 곳은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오은영 박사가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갈등을 겪는 부부의 일상을 함께 보면서 해결책을 찾아가는 기획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자극적인 내용으로 채워지면서 위험수위를 넘나든다.
부부관계를 왜곡해 묘사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특히 최근 방송된 국제부부의 이야기에서는 남편이 우즈베키스탄 아내를 향해 “돈을 주고 널 사왔다”고 말하는 등 인권에 대한 문제까지 일으켰다. 갈등을 겪는 부모 사이에 낀 자녀들의 모습도 프로그램을 통해 여과 없이 공개되면서 아동 인권 등 2차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시청자 게시판과 각종 SNS(소셜미디어),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을 향해 ‘불편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방송에 출연해 일회성 상담만으로 과연 부부 갈등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를 두고도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부부생활에 폭언과 폭행이 난무하고 외도 등 신의를 저버린 무책임한 일들이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탓에 ‘결혼하지 않겠다’는 시청평이 주를 이룬다.
오은영 박사도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에서는 속수무책이다. ‘금쪽 상담소’ 등 프로그램에서 탁월한 육아 상담 실력을 발휘해 방송가 섭외 1순위로 떠오른 오 박사이지만 여기서만큼은 좀처럼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미 깊은 갈등이 고착된 부부 사이에 오 박사의 솔루션이 크게 힘을 쓰지 못하면서 자극적인 부부 갈등만 나열하는 프로그램에 머물고 있다.
#조작 논란에 휘말린 ‘고딩엄빠2’
10대의 나이에 부모가 된 이들의 각양각색 사연을 다루는 ‘고딩엄빠2’의 수위는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 그 이상이다. 15세 이상 관람 시청등급이 과연 적합한지를 두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16세에 아이를 출산해 입양을 보내놓고 18세에 또 임신한 엄마, 중학생 때 첫째를 출산했고 둘째 아이는 막달까지 임신 사실조차 모르다가 화장실에서 출산한 10대 엄마의 사연이 ‘고딩엄빠2’에 연이어 등장했다. 사이비 종교단체에서 10년 넘도록 성 착취를 당한 피해자의 사연도 있다. 방송에 출연할 게 아니라 병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경찰서에 찾아가야 할 사건들이 부부 예능의 소재로 쓰이고 있다.
‘고딩엄빠2’는 10대에 결혼과 출산, 육아를 경험한 청소년 부모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내용으로 지난 6월 시작했다. 10대에 부모가 된 이들의 책임감과 고민을 리얼하게 담아 화제를 모았고, 시즌2에 돌입했지만 방송 수위는 점차 선정적인 내용으로 치닫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조작 논란에도 휘말렸다. 9월 21일 방송한 ‘남편 없이 못사는 하빈’ 편에 출연한 아내 하 아무개 씨는 “조작 방송”을 주장했다. 남편에게 집착하는 아내의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제작진이 남편에게 일부러 연락 두절 상태를 요구하는 등 인위적으로 상황을 꾸며 갈등을 조장했다는 폭로였다.
이에 ‘고딩엄빠2’ 제작진은 “일정 부분 개입이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출연자들의 행동에 대해 별도의 요구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제작진의 해명이었지만 어쨌든 ‘개입’은 인정한 꼴이 됐다.
폭력성 짙은 소재, 자극적인 설정으로 인해 논란이 가중될수록 어쩔 수 없이 시청률은 반응한다. ‘욕하면서도 보게 되는’ 막장 드라마의 생명력이 이들 부부 예능에서도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의 경우 3~4%대(닐슨코리아 기준)에 머물던 시청률이 최근 자극적인 부부 갈등 소재가 반복되면서 6%대까지 올랐다. ‘고딩엄빠2’ 역시 10월 18일 방송에서 시청률 3%로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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