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계약 파기되고 집주인은 계약금 몰취…피해자 민사 승소했지만 계약금 추심 이어가야
#신탁 해지 전 잔금 입금은 위험
매매계약 시 건축주이자 집주인은 직접 나오지는 않았지만 분양 대리인이 집주인의 주민등록증과 인감증명, 위임장 등을 확인해 주었고 온라인 부동산 중개 플랫폼을 통해 만난 중개인이 해당 빌라를 소개해 주었기 때문에 별다른 의심 없이 계약서를 쓰고 계약금 10%를 입금했다.
계약 당시 부동산등기부등본에는 해당 빌라의 명의가 신탁사로 귀속되어 있었지만, 신탁사에 확인하니 “등기상으로는 소유권이 이전되지만 실제 소유주는 바뀌지 않는다. 명의만 이전되어 있을 뿐 실소유주는 원주인”이라며 “약속된 돈만 들어오면 신탁을 해지해 줄 뿐 일일이 해당 물건에 대한 매매나 임대차 계약 등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탁등기는 집주인 대출에 대한 담보성격이었다.
또 부동산 중개인 역시 “신탁등기는 건축주가 신축빌라를 지을 때 대출을 받아 건물을 올리면서 통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관행으로 잔금 입금 시 신탁을 해지하고 명의이전을 하면 된다”고 일러 주어 그대로 믿었다.
게다가 A 씨가 잔금을 치르기 위해 생명보험사에 대출을 신청할 때도 대출 담당자는 “잔금 날 신탁해지를 하면서 명의이전을 하는 경우는 신축빌라 대출 3~4건 중 1건 정도로 흔한 일”이라고 설명했고 대출도 무리 없이 승인되어 A 씨도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금융권의 대출심사에서 주택담보대출 승인이 났다는 건 계약서와 등기부등본 등 서류상으론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막상 잔금일이 되자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대출사 소속 법무사가 A 씨의 대출금으로 잔금을 치르고 명의이전을 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는데, 분양 대리인이 신탁해지를 먼저 해야 한다며 잔금 입금을 요구했다. 신탁해지와 명의이전을 동시이행 하려던 법무사는 위험 요소가 있어 잔금 입금을 먼저 하라는 집주인의 요구를 거절했고 결국 잔금일에 대출과 명의이전 모두 이루어지지 못했다.
안전한 명의이전을 위해서는 법무사가 절차에 따라 잔금을 치르면서 신탁해지와 명의이전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지만 집주인의 사정으로 당일 신탁해지가 여의치 않게 되었고 A 씨에게 명의이전을 할 수 없게 되자 대출도 보류됐다.
집주인은 신탁해지 준비를 핑계로 잔금일과 명의이전을 차일피일 미루었고 결국 A 씨는 해당 물건에 대해 신탁해지가 불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고 대출도 취소됐다. A 씨는 신탁해지가 불가능하니 계약을 파기하겠다며 집주인에게 계약금을 되돌려 달라고 했지만 집주인과 분양사는 계약파기를 A 씨의 변심으로 인한 것으로 몰아붙이며 계약금을 되돌려 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A 씨는 한편으론 가슴을 쓸어 내렸다. 만약 대출금이 아닌 현금으로 잔금을 치렀다면 잔금까지 입금한 뒤에도 명의이전을 할 수 없어 수억 원의 돈을 사기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중개보조원‧브로커도 많아
A 씨가 부동산 중개인에게 따져 묻자, 부동산 중개인은 “나도 피해자”라며 연락을 두절했다. 알고 보니 온라인 부동산 중개 플랫폼을 통해 만난 중개인은 정식 중개인이 아닌 브로커였고, 자세히 보니 매매계약서에도 부동산 중개인은 쏙 빠져 있고 집주인과 A 씨가 직거래를 한 것처럼 되어 있었다.
공인중개사 과실로 재산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 최대 1억 원까지 손해 배상을 하고 있어 구제를 받을 수 있지만, 이 경우 공인중개사로 오인된 브로커의 소개를 받은 데다 계약서에도 중개사의 이름이 빠져 있어 난감한 상황이 됐다.
공인중개사들에 따르면 “온라인 부동산 중개 플랫폼에는 정식 면허가 있는 중개사 외에도 면허가 없는 중개보조원이나 브로커들도 상당수 활동하고 있다. 고객이 일일이 자격 확인을 하지 않는 점을 노려 공인중개사처럼 활동하지만 사실 무면허 중개인일 뿐”이라고 말하며 주택 계약 시 계약서에 반드시 공인중개사가 들어가 있어야 만일의 상황에서도 구제를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계약서에는 분양사도 쏙 빠져 있었다. 신축빌라 분양 시 분양사는 특별한 자격 없이 건축주 등을 대리해 수수료를 받고 빌라 분양 업무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과정에서 분양 사고가 생기면 분양사 역시 ‘나도 피해자’라며 빠져버리곤 한다. 그러면 분양사에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승소해도 추심 이어가야…
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 A 씨는 전전긍긍하다 결국 집주인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걸었다. A 씨는 재판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설사 A 씨가 잔금일에 잔금을 치르지 못했다고 해도 계약이 파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또 계약서에 이에 대한 특별조항이 없는 한 매수자가 잔금일에 잔금을 치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계약금을 떼이는 것은 아니다.
일단 매매계약이 체결되면 계약이 유지되지 못하는 특별한 사정이 발생하지 않는 한, 양쪽의 합의에 의해 계약이 파기되기 전까지는 매매계약이 유지된다. 계약이 유지되지 못하는 특별한 사정이란 집주인이 제3자에게 집을 양도해 소유권 등기가 이전되는 경우 등이다. 원칙적으로 계약은 쌍방이 계약사항을 모두 이행할 때까지 유지된다.
집주인은 A 씨가 잔금일에 잔금을 치르지 않았다는 점을 들며 A 씨의 귀책으로 계약이 파기됐음을 주장했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법적으론 집주인이 계약금을 몰취할 권리는 없다. 일반적으로는 매매계약 후 잔금일에 잔금을 치르지 못하면 자동으로 계약금을 떼일 수 있다는 통념이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잔금일에 잔금을 치르지 못한 매수인에 대해 매도인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계약 자체가 파기되거나 계약금을 몰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쌍방이 계약서와 다르게 소유권 이전 등기를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이행하지 않고 이행지체를 한다고 해도 계약이 바로 해제되는 것은 아니며 꼭 위약금을 물 필요도 없다.
잔금일에 소유권이전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A 씨의 잔금지급 불이행을 문제로 삼아 계약금을 돌려주지 않은 집주인에 대해 A 씨는 결국 재판에서 이겼지만, 승소해도 저절로 계약금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판결문을 가지고 추심을 이어가야 하는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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