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 사태 전말
이번 사태 발단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는 2020년 11월 강원중도개발공사 사업 자금 조달을 위해 특수목적법인(SPC) 아이원제일차를 설립하고 2050억 원 규모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를 발행했다. 발행 주관사는 BNK투자증권이 맡았다. 강원도가 지급 보증을 서면서 아이원제일차가 발행한 ABCP는 최고 신용등급 A1을 받았다. 당시 발행된 ABCP는 이른바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자금 경색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강원중도개발공사는 ABCP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올해 3월 레고랜드를 완공하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강원중도개발공사가 ABCP 1차 만기일(9월 29일)에 맞춰서 빚을 갚을 수 없는 재정 상황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2021년 기준 강원중도개발공사 자본은 125억 원, 부채는 2587억 원이다. 부채율이 2000%에 달한다. 2021년 재무감사보고서에선 건설 중인 자산(레고랜드)의 회수가능가액에 대한 충분하고 적합한 증거를 입수할 수 없었다며 회계법인으로부터 한정의견을 받기까지 했다.
강원중도개발공사 대주주인 강원도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도 녹록지 않았다. 올해 강원도 실질부채는 8193억 원가량이다. 재정자립도는 2021년 28.3%로 17개 시도 중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7월 1일 취임한 이후 연일 긴축 재정 기조를 강조한 이유다. 8월 17일 김진태 도지사는 강원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 11월 레고랜드로부터 넘어올 2050억 원의 청구서가 있다. 다 합하면 실질채무가 1조 243억 원”이라며 임기 내에 1조 원 규모의 채무를 60%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내년 11월 ABCP 최종 만기 전까지 투자유치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 상환 계획을 마련하겠다고도 덧붙였다.
강원도가 마련한 다양한 방안 중 하나가 레고랜드 인근 부지(약 41만 7000㎡) 매각이다. 부지 매각 등으로 올릴 수 있는 수익은 최대 4130억 원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ABCP 상환을 포함해 지출액이 4542억 원인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412억 원의 적자가 발생한다. 나머지 적자는 강원도 예산으로 메워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강원도는 1차 부지 매각 계획을 전면 수정하며 기업회생으로 방향을 틀었다.
강원도는 “강원중도개발공사 지분을 44%만 보유했기 때문에 도비로 지원할 수 없었다”며 기업회생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강원도 핵심 관계자는 “책임을 지고 도비까지 지원해주는 건 지분율이 50%가 넘어야 한다. 강원중도개발공사 자산 매각 상황도 제대로 공유하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자산 매각 상황을 공유해줬고, 이 상태로 가면 내년도 말에는 100% 부도였다. 그래서 부동산 가치를 고려해서 기업회생 이후 다시 부지를 매각해서 빚을 갚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실제 공시지가도 올랐다”고 말했다.
강원도는 기업회생 계획을 BNK투자증권에 설명했고 동의를 구한 뒤 발표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9월 28일 아이원제일차는 2050억 원 규모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상환이 불가하다고 투자기관들에 통보했고, 이어 강원도는 법원에 강원중도개발공사를 기업회생 신청해 강원중도개발공사가 보유한 하중도 레고랜드 인근 부지(약 41만 7000㎡)를 매각해 빚을 갚겠다고 밝혔다. 강원도는 10월 중 회생 신청을 하면 내년 4∼7월쯤 법원의 판단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기업회생 발표 이후 시장에서는 불안감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강원도가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했다고 받아들이면서다. 9월 30일 한국신용평가와 서울신용평가는 아이원제일차 ABCP 신용등급을 ‘A1’에서 ‘C’ 등급으로 하향 조정했다. 한국신용평가는 하향 검토 대상으로까지 등록해 추가 하락 가능성을 열어뒀다. 10월 3일 강원도는 시장에서 나오는 불안감을 차단하고자 “9월 28일 회생신청이 보증채무를 회피하거나, 채무를 경감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선언했다”며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런데 돌연 10월 4일 BNK투자증권이 협의도 없이 ABCP를 부도 처리했다는 게 강원도 측 주장이다. 지자체가 보증을 선 채권이 부도 처리되자 시장에 돈줄이 마르게 되는 ‘돈맥경화’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10월 13일 기획재정부가 “회사채·기업어음(CP) 시장 지원 프로그램 매입 여력을 6조 원에서 8조 원으로 확대하겠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에 유동성 위기는 진정되지 않았다. 결국 10월 23일 정부는 50조 원 규모의 긴급 유동성 공급대책을 추가로 내놓게 됐다.
앞서의 강원도 핵심 관계자는 “기업회생을 신청하기 위해선 채권단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BNK투자증권에 회생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점 설명했고, 이에 대해 동의했다. 9월 28일 진행된 기자회견 일정까지도 다 사전에 공유했다. 동의도 없이 어음 만기 전날에 회생 신청했다는 건 말도 안 된다”며 “강원도가 금융 시장에 미칠 여파를 고려하지 않고 기업회생 신청했다고 하는데, 금융권 일원인 BNK투자증권에 책임이 없는지 되묻고 싶다. 금융 시장에 생기는 파장 잘 아시면서 왜 강원도와 상의도 없이 기업회생 계획 발표한 지 일주일도 채 안 돼서 어음을 부도 처리했나”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BNK투자증권이 ‘강원도에서 회생 신청하면 부도 처리할 수밖에 없다’라고 전화로라도 한 번만 알려줬다면, 기업회생을 뒤로 미루고 빚부터 갚았을 것이다. 우리로선 뒤통수를 맞았다”며 “부도 이후에는 BNK투자증권 역할이 끝났기 때문에 채권단 입장에선 돈을 받으려면 지급 보증을 선 강원도한테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10월 27일 정광열 강원도 경제부지사도 강원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원도는 강원중도개발공사와 BNK투자증권 간 대출연장에 대한 사전협의를 만기일(9월 29일) 1개월 전부터 진행해왔고, 강원중도개발공사가 8월 26일 4개월 연장에 필요한 선취 이자 비용 38억 원을 납부한 사실도 확인했다”며 “이미 선취 이자비용도 납부됐으므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내년 1월 29일까지 연장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BNK투자증권 관계자는 “강원도가 기업회생 발표한 것을 언론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이자를 받은 것은 협의 과정의 기본이다. 이자를 냈다고 만기가 연장되는 건 아니다”며 “만기일에 빚을 갚지 않았다. 채권단은 강원도와 협의하지 않고서 단독으로 채권을 부도 처리해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 우려 나온 까닭
레고랜드 사태는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야는 사태 책임 소재를 각각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와 김진태 현 지사에게 돌리며 공방을 벌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 당시 무분별하게 시장에 유동성을 푼 것이 레고랜드 사태로 이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0월 24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이번 사태는 (전임 정권 당시) 재정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사업을 벌인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레고랜드 사태를 두고 “제2의 IMF 위기”라며 총공세에 나섰다. 10월 26일 이재명 대표는 최고위에서 레고랜드 사태를 두고 “무능·무책임·무대책 ‘3무 정권’의 본모습을 드러낸 대표적 사례”라며 “이런 엉터리 정책을 하는 김진태 도지사도 문제지만, 그것을 조정해야 할 정부가 방치한 상태에서 지금까지 심각한 상황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다”고 말했다. 이날 박홍근 원내대표는 “어설픈 정치 셈법으로 전임 (최문순) 지사 지우기에 나선 무지의 김진태 지사가 만든 대혼돈”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김진태발 금융위기 사태 진상조사단’(가칭)도 꾸렸다.
일각에선 금융권이 의도적으로 부도 처리를 해서 정부 지원을 이끌어낸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지자체 한 관계자는 “정부는 긴축 재정에 나섰고,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인해 시장에 돈줄이 마르고 있다. 금융권이 불안을 의도적으로 조성해서 정부 지원 50조 원을 이끌어낸 것 아닌가”라며 “전, 현 도지사한테 책임을 묻는 정치권 공방이 벌어지는 가운데서도 금융권한테는 누구 하나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금융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재점검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의 BNK투자증권 관계자는 “빚을 안 갚아서 부도 처리했을 뿐”이라며 이 같은 주장을 일축했다.
자금 경색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 금리라는 분석도 있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신용 스프레드 확대는 신용위험에 대한 부담보다는 긴축 통화정책에 따른 유동성 부족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금융당국의 시장 안정화 방안이 큰 역할을 하기는 힘들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금리 변동성 완화 및 금리 하향 안정화가 중요하다”고 했다.
정부의 시장 개입이 금융사의 도덕적 해이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지난 몇 년간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로 상당한 이익을 챙겨온 금융사가 위기에 몰리자 정부에서 지원을 해줬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정책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도 뒤를 잇는다. 한쪽에서는 금리를 높이며 시중 자금을 조이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돈을 풀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10월 26일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번에 부동산 PF 관련돼서 금융기관들이 평상시에는 레버리지를 일으켜서 과도한 수익 그리고 성과급을 받아가고 위기가 찾아왔을 때 정부에게 SOS를 친다라는 그런 비판이 있었다”며 “평상시에는 금융기관들이 돈을 많이 벌다가 위기가 조금 찾아오니까 도와 달라. 정부는 도덕적 해이와 그리고 금융 안정 사이에서 좀 고민을 했던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문 열었는데…레고랜드의 부침
덴마크 장난감 업체 ‘레고’는 1999년 경기도 이천에 2억 달러를 투자해 60만㎡(20만 평) 규모의 레고랜드를 조성하려 했다. 하지만 수도권에선 개발면적을 6만㎡ 이내로만 해야 한다는 규제로 인해 투자를 철회했다. 이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뒤 강원도가 춘천에 레고랜드 유치를 다시 추진했다. 지난 2009년 강원도와 영국의 멀린엔터테인먼트그룹은 레고랜드 설립 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당시 멀린그룹이 토지 무상임대 기간을 100년으로 요구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연간 200만 명 이상 관광객, 일자리 1만 개 창출, 지방세수 연간 50억 원 이상 증대, 도시 브랜드 가치 상승 등의 기대 효과에 가려졌다.
2011년 9월 1일 강원도와 멀린그룹은 레고랜드 개발사업에 관한 투자합의각서(MOA)를 체결했다. 당시 레고랜드를 춘천시 중도 유원지 일대 도·시유지 132만 2000㎡에 2015년까지 5683억 원을 투자해 레고랜드 테마파크를 완공하겠다고 밝혔다. 2012년 8월 강원도는 강원중도개발의 전신인 엘엘개발(LL Development)을 설립했다. 2013년 10월 강원도는 멀린그룹과 본 협약을 맺었다.
이후 엘엘개발은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210억 원을 대출받았다. 그런데 2014년 레고랜드 공사 전 발굴조사에서 선사시대 유적지가 발견되면서 공사 중단 위기를 맞았다. 멀린그룹은 레고랜드 공식 개장일을 2017년 3월로 미루기로 결정했다. 이후 멀린그룹은 강원도에 자금을 더 요구했고, 엘엘개발 대출금은 2050억 원으로 늘어났다. 도는 이를 지급보증했다.
현재 국민의힘은 최문순 전 도지사가 2014년 도의회 승인 없이 대출금을 10배로 늘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10월 25일 최 전 지사는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팩트가 아니다. 도의회 승인 없이는 2050억 원을 지급보증할 수 없다”며 “회의록도 남아있고, 도의회뿐 아니라 행정안전부 중앙투자심사위원회의 승인도 받았다”고 반박했다.
2015년에는 검찰의 뇌물·정치자금 수사로 곤욕을 겪었다. 2016년에는 사업부지 특혜 매각 논란까지 불거졌다. 각종 논란 끝에 2018년 말 멀린그룹 2200억 원, 엘엘개발 800억 원 등 3000억 원을 투자하고, 멀린그룹이 직접 개발하는 방식으로 총괄개발협약(MDA)이 체결됐다. 엘엘개발이 직접 추진하던 레고랜드 사업을 멀린그룹으로 사업 주체를 변경한 것이다. 이듬해 엘엘개발은 현재의 ‘강원중도개발공사’로 사명을 변경했다. 각종 논란 끝에 올해 3월 레고랜드는 완공됐고, 5월 5일 어린이날에 정식 개장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