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 앉아 ‘통조림 필로폰 밀반입’ 등 지시…22년형 선고받은 상태라 국내 송환도 불가능
비로소 국내로 밀반입돼 마약 비대면 판매를 활성화시킨 마약 밀반입의 주된 루트를 모두 끊어내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후에도 꾸준히 국내로 마약은 밀반입되고 있다. 그리고 최근 또 다른 동남아 마약왕인 ‘캄보디아 마약왕’의 실체가 드러났다. 더 큰 문제는 그 실체를 알고도 그를 국내로 데려올 수도, 더 이상의 범죄를 중단시킬 수도 없다는 점이다.
10월 26일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국내 필로폰 유통책 8명을 마약류관리법·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검거해 이 가운데 6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해외로 도주한 공범에 대해서는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지명수배를 내렸다.
이번 경찰 수사는 2021년 9월에 한 마약 구매자를 검거하면서 시작됐다. 검거된 마약 구매자에게 마약을 판매한 유통망을 추적한 경찰은 은밀히 국내로 마약이 밀반입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에 경찰은 관세청과 공조해 2022년 4월 18일 국제특급우편으로 국내로 들어온 통조림 8캔을 찾아냈다. 이 통조림에는 필로폰 3kg이 담겨 있었다. 필로폰 3kg의 국내 밀반입을 적발해 압수한 경찰은 해당 유통망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에 돌입해 국내로 밀반입돼 아직 판매되지 않은 필로폰 540g과 범죄수익금 4억 5400만 원을 추가로 압수했다. 이렇게 경찰이 압수한 필로폰 3.54kg은 시가 110억 8000만 원 상당으로 최대 11만 8000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이번에 적발된 마약 밀반입 및 국내 유통의 총책은 60대 남성 송 아무개 씨다. ‘캄보디아 마약왕’으로 불리는 송 씨는 2019년부터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며 꾸준히 국내로 마약을 밀반입시켜온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이후 3년 동안 송 씨가 국내로 밀반입한 필로폰은 경찰이 파악하고 있는 것만 20kg이 넘는다. 시가 약 700억 원 이상으로 무려 70만 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송 씨는 국내에서 유명한 마약 유통책이었다. 마약 전과 10범이 넘고 현재도 마약 밀반입 등의 혐의로 경찰에 1건과 검찰에 4건 등 총 5건의 지명수배가 돼 있다. 2019년 3월 16일 국내 수사기관의 수사망을 피해 동남아시아로 출국해 캄보디아에서 주로 활동해왔다. 이런 까닭에 ‘캄보디아 마약왕’이라 불리는데, 다행히 국내 수사기관과의 공조로 2020년 7월 캄보디아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혐의는 마약류 소지와 밀수출 등으로 징역 22년형이 확정돼 캄보디아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문제는 2020년 7월 이후에도 송 씨가 주도하는 마약 국내 밀반입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검거된 필로폰 3.54kg을 밀반입하려다 검거된 필로폰 유통책의 총책 역시 송 씨로 알려졌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캄보디아와 필리핀 등 일부 동남아시아 국가 교도소의 허술한 수감자 관리 때문이다. 돈만 있으면 수감자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다. 심지어 교도소 수감자가 휴대폰으로 청부살인까지 지시하는 것도 가능한 구조로 알려져 있을 정도다. 이런 틈을 활용해 송 씨는 교도소에서 휴대폰으로 텔레그램에 접속해 마약 밀반입을 진두지휘해 왔다.
송 씨는 교도소에서 자신의 딸과 모친까지 범행에 가담하도록 했다. 2021년 5월에 적발된 헤로인 1.208kg 밀수 사건에선 송 씨 모친이 전달책으로 동원됐다. 이번 범행에선 20대 딸이 가담했는데 경찰은 8월 송 씨 딸 집을 압수수색해 금고에 있는 범죄수익금 3억 3400만 원을 압수해 기소 전 추징보전 조치를 했다.
송 씨 딸은 이 돈이 마약범죄 수익금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다. 경찰에 따르면 송 씨는 아내와 이혼한 뒤 20여 년 동안 딸과도 연락을 끊고 지냈는데 3년 전에 다시 연락이 재개됐다고 한다. 송 씨는 딸에게 그 돈을 사업자금이라며 보관하고 있다가 누군가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현재 경찰은 송 씨 딸을 범죄수익은닉죄로 수사 중이다.
문제는 송 씨가 캄보디아 교도소에 수감돼 휴대폰으로 텔레그램에 접속해 마약 밀반입을 진두지휘하며 불법 마약왕 행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를 중단시킬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송 씨는 2020년 7월 체포돼 캄보디아 교도소에 수감된 뒤 마약 유통 사업을 더 확장해왔다.
국내 송환은 해당 국가의 사법 절차가 끝나야만 가능하다. 징역 22년형의 수감 기간이 끝나야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송 씨 신병을 국내 수사기관이 넘겨받을 수 있다. ‘수형자 이송제도’를 통해 외국에서 범죄를 저질러 수형 중인 국민을 한국으로 이송해 국내에서 잔여 형기를 채우게 만다는 방법도 존재하지만 이런 방식의 외교적 해결 가능성도 크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높은 교도소 철창이 오히려 송 씨를 지켜주고 있다.
관심은 ‘동남아 3대 마약왕’ 가운데 한 명인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동남아 3대 마약왕’이 모두 검거됐지만 유일하게 박왕열만 국내로 송환하지 못하고 있다. 그가 마약사범이자 필리핀 사탕수수밭 살인사건의 주범이기도 해 필리핀 현지 감옥에 수감 중이기 때문이다.
박왕열은 2020년 10월 28일 필리핀 경찰에 검거돼 2022년 5월 필리핀 대법원에서 ‘다량 살인’ 혐의로 단기 57년 4개월, 장기 60년의 징역형이 확정됐다. ‘캄보디아 마약왕’ 송 씨와 같은 상황으로 검찰이 거듭 국내 송환을 시도했지만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박왕열 역시 필리핀 교도소에서 검거되지 않은 마약 유통 조직원들을 통해 여전히 마약 밀반입과 유통을 주도하고 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동남아 마약왕들의 현지 검거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국내 송환까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동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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