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에서 만난 문성근 최고위원은 큰형님이 못다한 일 아우가 해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 |
오전 내내 여러 개의 일정을 소화하고 민주통합당 부산시당 사무실로 들어서는 문성근 최고위원은 자리에 앉자마자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하자”며 담배부터 꺼내 물었다. “담배 냄새가 날까봐 유권자들 만나기 전에는 구강 청결제를 열심히 사용하고 있다”며 너털웃음을 보이는 그의 머릿속은 담배연기처럼 복잡해 보였다. 문 최고위원에게 ‘최근 공천심사위원회 구성을 두고 한명숙 대표 등 당 지도부와 갈등을 빚었던 일’에 대한 질문부터 던져보았다.
―민주통합당의 공심위원 인선에 대해 최고위원회의도 불참하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한(명숙) 대표님을 포함해서 다른 최고위원 분들께서 우리가 통합한 정당이라는 점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각기 득표수는 달랐지만 최고위원들이 모이면 모두 ‘n분의 1’로 토론을 하게 되지 않나. 그래서 통합의 대의가 뒤로 밀린 측면이 있었다. 이번 일을 겪은 뒤 대의를 상기하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이 일을 왜 했나, 그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면 다 되는 일이다. 정치혁신을 이루어서 앞으로 만들어지는 민주정부가 과거 민주정부 10년보다 훨씬 더 시민 속에 뿌리박아서 힘 있게 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한 거다. 그것만 염두에 두고 작은 파도는 크게 타고 넘어가야 한다고 본다.
―문 최고위원이 추천한 인사들이 공심위원에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는데, 당에서는 “본인이 고사한 분도 있고 당내 인사인지 당외 인사인지 불분명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고사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임종석 사무총장이 그렇게 이야기한 거 같은데 실제로는 당 안팎을 혼돈한 측면은 있었지만 고사했다는 것은 그분의 착각이다. 어쨌거나 전체적으로 시민통합당 인사들에 대한 배려가 있었어야 하는데 짜는 과정이 급박했어도 그 점이 아쉽다.
―인선 과정에서 한 대표와 최고위원간의 의견 교류가 부족한 것 아니었나.
▲내가 추천한 사람이 쉽지 않다면 다른 분들을 해도 상관이 없는 거였다. 전체 조율을 대표께서 하시는 거였는데 그걸 놓쳤다.
―그 이후에 한 대표가 문 최고위원에게 이 일에 관해 직접 언급한 건 없나.
▲그건 대변인께서 공식적으로 잘못이 있었음을 확인했으니까 그걸로 되었다. 그리고 총선기획단에 시민통합당 인사들을 포함하기로 했으니까, 지금 총선이 얼마 남지도 않았고 최대한 힘을 모아야 하는 때 아닌가.
▲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에서 문성근 씨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출마했던 지역구를 택하며 마음속으로 다짐한 바가 있을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이 나를 동생으로 여겨주셨고, 그러니까 나로서는 큰 형님이 못 다한 일을 동생으로 해내겠다는 생각이다. 부산 분들께서 사나이의 의리로 봐주시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인간이 의리를 지키면서 살아야 되는 것 아니냐란 마음이 컸다.
―직접 다녀보니 부산 민심이 어떠한가.
▲실망을 넘어서서 엄청난 분노가 느껴진다. 신공항이나 저축은행 사태나 사안 별로 끔찍한 사건이 많았다. 날 붙잡고 잘해 달라며 우신다. 새누리당에서 마음이 떠난 것은 사실인데 그렇다고 이분들 마음이 민주통합당으로 온 건 아니다. 앞으로 민주통합당이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에 대해 꾸준히 말씀드리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특히 나 같은 경우에는 ‘왜 쟤가 출마하지’ 하며 ‘뜨악’해 하시는 분들이 아직 많다(웃음).
―새누리당에서는 ‘노무현 바람’에 기대려는 것 아니냐고 비판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시려면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정계 은퇴하시는 게 옳다. 그런 자기모순에 빠진 이야기엔 대답할 가치가 없다고 본다. 내가 일본에서 태어난 걸 가지고도 뭐라고 하는데, 일본에서 태어난 게 맞다.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가 미국 유학 중이었는데 그때 전쟁 때문에 귀국은 안 되고 유엔군에 문관으로 자원입대를 했다. 그래서 일본에 가서 미군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휴전 협정 때 통역을 했다. 단편적 정보를 갖고 왜곡되게 보는 건 전체적 인생항로를 보여드리면 없어질 일이다.
―김두관 경남지사가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총선 전망에 대해 부산·경남 지역에서 최소 10~12석 정도를 예상한다고 말했는데.
▲부산·울산·경남·대구·경북 다 합쳐서 61석 정도 되는데 10석이 과다한 욕심은 아니라고 본다. 특히 1당 지배 체제의 폐해를 김 지사 본인이 너무나 혹독히 경험하고 계신다. 모든 분들이 10석은 어떻게든 맞춰보자, 그렇게 힘을 모으고 있다. 어제 여론조사를 보니 일대일 조사에서 문재인 이사장이 처음으로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넘어섰던데, 부산·경남 분들은 행복해하시지 않을까 싶다. 올해 후보와 5년 후 후보를 모두 갖고 계시지 않나.
―문재인 이사장과는 선거 전략에 대해 자주 논의하는가.
▲부산에 와서 손잡고 같이 해보자는 얘기 한번 하고 서로 바빠서 자주 만나지도 못한다. 부산은 거의 한 지역구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서로 공동 공약이나 선거운동이 필요하다. 앞으로 긴밀하게 협의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본다.
―김두관 경남지사가 오는 16일 입당할 것이라고 알려졌는데 김 지사에게도 이번 총선은 대선가도의 중요 분수령이 될 수밖에 없다.
▲김 지사 선거 지원은 서너 번 계속 다녔었는데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이기는 걸 보고는 참 기가 막히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국민의 명령 때도 처음부터 도와주셨고, 마음 속에서는 친형제나 다름없다. 난 김 지사나 문 이사장 누가 야권 주자가 되더라도 적극 지지할 것이다.
▲ 지난해 7월 당시 한명숙 전 국무총리(오른쪽)와 문성근 국민의명령 대표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운명> 출판기념회에서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있다. 유장훈 기자 |
―새누리당 역시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 구성을 두고 잡음이 많았다.
▲보수진영은 참 편하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 당권·대권 분리 원칙은 제왕적 총재 시대가 가면서 민주당 쪽에서 먼저 채택을 했고 새누리당이 따라간 거다. 그런데 급해지니까 그 민주 원칙을 깨버리고 전권을 박근혜 비대위원장에게 넘겨주더라. 긴 역사 안에서의 논의가 사그리 다 무시되고 그분이 간택을 하는 거 아닌가. 공천 물갈이하기도 참 편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전권을 받았는데 왜 이명박 정권의 적폐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는가. 밀약이 있었다는 의혹을 안 가질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탄핵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상득 의원,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 박희태 전 의장 등 하나 하나 측근 비리가 나온 데다 BBK 문제 역시 원점에서 재수사를 해야 한다. 내곡동 땅 의혹이나 중앙선관위 테러사건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디도스 공격은 순전히 물타기용 용어이기 때문에 난 그 용어를 거부하고 10·26 부정선거 사건으로 본다. 이 사건은 성공한 범죄, 기수범(범죄의 구성 요건을 완전히 갖추고 실현한 범죄)이다. 투표장소를 확인할 수 없게 만들어 민주주의의 근본인 국민 투표 결과를 조작한 것이다. 그런데 새누리당 보좌관의 단독범행이라고 하고 덮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 무한정 특검을 도입하는 게 마땅하다.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고 이런 문제들에 대해 이 대통령의 연루가 확인되면 임기가 하루 남더라도 탄핵할 것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이 대선 출마 및 정치 행보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내놓고 있는데.
▲그분의 결단을 지켜보며 기다려야 하겠지만, 만약에 대선 후보로 뛸 마음이 있다면 민주통합당 경선에 참여하여야 한다. 경선에서 500만 명 이상이 모여 한 후보를 뽑았는데 안 원장과 단일화를 하려면 여론조사를 해야 할 텐데 그렇다면 500만 명의 여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박원순 서울시장을 도울 때처럼 편지를 들고 와야 할 것이다(웃음).
끝으로 ‘배우이자 정치인’ 신분의 문성근 최고위원에게 “연기와 정치 중 어느 것이 더 할 만하느냐”는 우문을 던져 보았다.
“유권자 뵙는 건 즐겁고 좋다. 그건 국민의 명령 하면서도 많이 해본 일이고 지난 15년 가까이 남 출마할 때 열심히 도왔다. 그건 괜찮은데 정당 내부 문제는, 오가는 말들의 바탕에 깔려 있는 문맥을 파악하는 것이 참 어렵다. 배우는 대본에 써있는 대사를 읽으며 그 밑바탕에 흐르는 ‘서브텍스트(subtext, 문맥)’가 무언가를 느끼는 사람인데, 워낙에 (정치인들이) 복잡하고 고단수들이라서….”
부산=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 김근태 상임고문의 빈소에 조문하고 있다. |
‘문 대장’ 호칭 선물 받아
문성근 최고위원과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의 인연도 특별하다.
김 전 고문의 서거 전날 병문안을 다녀오고, 빈소에도 두 차례나 찾았던 문 최고위원은 “우리 현대사의 아픔이 그대로 몸의 병이 되신 분이라서 그분 뜻을 후배들이 잘 헤아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고문은 지난 2010년 8월 문성근 최고위원이 주도한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 출범에 대해 그 누구보다 앞장서 지지를 해주었다고 한다. 당시 김 전 고문이 공개 지지선언을 하며 블로그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그는 ‘문 대장님께 근태미소를 보냅니다’라는 제목으로 지지의 글을 올린 바 있다. 문 최고위원은 “내게 문 대장이라는 호칭을 써주셔서 감사했다. 나도 평소 형님으로 모셨던 분”이라고 전했다.
김 전 고문의 부인 인재근 여사는 오는 총선에서 남편의 지역구였던 서울 도봉 갑에 출마할 것으로 전해졌다. 인 여사는 민주화운동에 앞장서온 사회운동가로 지난 1987년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받은 바 있고, 김 전 고문이 수감됐을 때도 민주화운동 탄압에 대해 적극 알리는 등 정치역량에 대해서도 높게 평가받고 있다.
문 최고위원은 인 여사의 출마소식에 대해 “정말 잘하실 거다. 인재근 선배야 70~80년대부터 여장부였고 대단한 리더였다. 그야말로 ‘김근태가 남긴 비밀병기’”라고 말했다. [조]
▲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꼴통 판사로 특별출연했다. |
영화 <부러진 화살> 출연 뒷얘기
감독에 연출 권해…대박예감 ‘명중’
지난 2007년 일어났던 ‘석궁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부러진 화살>이 최근 흥행을 한 바 있다. 이 영화는 문 최고위원이 아니었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처음 문 최고위원이 이 사건을 접하고 책으로 출간된 <부러진 화살>을 읽은 뒤 “이만큼 영화적인 소재가 없다”며 이 영화를 연출한 정지영 감독에게 읽어보라고 권했었기 때문.
진보인사인 문성근 최고위원이 영화 속에서는 ‘보수 꼴통’으로 묘사된 신재열 판사를 열연해 눈길을 끌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이 영화 대박나면 부산 북강서 을에 출마하는 문성근에게 도움 될까요, 반댈까요”라고 트위터에 글을 올리기도 했을 정도. 문 최고위원은 “영화가 잘 되어서 정말 기분이 좋다. 영화 속 인물과 자연인인 나를 혼돈하진 않을 것”이라며 웃음을 보였다.
영화 이야기가 이어지자 문성근 최고위원이 여전히 ‘배우’라는 사실이 상기되었다. 극중에서 실제 사건의 주인공 김명호 교수 캐릭터인 김경호 교수 역을 맡은 안성기 씨는 “문성근 씨를 이번에 정치 쪽에 뺏겨서 너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그의 연기에 대해 ‘극찬’한 바 있기도 하다. “안 선배는 항상 덕담만 하는 사람”이라며 웃는 문 최고위원은 “내가 벌써 환갑인데 정치 쪽에 발을 들였으니 아마 당분간 연기는 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배우는 은퇴가 없기 때문에 일흔 정도 되면 일흔 살의 배역을 연기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