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전통 정원은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사진은 창덕궁 애련지에 눈이 내린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정(庭)이 건물 주변의 개별적인 뜰이라면, 원(苑)은 자연 속에 꾸며진 공동의 뜰이다. 중국에서는 개인의 뜰은 정원(庭院), 공공의 뜰은 원림(園林)이라 하고 일본은 정원(庭苑)과 공원(公園)으로 구분한다.
동양의 정원은 자연을 따랐다. 하지만 나라마다 특징이 있다. 일본은 축경식(縮景式)이다. 광대한 자연경을 한 군데에 축소하여 뜰에 꾸몄다. 인공미가 주를 이룬다. 중국은 권위적이고, 원색적이고, 웅장하게 만들었다. 시각적인 미가 주를 이룬다. ‘백리를 푸르게 만든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반면 우리의 정원은 산천의 참한 한 구석을 찾아내 정자를 슬쩍 곁들였다는 느낌이다. 자연 자체가 적극적으로 도입됐으니 주변과 어울리지 않을 수 없다. 꾸몄지만 꾸미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따라서 정원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은 자연을 바꾸지 않으면서 정원의 자리를 잡는 일이었다. 일부 학자들은 우리 산천 자체가 아름다워 인위적인 잔재주를 부릴 필요가 없었다고 말한다. 또 ‘소박함으로 돌아감’(復歸於樸)을 미덕으로 삼았던 도가(道家)의 심성을 닮았다고 한다.
한국의 정원은 형태와 기능에 따라 신림(神林), 궁원(宮苑), 사원(寺院), 서원(書院)과 별서(別墅)의 원(苑), 지방관아의 누원(樓苑), 민가(民家)의 정원, 묘림(墓林) 등으로 구분된다. 별서는 양반이 벼슬길에 물러나 연고지에 마련한 정원이다. 향반(鄕班)들이 조성한 정원은 ‘향원(鄕園)‘이라고 불렸다. 고려란 나라이름의 유래인 산고수려(山高水麗)에 값하는 곳에 일궈진 정원은 ‘산수·임천(林泉) 정원’으로 불렀다.
정원은 시대별로 차이가 있다. 삼국시대에 도성(都城)과 궁성(宮城)에는 돌, 물, 식물, 동물 등의 복합경관인 궁원(宮苑)이 지어졌다. 수경(水景: 연못, 수로 등 물을 주재료로 하는 경관시설)의 경우 자연을 모태로 하여 ‘흐르다가, 떨어지고, 고이는’ 다양한 기법이 개발되었다. 경주 안압지의 2단 폭포에서 이런 모습을 찾을 수 있다.
▲ 보길도 세연정 정원 |
고려시대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 중국의 원림(園林)기법이 도입되고, 석가산(石假山), 괴석(怪石), 화원(花園) 같은 용어가 생겼다.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정치적 간섭이 더욱 심화되면서 궁원뿐만 아니라 민가에도 중국풍의 원림 기법이 만연했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일본의 침략으로 일본 정원양식이 보급되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뒤뜰의 화계(花階) 등의 보급으로 우리의 맥을 이어갔다. 화계는 뜰에서 층계 모양으로 계단을 만들고 거기에 꽃을 심어 꽃의 계단처럼 만든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집이 주로 뒤에 산을 두었기 때문에, 산의 비탈진 면을 이용하여 꽃을 심게 될 때 자연스럽게 계단이 만들어졌다. 궁궐과 같이 위엄 있는 건축에서는 잘 다듬은 장대석을 쌓아 화계의 앞면을 마무리하고, 윗면은 흙바닥으로 하여 이곳에 꽃을 심었다. 특히 조선시대의 지당(池塘: 넓고 오목하게 팬 땅에 물이 괴어 있는 곳) 형태는 곡선보다는 직선을 채택했고, 기하학적이라는 점에서 중국 및 일본의 정원과 구별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 봉화 청암정 |
담양 소쇄원은 조선의 사대부 정원 가운데 가장 원형에 가깝다. 소쇄원은 문자 그대로 맑고 깨끗한 소리와 풍광을 감상하는 정원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작은 골짜기에서 나는 폭포 소리를 가장 강조했다.
보길도의 세연정 정원은 조선 최고의 풍류가인 윤선도가 만들었다. 원래 있던 자연 연못을 중심으로 만들었고, 이와 함께 인공 연못이나 인공적인 설치물을 곁들였다. 한 가운데 세연정이라는 정자를 세웠다.
한국 전통정원의 미와 풍취는 이외에도 창덕궁의 후원인 비원(秘苑), 강원도 강릉의 선교장(船橋莊), 전남 완도의 부용동(芙蓉洞) 정원, 대전의 남간정사(南澗精舍), 경남 함안의 무기연당(舞沂蓮塘), 경북 영양의 서석지(瑞石池), 월성의 독락당(獨樂堂), 봉화의 청암정(靑巖亭)에 남아 있다.
우리의 정원(庭苑)은 20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한다. 하지만 지금은 전통의 정원을 찾기 힘들다. 산업화와 도시화에 자연을 잃어버린 서구가 동양의 정원에 관심을 갖는 순간에도 우리는 서양정원에 집착하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교훈을 상기한다면, 우리의 정원을 더 가꾸고 사랑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