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센서 탑재해 안전사고 사전 예방까지…독보적 자율주행과 AI 기술로 경쟁력 확보
#두 번의 규제 샌드박스
김진효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창업’이 꿈이었다. 기술창업에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해 전기전자공학과로 전공을 정하고 연세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런데 김진효 대표가 졸업 직후 택한 것은 창업이 아닌 취직이었다. LG디스플레이에 입사해 OLED 신제품 개발 업무를 맡았다. 김 대표는 “신기술을 아이템에 적용해 상품화하는 최전선에 있었다. 연구에서 제품화로 넘어가는 단계를 익히고 일과 사업의 생리에 대해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고 말했다.
스스로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김진효 대표는 2011년 퇴사 후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 무렵 구글 주도로 자율주행 자동차 산업이 이슈가 되면서 김 대표도 자율주행 기술 연구에 몰두했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상용화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 판단한 김 대표는 자율주행 기술을 가전에 접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로봇 사업을 하게 된 계기였다.
연구 기간 동안 10종이 넘는 로봇을 개발했다. 물류센터 배송 로봇, 안내 로봇, 소방 로봇, 방역 로봇 등 자율주행 기능을 지닌 로봇들이 김진효 대표의 손에서 탄생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당시 가장 기술적인 완성도가 높고 사업성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 실내·외 순찰로봇인 이로이와 패트로버 라인이었다. 상용화 가능성까지 점친 끝에 마침내 2017년 ‘도구공간’을 창업했다.
막상 자신 있게 창업은 했지만 규제가 많다는 사실은 부담스러웠다. 특히 국내 규제가 명시적으로 허용한 범주 외에는 모두 금지하는 ‘포지티브 규제’이기 때문에 신기술을 연구개발하는 입장에서 고민이 컸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규제 샌드박스와 관련한 기사를 읽게 된다. 김진효 대표는 “읽자마자 당연히 이용해야 하는 제도라고 생각하고 기억해뒀다. 기술을 개발하면 이런 수순으로 제도권에 접근해야 되겠구나 싶었다”라고 말했다.
규제 샌드박스를 이용할 시기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2020년도에 의뢰가 들어온 것이다. 전주시 한 공업단지에서 ‘가스 냄새가 난다’는 주민 민원이 제기되면서 가스 탐지 센서를 부착한 순찰로봇을 운용해달라는 의뢰였다. 그러나 자율주행 로봇은 도로교통법상 ‘차(車)’로 분류돼 있어 사람들이 다니는 인도나 횡단보도를 건널 수 없어 제대로 된 순찰이 불가능했다. 게다가 개인정보보호법상 순찰활동에 사용하는 영상정보도 사전 동의 없이 취득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샌드박스 신청을 알아보게 됐다.
신청 후 약 6개월의 승인기간을 거쳐 2020년 10월 로봇 6기를 투입해 실증테스트를 해보라는 특례승인이 떨어졌다. 샌드박스와의 인연은 계속됐다. 지난해 서울시 스마트도시과의 의뢰로 서울시설공단에서 운영하는 어린이대공원 순찰 의뢰를 받게 된 것. 문제는 공원에도 무게 30kg 이상의 전동기는 들어올 수 없다는 규제가 있었다. 100kg 정도 되는 순찰로봇을 들여보내기 위해 샌드박스 승인을 따로 받아야 했다. 김진효 대표는 “이미 특례승인을 받아 추가 운영이 쉬울 줄 알았는데 서로 다른 규제이기 때문에 각각 풀어나가야 했던 점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세상을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고 싶다”
고객들의 호응은 상당했다. 김진효 대표는 “한번 구매한 고객들이 충성고객이 되고 있다. 올해는 저희가 25억 원 정도 매출을 올린 덕분에 작년 대비 200% 이상 성장할 전망이고 내년에는 흑자 전환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연말부터는 규제 샌드박스를 벗어나 서비스 범위를 확장할 수 있을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측에서는 당초 계획보다 2년 앞당긴 2023년에 로봇의 보도·횡단보도 통행을 허용하고 공원 출입허용과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은 올해 안에 완료할 방침이다.
오랜 연구개발 경험 덕분에 경쟁력은 자신 있다. 김진효 대표는 “다양한 곳에서 고루 쓸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자율주행 기술과 로봇에 탑재 가능한 순찰 AI(인공지능)는 우리 회사가 독보적이다. 특히 여러 대기업과 협업하면서 우리가 차별화할 수 있는 포인트들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디자인, 하드웨어, AI 서비스까지 자체적으로 개발해 융합 솔루션을 만들어 낸 점도 도구공간만의 차별화 요소로 꼽힌다. 게다가 자율주행에 필요한 정밀지도까지 자체적으로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김진효 대표는 “로봇 서비스는 완성도를 높이려면 융합적인 구성이 특히 필요한 분야다. 제 고집 탓에 비용과 개발의 난이도, 인재 확보가 까다로워졌지만 대신 남들이 쉽게 따라오기 어려울 정도로 서비스를 고도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23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도구공간은 올해 11월 1일부터 4일까지 진행되는 포르투갈 웹서밋 박람회에서 쇼케이스에 오른다. 웹서밋은 전세계에서 가장 큰 연례 기술 컨퍼런스 중 하나로 순찰로봇의 홍보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진효 대표는 “사실 대한민국은 너무 안전하고 사건사고가 없는 편이라 비즈니스가 쉽지 않다. 미국처럼 총기가 허용돼 있지만 인건비가 비싸 치안 관련 수요가 있는 곳들은 집중적으로 공략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다만 특화 상품에 집중해 일정 기간 숙성시켜야 J커브를 그리며 성장할 수 있는 스타트업의 특성상 투자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은 상당한 리스크다. 김진효 대표는 “많은 스타트업들이 향후 2년간 공격적으로 연구개발하는 것보다는 보수적으로 살아남는 데 집중하는 전략으로 바꾸고 있다.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다”라며 “이 시기에 정부에서 충분한 지원을 통해 유니콘들을 키워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진효 대표는 “로봇을 통해 사람이 하기 위험하거나 꺼리는 일을 도와줌으로써 세상을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고 싶다. 이를 통해 시장을 열고 수익을 창출해 선순환을 만드는 게 앞으로의 목표이자 포부”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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