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정해진 연임? 3년 전 바뀐 선임 절차 주목
KT 내부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11월 9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구현모 대표 연임 안건이 논의될 예정이다. 이 관계자는 "사내외 공모 절차 없이 KT 이사회가 구 대표 연임을 추천할 가능성이 크다"며 "역대 KT CEO(최고경영자)들의 경영계약서에는 없었던 연임 우선심사 규정 등을 3년 전 경영계약서에 이례적으로 담았다"고 말했다.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선임될 대표는 KT가 3년 전 "공정하고 투명했다"고 강조한 대표 선임 절차를 거치기 이미 어려워졌다. 구현모 대표 임기가 4개월여 남은 11월 3일 현재까지도 차기 대표 후보자군 선정 절차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 대표가 공식적으로 연임 의사를 밝히지 않았음에도 연임이 사실상 정해졌다는 시선이 이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KT는 2018년 3월 정관을 바꿔 대표 선임 절차를 개편했다. 차기 대표 후보군을 장기간에 걸쳐 검증해 낙하산 인사 등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회장(현재 대표이사) 선임 절차를 ‘지배구조위원회→회장후보심사위원회(현재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이사회→주주총회’ 4단계로 강화했다. 이전에는 ‘CEO추천위원회(현재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주주총회’ 2단계였다. 지배구조위원회와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는 이사회 내 위원회다.
이에 따라 KT 지배구조위원회는 황창규 회장 임기 만료 약 1년 전인 2019년 4월 사내 회장 후보자군 선정에 돌입했다. 2019년 10월에는 외부 회장 후보를 공모했다. 11월 6일 37명의 사내·외 후보자군을 구성했고 12월 12일 9명의 후보심사대상자 명단을 발표했다. KT가 회장 선출 과정에서 후보군 실명을 공개한 건 처음이었다.
2020년 2월 주주서한에서 김종구 KT 이사회 의장은 "공정하고 투명하게 최종 후보자를 선정했다. 투명성,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CEO 선임 절차 및 후보자군 압축의 전 단계를 총 6차례에 걸쳐 언론보도 및 홈페이지에 공개했다"며 "KT 이사회는 투명하고 독립적이며 안정적인 지배구조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당시 선출된 최종 후보자가 구현모 현 대표다.
구현모 대표는 3년 전 대표이사 후보자로 선출될 때와 달리 연임 때는 황창규 회장 연임 때와 같은 과정을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2017년 1월 진행된 황 회장의 연임 우선심사는 정관에 없는 절차라는 논란을 빚었다. 이 때문에 KT는 이사회 규정 개정과 구현모 대표의 경영계약서 등을 통해 연임 우선심사를 명문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KT 이사회 규정에 따르면 이사회는 현직 대표이사에 대한 연임 우선심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이사회는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가 따를 연임적격심사기준도 결정한다. 이사회가 연임 우선심사를 결정한 경우 지배구조위원회는 대표이사 후보 심사대상자 선정을 하지 않는다.
KT 이사회의 연임 우선심사 여부 결정은 늦어도 12월 초까지는 이뤄져야 한다. 구현모 대표의 연임 우선심사가 12월 말에는 시작돼야 하기 때문이다. KT 정관에 따르면 대표이사심사위원회는 대표이사 임기 만료 최소 3개월 전에 구성해야 한다.
#구현모 '쪼개기 후원' 혐의 재판 중 정치자금법 위헌 주장
구현모 대표 연임의 마지막 걸림돌로는 사법 리스크가 거론된다. 구 대표와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박종욱 사장은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반대 의견을 제시한 후 사내이사 후보에서 자진 사퇴한 바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10월 31일 기준 KT 지분 10.77%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이를 의식해 KT와 구 대표가 정치자금법이 위헌이라는 주장까지 펼치며 사법 리스크를 최소화하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 대표와 박 사장 등 KT 전·현직 임원들은 상품권 대금을 지급하고 일정금액 현금을 받는 '상품권깡'으로 2014년부터 4년간 비자금을 조성해 이 중 4억 3790만 원을 국회의원 99명에게 불법후원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 업무상 횡령)로 재판을 받고 있다. 구 대표는 이 과정에서 후원자 13명의 명의를 빌려주는 방식으로 범행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다. 구 대표는 법정에서 "비자금이 조성된 경위도 몰랐고 이것을 통해서 얻은 이익이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다.
구 대표는 2021년 11월 약식기소돼 2022년 1월 총 벌금 15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구 대표는 이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2022년 9월에는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법인 또는 법인 관련 정치자금의 기부를 전면 금지하고, 형사처벌로 제재하는 것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 등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며 정치자금법이 위헌이라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 양벌규정에 따라 함께 기소된 KT도 1심에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은 뒤 항소했고, 2심 중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법조계에선 위헌 결정이 나올 가능성은 작다고 보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4월 법인 또는 단체 관련 정치자금의 기부를 전면 금지한 정치자금법 31조 2항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재판관 9명 중 6명이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더라도 KT 이사회가 구 대표의 사임을 권고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구 대표 경영계약서에 따르면 KT 이사회는 대표이사가 임기 중 1심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 사임을 권고할 수 있다. 그런데 구 대표는 약식명령으로 벌금형을 받아 1심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을 가능성이 없다. 형종 상향 금지 원칙에 따라 약식명령 벌금형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한 경우 법원은 벌금형보다 높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KT와 구 대표가 정치자금법 위헌 주장까지 펼치는 이유는 주주총회에서 반대 여론에 대비하기 위함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올해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유희열 KT 이사회 의장은 주주서한에서 "박종욱 후보자의 이슈 사항에 관해서도 충분한 법적 검토와 리뷰가 있었다"며 박종욱 사장을 사내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기업가치의 훼손 내지 주주권익의 침해 이력이 있는 자에 해당해 반대한다"며 박 사장의 선임을 반대했고, 박 사장은 사내이사 후보에서 자진 사퇴했다.
KT는 차기 대표 선임에 관해 말을 아끼고 있다. 이강철 KT 사외이사는 11월 1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9일 이사회 안건은 아직 못 받았다"며 "(차기 대표 선임 관련해) 이야기 들은 게 없다"고 말했다. 유희열 사외이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KT 관계자는 "(11월 이사회 관련해) 현재까지 전달받은 사항이 없어 답변하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린다"며 "CEO 선임 관련 사항은 정관과 규정에 따라 이사회가 중심이 되어 결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단독] '묘한 타이밍' KT, 자회사 사외이사에 구현모 대표 변호인 선임
지난 3월 KT 자회사 'KT알파' 사외이사로 선임된 신영식 변호사가 구현모 KT 대표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1심 변호인단 중 한 명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외이사 독립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KT알파는 KT가 지난 6월 30일 기준 지분 70.49%를 보유한 KT 자회사다.
검사 출신인 신영식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구 대표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약식기소됐을 때도 변호인단에 포함됐다. 구 대표의 업무상 횡령 혐의 약식기소 사건에서도 변호인단 중 한 명이었다. 법원 사건검색에 따르면 신 변호사는 구 대표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1심 공판에 출석한 적은 없다. 다만 지난 9월 21일에도 법무법인 사무원이 변호인용 공판기일통지서를 수령했다.
KT 관계자는 "신영식 변호사는 KT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린 것은 맞으나 1월 이후에는 관여한 바 없고 KT알파의 사외이사 선임은 3월이며 관련 법적 절차를 통해 결격사유 없이 정상적으로 선임됐다"며 "이해상충으로 보기엔 어려운 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