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전 효고현 불꽃놀이 인파 ‘군중 눈사태’ 비극…일방통행·넓은 출구 등 매뉴얼 만들고 ‘DJ폴리스’ 도입
#과거의 비극을 교훈 삼아…
극심한 혼잡으로 인한 비극은 일본에서도 종종 일어났다. 1956년 1월, 니가타현 신사에 3만 명이 방문해 124명이 압사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보기 드물게 눈이 내리지 않은 설날이었고, 예년을 크게 웃도는 참배객이 다녀간 것으로 전해진다. NHK에 따르면 “이 사건은 ‘사고 방지를 위한 대책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제기돼 경비를 맡은 경찰과 신사 측의 책임이 엄중하게 추궁됐다”고 한다.
2001년 7월, 효고현 아카시시에서도 불꽃놀이를 관람하려는 인파가 넘쳐 ‘군중 눈사태’가 발생했다. 군중 눈사태란 인파가 모인 좁은 공간에서 누군가 넘어지거나 주저앉을 경우 균형을 잃은 주변 사람들이 차례로 포개지듯 쓰러지는 현상을 말한다. 좁은 다리 위에서 아이와 노인 11명이 숨지고, 247명이 다쳤다. 이후 효고현 경찰청은 “끔찍한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반성과 함께 120쪽 분량의 ‘혼잡사고 방지 매뉴얼’을 제작했다. 사고를 교훈으로 삼아 쓰라린 경험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조치였다.
관련 매뉴얼에 따르면, 군중 눈사태는 인파가 몰리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 혼잡 시 경비는 일방통행이 대원칙. 출구는 입구보다 넓어야 하며, 입구와 출구는 분리한다. 또 통행량을 수시로 통제해 과밀 상황을 예방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참사를 계기로 이른바 ‘DJ폴리스’라 불리는 질서유지 담당 경찰도 생겨났다. 지휘차에 올라타 시민들을 안내하고, 특정 지점에서 군중이 엉키지 않게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이번 핼러윈데이 때도 DJ폴리스의 활약은 컸다. 도쿄 시부야 등지에서는 “멈추지 말고 걸으세요”라며 시종일관 외치는 광경을 접할 수 있었다.
경찰관계자 A 씨는 ‘산케이신문’ 인터뷰에서 “당일 경비계획을 세우는 데 중요한 것은 사전 정보수집”이라고 강조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이벤트가 개최되는지 사전 조사하고, 과거 데이터 등을 토대로 예상 인파를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현장을 방문해 지형과 교통기관, 도로 폭, 수용 인원 등을 조사함으로써 경비태세를 결정한다.
평상시 경찰과 행사 책임자, 주최자의 연계는 필수다. 한국의 이태원 참사는 각 점포가 개별적으로 행사를 열었으며, 전체 주최자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A 씨는 “전체 주최자가 없어도, 각 점포나 상가 등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협력했어야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2010년 3월, 도쿄 하라주쿠의 다케시타 거리에서도 사람들이 겹쳐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예인이 왔다”는 말이 돌면서 순식간에 관중이 몰려들었던 것. 이 중 4명의 소녀가 병원으로 이송됐고 다행히 경상에 그쳤다. “연예인이 왔다”가 발단이 되긴 했지만, 돌발적인 사고는 아니었다. 당일 인근에서 아이돌그룹 이벤트가 개최돼 주변이 상당히 붐볐기 때문이다.
A 씨는 “불꽃축제나 콘서트 같은 대규모 행사뿐 아니라 개점행사 등 군중이 몰릴 만한 정보도 꼼꼼히 수집할 필요가 있다”면서 “갑자기 인파 사고가 일어나진 않는다. 반드시 조짐이 있다. 그것을 어떻게 포착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21년 전 악몽을 떠올린 일본
“같은 유족으로서 가족의 마음이 어떨지…, 가슴이 아프다.” 좁은 장소에 인파가 몰렸다는 점에서 이태원 참사는 일본의 아카시시 사고와 유사하다. 시모무라 세이지 씨(64)는 아카시시 사고로 두 살짜리 둘째 아들을 잃었다. 그는 “이태원 참사 영상이 TV에서 나올 때마다 심장이 조여드는 기분”이라고 한다.
아카시시청 직원도 괴로운 듯 참사를 바라본다. 시 종합 안전대책실의 우에다 고지 씨(46)는 당시 불꽃축제의 경비를 맡았다. 그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람이 몰리면 사망 사고가 일어난다’는 인식이 없었다”며 “단 하루도 그 충격을 잊은 적이 없다”고 되돌아봤다.
가와구치 도시히로 간사이대 교수(군중안전학과)는 “두 참사가 ‘밀폐공간’ ‘양방통행’ ‘초과밀 상태를 파악할 수 없어 사람들이 계속 유입됐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전했다. 흔히 밀폐라고 하면 엘리베이터처럼 사방팔방이 막혀 있는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출입문이 열려 있어도 옆 방향으로 도망칠 곳이 없으면 밀폐 상태로 본다.
아카시시의 경우 육교 1㎡당 13~15명의 사람이 밀집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태원에서는 좁은 경사로 18.24㎡(약 5.5평) 공간에서 150명 이상이 사망했다. 사고 당시 300명 이상이 몰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적절한 경비 방식은 혼잡이 예상되는 통로 중간 지점에 경비원을 배치하고, 골목길 양쪽 입구에도 배치해 혼잡상황을 주고받으며 규제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태원 참사 발생지점은 길이 40m의 골목 중간쯤이었다. 가와구치 교수는 “발생지점을 벗어나면 밀집·혼잡 상태가 완화되기 때문에 골목 입구에서는 큰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래서 “따라 들어가고 천천히 나아가다 위험을 느꼈을 무렵에는 군중 속에 휘말려 돌아갈 수 없게 된다”는 설명이다.
가와구치 교수는 “조금이라도 걷기 힘들 것 같으면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만일 군중 눈사태 상황에 말려들었을 경우, 가슴 압박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수는 “가방이나 팔 등으로 가슴을 가려 흉부를 지킬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조언했다.
니시나리 가쓰히로 도쿄대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 교수는 이태원 참사 영상을 본 후 “군중의 흐름을 바꿔주는 안전 조치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참사가 나기 훨씬 전부터 위험을 알리는 신고가 들어왔는데도 늑장 대응이 안타깝다”며 “이태원 일대가 인산인해로 포화상태에 이르렀는데도 이태원역 무정자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혼잡 경비의 기본 규칙은 사람이 밀집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태원역에서 내릴 수 없도록 한다든지, 분명 여러 가지 대책을 세울 수 있었다. 니시나리 교수는 “참사 4시간 전 112신고를 외면하지 않았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비극이 아닐까 싶다”며 비통해하기도 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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