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이후 처음으로 NLL 이남에 발사…벼랑 끝 전술로 핵 보유국 인정 노리나
#우리 군도 대응 사격
합동참모본부(합참)에 따르면 북한은 11월 2일 오전 6시 51분쯤 평안북도 정주시와 피현군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SRBM 4발을 쐈다. 오전 8시 51분쯤에는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SRBM 3발을 발사했다. 이 중 1발은 동해 NLL 이남 26km, 속초 동방 57km, 울릉도 서북방 167km 지점 공해상에 떨어졌다. 공해상이기는 하지만, 영해에 근접해 떨어진 것이다. 이후 북한은 오전 9시 12분쯤 SRBM과 지대공 미사일 등으로 추정되는 10여 발을 동·서해상에 추가로 쐈다.
오전 9시 15분쯤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 도발 관련해 “분단 이후 처음으로 NLL을 침범하여 자행된 미사일에 의한 실질적 영토침해 행위”라며 “우리 사회와 한미 동맹을 흔들어보려는 북한의 어떠한 시도도 통하지 않을 것이고, 북한의 도발이 분명한 대가를 치르도록 엄정한 대응을 신속히 취할 것”을 지시했다.
윤석열 대통령 지시 이후 우리 군도 대응 사격에 나섰다. 합참에 따르면, 오후 12시 21분쯤 공군 F-15K, KF-16의 정밀 공대지미사일 3발을 동해 NLL 이북 공해상에 정밀 사격을 실시했다. 우리 군이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맞서 대응 사격을 펼친 것은 29일 만이다. 10월 4일 북한이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한 데에 대해 강원도 강릉 소재 A 공군기지에서 한미연합 지대지미사일 사격을 실시한 바 있다.
합참은 “이번 북한 미사일 발사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NLL 이남 우리 영해에 근접해 떨어진 것으로 매우 이례적이고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우리 군은 이러한 북한의 도발 행위를 결코 묵과할 수 없으며, 감시 및 경계를 강화한 가운데 한미 간 긴밀하게 공조하면서 엄정하고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 군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도발을 지속하고 있는 만큼, 이후 발생되는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게 있음을 다시 한 번 분명히 경고한다”고 했다.
북한은 합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도발을 멈추지 않았다. 오후 1시 27분부터 1시 55분쯤까지 강원도 고성군 일대에서 동해상 NLL 북방 해상 완충구역 내로 100여 발의 포병사격을 했다. 이에 군은 “이는 명백한 9·19 군사합의 위반임을 알리며 즉각 도발 중단을 촉구하는 경고통신을 실시했다”고 전했다. 오후 4시 30분부터 5시 10분까지는 북한 선덕·신포 일대와 과일·온천 일대에서 각각 동·서해상으로 지대공 미사일로 추정되는 6발을 추가로 발사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북한의 무더기 미사일 도발 관련해 “한미 군사 훈련이 시작되면서 미국의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전개되는 것에 대해 반발한 것”이라며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동원됐는데 북한군사령부가 가만히 있으면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ICBM ‘화성-17형’ 발사
북한은 이틀 연속 고강도 도발에 나섰다. 합참에 따르면, 11월 3일 오전 7시 40분쯤 북한은 평양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ICBM을 발사했다. 최고 고도는 약 1920km, 비행거리는 760km, 최고 속도는 약 마하 15(음속 15배)로 탐지됐다. 탄도미사일 사거리가 5500km를 넘어가면 장거리 또는 ICBM으로 분류한다. 우리 군은 이번 미사일을 북한의 ICBM ‘화성-17형’으로 추정하고 있다. 8시 39분쯤에는 평안남도 개천 일대에서 SRBM 2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비행거리는 약 330km, 고도 약 70km, 속도 약 마하 5로 탐지됐다.
이번 ICBM 발사는 실패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탄두부와 추진체를 분리하는 단 분리가 2단계까지 진행돼 탄두부가 비행에 나섰지만, 추력이 약해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해상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통상 ICBM은 3단 추진체 분리까지 성공한 이후 마하 20 이상의 속도를 낸다. 이번 ICBM 최고 속도는 마하 15(음속 15배)였다. 10월 4일 4500km를 날아간 북한 IRBM 화성-12형 개량형의 최고 속도(마하 17)보다 느린 셈이다.
북한이 11월 8일 미국 중간선거 이전에 제7차 핵실험을 감행할 수 있단 전망이 나온다. 양무진 총장은 “ICBM과 핵실험은 한 세트다. 북한이 돈을 들여서 핵실험장 개보수하며 준비해왔다. 핵실험 안 하면 돈만 날리는 거다. 김정은 위원장도 전술핵과 대규모 핵폭발 실험을 강조했다”며 “조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의 무력시위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면서 할 것이다. 특히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북 정책 실패했으니 대북 정책 철회하라고 압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반도 문제 주도자도 한미동맹이 아니라 북한 자신한테 있고, 핵 무력 정치 법제화가 ‘빈말이 아니다’라는 점을 보여주고자 발사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11월 3일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북한이 미국 중간선거 전 핵실험을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핵실험 준비가 끝난 것은 맞지만 임박했다고 볼 증거는 확실히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같은 날 김동엽 북한대학원대 교수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며 “북한이 기술적인 목적으로 핵실험을 하는 것은 대단히 의미가 없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올해에만 화성-17형을 7차례나 발사했다. 올 초 북한은 핵실험·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유예(모라토리엄) 조치 폐기 방침을 시사했다. 이에 한미일 3국의 외교장관은 2월 12일(현지시각)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양자, 3자 회담을 연이어 열면서 북한의 무력시위를 규탄하며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당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북한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유예, 즉 ‘모라토리엄’을 파기할 가능성을 언급한 데 대해 크게 우려한다”고 말했다.
이후 북한은 2월 27일과 3월 5일 정찰위성 개발 시험 목적이라 주장하면서 화성-17형을 쐈다. 당시 우리 군은 이 미사일이 560~620km를 날아간 점을 고려해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이라고 판단했지만, 나중에 화성-17형이라고 다시 평가했다. 올해 3월 16일에는 ‘화성-17형’ 개발용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으나 실패했다. 고도 20km 미만 상공서 폭발했다.
3월 24일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지도 아래 ‘화성 17형’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며 모라토리엄을 완전히 파기했다. 이전 세 차례는 MRBM 궤적으로 발사했다면, 이날은 2017년 11월 이후 4년 4개월 만에 최대 성능으로 발사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둔 5월 4일에도 ‘화성 17형’을 발사했다.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중대한 도발”이라며 강력 규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국·일본 순방 직후인 5월 25일에는 6번째 화성-17형과 SRBM 2발을 함께 쏘며 무력시위에 나섰다.
#‘비질런트 스톰’ 비난 뒤 도발
11월 3일 오후 2시쯤 공군은 한미 공중 연합훈련인 비질런트 스톰의 기간을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연이은 도발에 대한 조치였다. 훈련 종료 시점은 밝히지 않았다. 당초 비질런트 스톰은 10월 31일 시작돼 11월 4일 종료 예정이었다. 비질런트 스톰은 한국과 미국이 상호운용능력과 전투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2015년부터 실시해온 ‘비질런트 에이스’의 명칭을 올해부터 바꿔 실시한 훈련이다. 기존 훈련보다 그 규모는 확대됐다. 이번 훈련에는 한국 공군의 스텔스기 F-35A 등 140여 대와 미군의 스텔스 F-35B 등 100여 대를 합쳐 240여 대가 동원됐다.
북한은 즉각 반발했다. 11월 3일 오후 8시 38분쯤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북한 군사 서열 1위인 박정천 북한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담화를 공개했다. 박 부위원장은 “미국과 남조선이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며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선택”이라고 비난했다. 담화 이후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합참에 따르면, 오후 9시 35분쯤부터 9시 49분쯤까지 황해북도 곡산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SRBM 3발을 발사했다.
북은 11월 2일 미사일 발사 전에도 담화를 낸 바 있다. 11월 2일 새벽 0시 5분쯤 박정천 부위원장은 담화를 통해 “나는 미국과 남조선이 벌려놓은 ‘비질런트 스톰’ 연합공중훈련을 동원된 전투기 대수와 훈련 규모를 놓고 보나, 지난 1990년대 초 이라크를 침략할 때 사용한 작전 대호인 ‘데저트 스톰(사막폭풍)’의 명칭을 본뜬 것을 놓고 보나, 철저히 우리 공화국을 겨냥한 침략적이고 도발적인 군사훈련이라고 평가한다”며 “대단히 재미없는 징조”라고 주장했다.
11월 1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도 “10월 17일부터 28일까지 남조선 전역에서 대규모 야외기동 훈련인 ‘호국’연습이 진행된 데 이어 불과 며칠 만에 또다시 역대 최대 규모의 미국남조선 연합공중훈련인 ‘비질런트 스톰’이 시작됐다”며 “미국과 남조선의 지속적인 무모한 군사적 움직임으로 하여 조선반도와 주변 지역 정세는 또다시 엄중한 강대강 대결 국면에 들어섰다”고 했다.
11월 3일 통일부는 담화 주체를 외무성 대변인에서 박정천 당 중앙위 비서로 격상시킨 의도에 대해 “박정천 당 비서 담화 등을 통해 자신들의 불법적인 무력 도발을 정당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음 날인 4일에는 “정부는 북한이 우리의 연례적·방어적 훈련을 이유로 위협과 도발을 지속하면서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것을 강력 규탄한다”고 밝혔다.
한미 양국은 북한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에 나섰다. 11월 3일(현지시간)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은 미국 버지니아주 국방부 청사(펜타곤)에서 열린 제54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후 “필요에 따라 미국의 전략자산을 적시적이고 조율된 방식으로 한반도에 전개하고, 불안정을 유발하는 북한의 행위에 맞서는 조치들을 확대하고 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조치들을 찾아 나간다는 미국의 공약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이 9월 25일부터 계획적으로 연일 공세를 해오고 있다. 훈련을 명분으로 핵 능력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이다. 전술핵으로 한국과 미국 괌을 타격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주는 데도 성공했다”며 “이번 ICBM 발사가 실패했지만, 핵 개발에 대한 의지와 방향성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최종 목표는 미국으로부터 공식적인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래야 경제 제재도 풀리고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한반도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고 있다. 조만간 7차 핵실험을 하고 핵 군축과 제재 완화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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