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현대백화점에서 열린 명품세일 행사장이 손님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
해외명품대전은 매년 2월, 8월이면 열리는 정기 행사다. 그럼에도 올해 유독 주목을 받은 이유는 비교적 규모가 컸기 때문이다. 경기불황과 날씨 탓에 겨울 상품 판매율이 좋지 못했던 것. 자연스레 행사에 나오는 물량이 예년보다 많을 수밖에 없었고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지면서 많은 인파가 몰렸다.
덕분에 백화점 오픈시간 전부터 몰린 손님들이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연출됐고 행사장 입장제한까지 이뤄졌다. 겨우 행사장에 들어서도 쇼핑은 쉽지 않았다. 가격은 고려하지 않고 진열대 가득 쌓아놓은 제품들을 무작정 쓸어 담는 손님들부터 긴 줄을 무시한 채 행사장 안으로 진입하려다 제지를 당하는 사람까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100억~200억 원 규모의 상품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세계적으로도 명품행사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A 백화점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명품이라는 단어도 없을뿐더러 구매층도 상당히 제한적이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거의 모든 계층이 명품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평소 명품 매장을 자주 찾는 손님들은 행사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고 설명했다.
소위 VIP라 불리는 이들이 명품대전을 외면하는 이유는 선호하는 브랜드가 참여하지 않거나 살 만한 제품이 없기 때문이다. 명품대전에 참가한 한 명품업체 관계자는 “올해 화제가 됐던 몽클레르처럼 재고가 없는 브랜드는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다. 행사장에 내놓는 상품기준은 첫째도 둘째도 ‘재고의 양’”이라며 “쌓여있는 제품들부터 순서대로 처리하기 때문에 신상품을 찾아보긴 어렵고 혹 있더라도 비인기 제품이거나 할인율이 상당히 낮다”고 밝혔다.
명품업체에게 명품대전은 ‘재고처리’용일 뿐이다. 해외명품대전에 선보이는 물건들은 지난 시즌에 팔지 못했던 것들이다. 할인율은 언제 출고된 제품이냐에 따라 다르다. 직전 F/W(가을·겨울)시즌에 나온 제품이라면 20~40%, 3년 이상 지난 제품은 최대 80%까지 할인하기도 한다. 한 번 세일했던 제품은 원래의 가격으로 팔지 못하기 때문에 매년 할인율이 높아진다.
아무리 높은 할인율을 자랑한다지만 매출은 그다지 높지 못하다. 실제 해외명품대전을 열었던 백화점 3사 중 한 곳은 판매량이 준비했던 수량의 10% 남짓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지난해보단 높아진 수치란다. B 백화점 관계자는 “명품대전은 보물찾기와 같다”면서 “모든 사이즈, 색상이 마련돼 있는 것도 아니고 신제품이 나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선뜻 지갑을 여는 것이 망설여지는 게 당연하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핵심 고객들에게는 미리 행사 정보를 알려줘 그들은 굳이 복잡한 행사장을 방문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나온다. B 백화점 관계자는 “선물용이나 계절용 제품을 구입하는 VIP들을 위해 미리 행사정보를 알려준다. 그 중 일부는 미리 물건을 빼놓기도 한다”고 말했다. A 백화점 관계자는 “우리는 매장만 제공해주는 입장이지 행사장에 나오는 상품을 정하고 판매하는 쪽은 협력업체 소관이다. 그런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고객 관리 차원에서 행사정보를 알려줬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명품업체 관계자도 최종 책임자 외에는 미리 물건을 빼놓긴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어떤 제품이 행사에 나가는지 궁금해 창고에 내려갔더니 이미 박스에 밀봉된 채 보관 중이었다. 그만큼 철저히 관리를 한다”면서도 “물품 체크하는 인원과 백화점 고위층, 행사 담당은 어떤 물건이 나가는지 빨리 알 수 있다. 가끔 특별히 눈에 띄는 제품이 있으면 지인들에게 알려주는 직원을 보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 명품 브랜드 관계자들은 “너무 잘 팔려도 고민, 안 팔려도 고민”이라며 속사정을 털어놨다. 재고관리를 위해서는 무조건 물건이 많이 팔리는 것이 좋지만 올해와 같은 상황에서는 브랜드 이미지 하락이 걱정된다는 것이다. 실제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고객들의 항의가 들어오기도 했단다. 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관계자는 “1년에 두 번 있는 명품대전은 재고를 처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떨이’ 개념이 강해 전체적인 브랜드 이미지가 깎일 수도 있기 때문”이라며 “한 고객은 ‘제 값 주고 샀는데도 요즘엔 들고나가기 부끄럽다’며 항의를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우리가 전문” vs “우리가 원조”
비록 ‘빛 좋은 개살구’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신세계·롯데·현대백화점 3사는 해외명품대전에서도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 중 신세계백화점은 역사와 전통을 내세워 “우린 다르다”고 말한다. 신세계백화점의 해외명품대전은 신세계인터내셔날에서부터 시작한다. 지난 1995년부터 해외명품브랜드를 수입해온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재고처리를 위해 열었던 행사가 그 시작인 것. 이후 2005년부터 신세계백화점이 이어받아 해마다 2차례씩 열리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현대와 롯데는 명품대전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우리는 신세계인터내셔날이 명품브랜드 수입을 전반적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명품대전 행사를 주체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백화점은 협력업체에 장소를 빌려주는 것일 뿐 진정한 명품대전이라고 볼 수 없다”고 공격했다.
이에 현대백화점과 롯데백화점은 발끈한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우리는 1990년대부터 명품대전을 시작했다. 백화점으로 우리가 신세계보다 더 빨리 시작한 셈”이라며 오랜 된 역사를 내세웠다. 롯데백화점 관계자 역시 “신세계백화점도 명품대전을 하면 협력업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있다곤 하지만 모든 브랜드를 관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고 반박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