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소년의 추억을 재현한 영월 나래실 마을의 소박한 농원. 이순우 씨(69)는 은퇴 후 이곳에서 풀꽃과 나무를 가꾸며 아마추어 자연주의자로 살고 있다. 항산항심(恒産恒心), 조금씩 땅심을 저축하며 산촌을 향한 지 20여 년. 처음에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주말마다 귀촌하는 '5도 2촌'으로 아내 최순영 씨와 함께 부지런히 농원을 가꿨다.
그저 나무가 좋아서 심었던 묘목들은 어느새 훌쩍 자라 숲이 되었고 이순우 씨의 삶의 터전이 되었다. 풀꽃을 관찰하며 세밀화를 그려낸 화첩과 자연의 삶을 적어온 농원일지만 수십 권. 자연을 가까이서 바라보고 기록해온 이순우 씨는 많은 사람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다.
자연을 사랑하는 이순우 씨의 결정이 모두에게 환영받은 건 아니었다. 25년 전 시골에 땅을 산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차라리 도시에 아파트나 땅을 사라며 투자를 권했다. 그러나 그에게 땅은 소유의 개념이 아닌 살아가는 삶 그 자체 존재의 바탕이었다.
아내 최순영 씨와 이순우 씨의 생각이 처음부터 같았던 건 아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든든한 산촌의 동반자이다. 서로 다른 풀과 나무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듯 취향이 다른 부부도 각자의 텃밭을 가꾸며 상생한다. 작물을 수확하고 나누기를 좋아하는 현실적인 아내의 텃밭과 달리 이순우 씨는 풀꽃이나 나무처럼 야생의 자연을 좋아한다.
현실과 낭만이 오가는 나래실 농원은 사람, 꽃과 나무, 농작물, 야생동물이 공존하는 자연 그 자체이다.
이순우 씨가 풀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는 부모님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에게선 구절초 향기가 났고 아버진 평범한 농부셨지만 느티나무처럼 진솔하셨다. 어머니, 아버지를 닮은 자연의 모습을 이제 어린 손녀들이 색연필로 쓱쓱 그려낸다.
이순우 씨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손녀들의 스케치북에는 산국, 코스모스와 같은 풀꽃으로 가득하다. 도시에 사는 손녀들에게 할아버지의 농원은 알록달록한 놀이터와 다름없다. 나무 그네 타기, 오솔길 산책, 열매 따기 등을 하며 할아버지와 손녀들은 자연 속에서 친구가 된다. 내 아버지가 그랬듯 이순우 씨에게 자연은 손자손녀들에게 유일하게 물려주고 싶은 유산이다.
틈새의 계절에는 늦게 자라는 풀이 피어나기도 하고 동시에 낙엽 지고 울긋불긋한 나무가 산야를 뒤덮는다. 오묘하고 조화로운 풍경을 그려내는 가을과 겨울의 길목이 좋다는 이순우 씨. 풀과 나무는 양지와 음지에서 각자의 자리를 찾고 크거나 작은 자기만의 모습으로 아름다운 산촌을 이룬다. 이순우 씨는 풀꽃과 나무들의 생장일지를 꼼꼼히 기록하며 아내와 함께 황혼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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