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마크, 국가나 도시 혹은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시설이나 건축물을 뜻한다. 전쟁 등을 거치며 관공서를 제외하고는 랜드마크라고 불릴 만한 건물이 귀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고도 성장기를 거치며 각 지역마다 랜드마크 반열에 올라서는 건물이 하나둘씩 생겼다. 이들 건물은 대부분 당시 비약적으로 사세를 키우던 기업들과 연관이 깊다. 이 때문에 해당 랜드마크의 역사는 기업 또는 산업의 역사다. 다른 한편으로는 최근 새롭게 랜드마크로 꼽히는 건물은 시장과 산업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이정표로 자리매김하는 경우도 있다.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은 일요신문이 각 지역 랜드마크와 기업이 얽힌 이야기를 연재한다.[일요신문] 서울 지하철 2·8호선 잠실역 인근은 ‘롯데타운’이라고 불릴 정도로 ‘롯데’라는 이름을 단 시설과 건물이 많다. 국내 대표적인 테마파크 롯데월드는 잠실역과 지하로 연결돼 있고, 잠실역 4번 출구로 나오면 롯데백화점 잠실점이 보인다. 잠실역 3번 출구 앞에는 뮤지컬 전용 극장인 ‘샤롯데씨어터’가 있고, 8번 출구 앞에는 롯데캐슬골드아파트가 있다.
그중에서도 화룡점정인 건물은 잠실역 1번 출구 앞에 있는 롯데월드몰이다. 롯데월드몰은 롯데월드타워, 에비뉴엘동, 쇼핑몰동, 엔터테인먼트동 등 네 개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롯데월드타워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변 경관을 압도한다. 이전까지 일반인 출입이 가능한 고층 건물로는 63빌딩(현 63스퀘어)과 남산서울타워가 꼽혔다. 롯데월드타워는 높이는 물론 시설 면에서 이들을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완공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에비뉴엘동과 쇼핑몰동에는 패션업체와 명품업체가 입주해 있으며 서울 동남권 최대 유통단지로 꼽힌다. 엔터테인먼트동에는 아쿠아리움, 롯데시네마 등의 시설이 있다.
롯데그룹은 1987년 ‘제2롯데월드 프로젝트’를 위해 서울시로부터 현 롯데월드몰 부지를 매입했다. 롯데그룹은 이곳에 100층 이상 규모의 건물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초고층 건물 건설을 위한 허가 과정에서 발목이 잡혔다. 해당 부지는 서울공항 활주로 진행방향과 마주보고 있어서 고층 빌딩이 들어서면 비행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에 기회가 찾아온 것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친기업 성향으로 평가 받으며 롯데월드타워 건설에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오랜 논의 끝에 서울공항의 활주로 각도를 3도 변경하고, 해당 비용을 롯데그룹이 부담하는 조건으로 롯데월드타워 건설 허가를 내줬다. 공군의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뜻을 꺾지 못했다.
롯데그룹은 2010년 롯데월드타워 착공에 들어가 2016년 완공했으며 2017년 4월 정식으로 개장했다. 롯데월드타워는 123층 555m로 국내 최고 높이를 자랑한다. 세계적으로도 롯데월드타워보다 높은 건물은 아랍에미리트 부르즈할리파, 중국 상하이타워, 사우디아라비아 알베이트타워, 중국 핑안파이낸스센터 등 4개뿐이다. 롯데월드타워 1~12층에는 롯데 홍보관, 은행, 카페, 면세점 등의 시설이 있고, 14~38층은 오피스 공간으로 활용된다. 42~71층과 108~114층은 오피스텔이고, 76~101층은 호텔롯데가 운영하는 최고급 호텔 시그니엘 서울이 있다. 117~123층은 서울스카이 전망대가 있으며 입장료만 내면 누구든지 출입이 가능하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집무실은 롯데월드타워 18층에 있다.
롯데월드타워 설계는 영국 에이럽이 맡았고, 빌딩 구조 설계는 미국 KFA와 LERA가 참여했다. 풍동 설계는 캐나다 RWDI가 담당했으며 외벽의 경우 일본 릭실과 미국 CDC가 맡았다. 시행사는 롯데물산, 시공사는 롯데건설이며 롯데물산은 롯데월드타워 전반적인 관리도 맡고 있다. 롯데월드타워 건물 디자인은 붓을 형상화했으며 외벽 색깔과 디자인은 고려청자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으로 전해진다.
롯데월드타워는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숙원 사업이었다. 신 명예회장은 1987년 부지를 매입할 당시부터 “서울의 랜드마크를 지어야 한다”며 초고층 빌딩 건설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은 노력 끝에 신 명예회장 생전에 롯데월드타워를 완공하는 데 성공했고, 신 명예회장은 2017년 5월 롯데월드타워를 방문해 30년간의 염원을 풀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롯데월드타워 완공 전후로 롯데그룹은 유례없는 혼란을 겪게 된다. 검찰은 2016년 롯데그룹을 비자금 조성 의혹 혐의로 대대적인 수사를 펼쳤다. 이 과정에서 고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이후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롯데그룹은 다시 한 번 수사 대상에 올랐으며 신동빈 회장은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비슷한 시기 롯데그룹은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경영권 분쟁도 겪었다. 당시 신격호 명예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동빈 회장의 해임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수차례 주주총회에서 표를 더 많이 얻은 쪽은 신동빈 회장이었다. 2017년 6월 열린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도 신격호 명예회장의 이사직을 재선임하지 않기로 결정해 신 명예회장의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신 명예회장이 롯데월드타워를 방문한 지 불과 1개월 후 일이었다. 신 명예회장은 이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2020년 1월 노환으로 타계했다.
롯데그룹의 혼란과 별개로 롯데월드타워는 서울을 넘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건설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이 불식된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서울공항의 활주로를 변경했음에도 위험 요소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감사원이 2018년 5월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공군 조종사 54%는 롯데월드타워로 인해 불안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또 롯데그룹이 이명박 정부의 비호를 받았다는 뒷말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롯데월드타워 건설 과정에서 인명 사고도 수차례 발생했다. 2013년 6월 근로자 한 명이 추락사했고, 2014년 4월에도 배관 작업을 하던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어 2015년 3월 또 다른 근로자가 작업 중 추락사했다. 이후로도 건설 과정에서 일부 층에 균열이 발생하는 등 안전성 논란이 이어졌다. 이에 롯데그룹은 롯데월드타워 안전관리위원회를 운영하면서 안전 관리에 힘썼고, 다행히 완공 후에는 특별히 안전성 논란은 불거지지 않았다.
롯데그룹은 한동안 롯데월드타워 운영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롯데월드타워 완공 직후에는 비싼 임대료 탓인지 롯데월드타워 입주 희망 기업이 많지 않았다. 오피스 층인 14~38층 중에서 14~20층은 롯데지주, 롯데케미칼, 롯데물산 등 롯데그룹 계열사가 입주했다. 하지만 나머지 층의 공실 문제가 이어지자 롯데쇼핑 e커머스사업본부, 롯데컬처웍스 등의 계열사가 추가로 롯데월드타워에 입주했으며 롯데쇼핑이 지분 49%를 가진 에프알엘코리아(유니클로 운영사)까지 롯데월드타워로 본사를 옮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한킴벌리, 우아한형제들 등의 기업이 롯데월드타워에 입주해 공실률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됐다.
롯데월드타워 76~101층에 있는 호텔 ‘시그니엘 서울’도 아직까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다. 호텔롯데는 시그니엘 서울을 ‘6성급 호텔’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비싼 가격과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등이 발목을 잡는 것으로 전해진다. 호텔롯데는 올해 상반기 1626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수년째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동선 NICE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지속된 투자부담 및 최근 영업실적 저하로 인해 과거 대비 재무안정성 지표가 저하된 상황”이라며 “호텔롯데는 2017년 시그니엘 개관, 2018년 인천공항 제2터미널 면세점 개장 등 호텔 및 면세점 부문의 투자 부담 등이 지속되면서 차입규모가 확대됐다”고 전했다.
롯데월드타워가 롯데그룹에 손실만 가져다준 것은 아니다. 롯데월드타워를 찾는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쇼핑·엔터테인먼트 사업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고, 롯데라는 브랜드 파워도 강화됐다. 롯데월드타워 누적 방문객은 현재까지 2억 명이 넘는다. 국내 경제 전반에 미친 효과도 상당했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롯데월드타워 건설 단계에서 생산유발 효과 4조 4000억 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 1조 5000억 원을 발생시켰으며 롯데월드몰은 약 6000명의 고용을 창출했다.
롯데그룹은 매년 ‘롯데월드타워 불꽃축제’를 개최했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2019년 롯데월드타워 불꽃축제를 보기 위해 40만 명 이상이 잠실역을 방문할 정도였다. 롯데월드타워 불꽃축제가 인기를 끌면서 서울세계불꽃축제를 개최하는 한화그룹과 라이벌로 엮이기도 한다. 롯데그룹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020년부터 불꽃축제를 개최하지 않고 있다가 2023년부터 재개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이태원 참사가 불꽃축제 개최 계획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와 관련, 롯데그룹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