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인의 여동생 휴대전화에 저장된 손문권 PD의 영정사진.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왜고인의 시신을 끌어내렸나?
손문권 PD가 세상을 떠난 것은 지난 1월 21일 밤 8시경이다. 경찰은 고인이 일산 마두동 소재의 복층형 주택의 계단에서 넥타이로 목을 매고 자살하는 장면이 담겨 있는 CCTV를 바탕으로 사망 시간을 추정했다. 두 시간 뒤 임 작가가 집으로 와서 손 PD의 사망 사실을 확인했다.
이 집은 그 전에 팔기 위해 내놓은 집으로 당시엔 사람이 살지 않았다. 부부싸움을 한 뒤 고인과 연락이 되지 않자 임 작가가 그 집으로 찾아와 시신을 발견했던 것이다. 지난 14일 일산경찰서를 찾아 CCTV를 확인한 고인의 여동생은 “이런 경우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시신을 보존해야 하는데 왜 새언니(임 작가)가 계단에 쓰러져 있는 오빠를 계속 계단 밑으로 끌어내렸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또한 “하필이면 CCTV가 있는 그 빈집으로 가서 CCTV가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서 자살한 것인지 모르겠다. 새언니도 오빠의 시신을 계속 끌어내리며 거듭 CCTV를 의식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말도 덧붙였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은 고인이 사체를 끌어내렸다는 여동생의 얘기에 대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부인이 시신을 끌어안고 심하게 울고 있었다”라며 “당시 부인이 고인을 사진작가라고 해서 두 사람이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지 전혀 몰랐고 다만 우리가 시신을 확인하지 못할 정도로 계속 시신을 끌어안고 울고 있기에 부부 사이가 남달랐나보다 생각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한 “집에 부부가 함께 해외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이 많이 있었는데 정말 다정해 보이는 사진들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 손 PD가 목 매 숨진 현장. |
일부 언론을 통해 임 작가가 고인의 시신을 발견한 뒤 경찰이나 119가 아닌 친분이 있던 PD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고 보도했다. 뭔가 의도가 있어 보인다는 오해의 여지가 있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경찰이었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일산경찰서 소속 형사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가서 시신과 CCTV 등을 확인했는데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나중에 임 작가가 부른 남성이 한 명 오기는 했다. 부인(임 작가)이 원해 일산병원 장례식장에 연락을 취했는데 차량이 늦게 와 한 시간가량 기다렸다”고 밝혔다.
고인의 시신이 일산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한 시각은 22일 새벽 1시경. 이동 시간과 응급실에서 사망 진단을 받은 시간 등을 감안하면 22일 0시경에는 마두동 집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한 시간가량 병원 차량을 기다렸으니 21일 밤 11시경에는 경찰이 시신 확인을 모두 마쳤다는 얘기가 된다. 임 작가가 마두동 집에 도착해 고인의 사망 사실을 처음 안 시각이 21일 밤 10시경임을 감안하면 경찰과 119에 신고가 곧바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고인의 부모는 22일 새벽 두 시경에 연락을 받았다. 연락을 한 이는 임 작가가 부른 ‘친분 있는 PD’라는 안 아무개 씨다. 유가족에 따르면 안 씨는 고인이 아끼던 후배로 그동안 각종 행사 때마다 이들 부부와 동행했었다고 한다.
또한 유가족을 통해 유서의 필체가 고인의 친필이 아니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고인의 여동생은 “경찰서에서 유서를 봤는데 A4 용지 한가득 쓰여 있더라. 내용만 보면 참 아름다운 유서다. 못난 놈이 죽어서 남겨진 부인(임 작가)만 불쌍하다고 여겨질 내용”이라며 “그렇지만 오빠의 필체를 가장 잘 아는 내가 보기에 오빠 필체랑 너무 다르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일산경찰서 측은 “수사과정에서 필적 감정을 했다”며 고인의 글씨가 확실하다는 입장이다.
▲ 임 작가가 시누이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
자살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명확한 증거가 있는 만큼 재론의 여지가 없다. 경찰 역시 수사를 종료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왜 고인이 자살했느냐가 가장 큰 의문이다. 유가족은 고인의 성격상 우울증일 가능성은 전혀 없으며 술을 마시지 않아 술김에 욱하는 심정으로 자살한 것도 아닐 것이라 주장한다.
고인이 자살하기 전 마지막 행보는 임 작가와의 다툼으로 알려져 있다. 고인의 모친은 “며느리(임 작가)에게 물어 보니 최근 둘이 하는 일이 달라서 만나는 사람도 다른 데다 늦는 일도 많았다고 해요. 그러자 아들(손 PD)이 짜증을 내며 며느리와 사람 만나는 문제로 자주 다퉜다고 했죠. 그날도 그 사람 만나지 말라고 심하게 싸운 뒤 아들이 차를 몰고 가버렸대요. 그리고 연락이 안 돼 빈 집에 가보니 죽어 있었다고 하더군요”라고 얘기했다.
임 작가가 고인의 여동생에게 보낸 문자에도 자살 동기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 있다. 이 문자에는 ‘그 정도 잘못 짚어줬다고 자살한 남편 난들 이해가 가겠어요?’라는 대목이 나온다. 최근 뭔가 거듭된 다툼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임 작가가 어떤 잘못을 짚어준 것이 자살 동기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일과 관련된 사안이라는 점을 놓고 보면 드라마와 관련된 사안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두 사람은 오는 5월 MBC에서 새 일일드라마를 선보일 예정이었다. 전작 <신기생뎐>의 경우 본래 고인이 연출을 맡았지만 도중에 새로운 PD가 투입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새로 시작하는 MBC 일일드라마가 다툼의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유가족은 고인과 임 작가 사이에 일과 관련된 다툼이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가 아닌 또 다른 사업에 대한 다툼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선 여동생은 “오빠는 원래 드라마가 아닌 자연 다큐멘터리 PD가 꿈이었다”며 “새언니(임 작가)와 결혼할 당시에도 드라마 연출이 아닌 다른 사업 계획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고인의 모친 역시 “결혼할 때 아들이 방송 일에 재능은 있지만 기회가 없는 이들을 키워주고 싶어 그런 일을 하려 한다고 했다”면서 “당연히 며느리와 그런 일을 같이하기로 약속한 줄 알았는데 결혼한 뒤에도 매번 조금만 기다리라고, 다 잘될 거라고만 얘기했다”고 회상했다.
#예고된 자살이었나?
아무리 다투고 헤어졌을지라도 임 작가가 빈 집에서 홀로 자살한 고인을 두 시간 만에 찾아냈다는 부분도 석연치 않다. 당시 함께 사는 집이라면 귀가해 시신을 발견할 수 있지만 그 집은 팔려고 내놓은 빈 집이었다. 평범한 부부 싸움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고 임 작가가 행여 고인이 자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는 추측도 가능한 대목이다.
유가족 역시 고인이 자살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었다고 한다. 사망 일주일 전에 걸려온 전화 때문이다. 고인의 모친은 “죽기 딱 일주일 전에 전화가 왔어요. 그러더니 ‘엄마 약속 안 지키고 거짓말하고 이간질하고 백지수표 남발하고 그렇게 해서 사람들 많이 죽일 거야, 이제’라고 그러는 거예요. 누가 그런다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뜬금없이 그런 얘길 하며 내게 ‘그러니까 엄마 조심해’라더군요”라며 “또 ‘묘지는 엄마, 쑥이 많이 나거나 질경이가 있는 데는 안 돼 절대 안 돼. 자손들도 안 좋아’라고 했어요. 그땐 혹시 자기가 해외에 나가있거나 할 때 아버지에게 그런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서 하는 얘기인 줄 알았지 이런 일은 생각도 못했죠”라고 설명했다. 또 “하필이면 결혼기념일에 CCTV가 있는 빈 집에서 혼자 목을 맨 데에도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제발 (임 작가가) 모든 진실을 얘기해줬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 손문권 PD의 생전 모습과 임성한 작가. |
히트작 제조기…사생활은 ‘꼭꼭’
고 손문권 PD의 부인 임성한 작가는 매우 유명한 인물이다. <보고 또 보고> <인어아가씨> <왕꽃 선녀님> <하늘이시여> <보석비빔밥> <신기생뎐> 등 인기 드라마를 집필해온 드라마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화려한 프로필에 비해 임 작가 본인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신비주의’ 작가로 유명한 임 작가의 사생활이 화제가 된 것은 드라마 <하늘이시여>의 조연출이던 고인과의 결혼이었다.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두고 있던 고인이 결혼 6년여 만에 이혼하고 12세 연상의 임 작가와 결혼한 것. 그리고 5년 만에 미망인이 되면서 다시금 임 작가가 화제의 인물이 됐다.
임 작가의 주된 거주지는 일산으로 이곳에 여러 채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5년여의 결혼 생활 동안 남편인 고인과 같이 살기도 했지만 상당 기간 동안은 따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여러 채의 부동산에 부부가 나눠서 살았던 것. 드라마 작가라는 독특한 직업 때문으로 보인다.
충주산업대학 전자계산학과를 졸업한 임 작가는 90년대에는 서울 소재의 한 사립초등학교에서 컴퓨터 강사로 활동해왔다. 당시 임 작가의 제자였던 이는 “<인어아가씨>가 큰 인기를 끌 무렵 동창들 사이에서 컴퓨터 선생님이 작가라는 사실이 화제가 됐었지만 모두 별다른 기억이 없을 정도로 특이한 점이 거의 없던 선생님이었다”고 회상한다.
임 작가는 미디어와의 접촉을 최대한 차단하며 지내왔다. 그가 고인의 사망 사실을 최대한 숨기려 하고 유가족에게도 사인을 심장마비라 속인 까닭은 아직 미스터리다. 다만 임 작가는 고인의 여동생에게 보낸 문자에서 “◯◯◯(여자 연예인) 남편도 자살이라 식구끼리 쉬쉬 장례 치렀고 ◯◯◯(유명 방송인) 부부 자살하니까 빈소도 안 차리기에 난 그래야 하는 건 줄 알았어요”라고 밝혔다.
임 작가가 미디어 등 외부 접촉을 최대한 피하려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일요신문>에선 과거 임 작가가 <인어아가씨> 게시판에 올렸던 두 편의 글을 어렵게 입수했다. 이 글은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는 임 작가가 자신의 속내를 솔직히 밝힌 거의 유일한 글이지만 게시판에서도 금세 내려갔다.
우선 이 글에서 임 작가는 기자와 언론사에 대한 불신을 강하게 드러냈다. 유일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글만 쓰면 된다’고 한 얘기가 ‘멋진 글만 써서 내놓으면 되잖아요’로 기사화된 것, 초등학교에서 특활 전임강사를 한 이력이 초등학교 교사였던 것으로 비춰진 것 등을 그 예로 들었다. 또 어떤 기자가 화장품 냉장고를 작가가 드라마에 협찬 받고 이득을 챙겼단 식으로 기사를 쓰고, 어떤 방송인이 자신을 하프 마라톤도 뛸 자격이 없는데 뛰고 있다는 글을 지면에 실었다는 내용도 지적했다. 또한 드라마 홈페이지엔 ‘인어 팬’도 많지만 대부분의 기자들이 그런 인용은 절대 안 싣고 드라마가 모든 시청자한테 욕만 먹는다고 쓰고 있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항의하거나 문제 삼지도 않고 그냥 최선을 다해 글을 쓰겠다는 다짐의 말도 나온다. 특히 ‘하프 마라톤 아니라 백 미터 달리기 할 능력이 안 된다고 해도 그러려니 할 겁니다’라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드라마를 거듭 발표해온 임 작가는 그만큼 안티 팬도 많았고 언론의 비판도 많이 받았다. 그러면서 더욱 임 작가는 폐쇄적인 성향을 보여 왔음을 이 글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