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발매한 싱글앨범 |
그녀의 사인은 정확한 부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현재 미궁에 빠진 상태다. 약물과다복용, 익사, 심장마비, 자살 등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명백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이 가운데 가장 유력한 추측은 약물복용이다. 평소 휴스턴은 신경안정제를 비롯한 여러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으며, 사망 당일 현장에서도 여러 처방약들과 술병이 발견돼 이런 추측을 뒷받침했다. 그녀와 가까운 사람들은 그녀의 죽음이 갑작스럽긴 하지만 과거 그녀의 행적을 살펴보면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인생의 정점에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유명 가스펠 가수인 시시 휴스턴의 딸이었던 휴스턴은 어린 시절부터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다. 교회 성가대 활동을 시작으로 15세부터는 어머니를 따라 나이트클럽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면서 가수의 꿈을 키웠다.
19세 때 음반회사 거물이자 훗날 인생의 멘토가 됐던 ‘아리스타 레코드’의 클리브 데이비스에게 발탁됐고, 1985년 데뷔 앨범인 <휘트니 휴스턴>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데뷔 앨범의 성공과 함께 그녀의 인생은 탄탄대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두 번째 앨범인 <휘트니>는 2500만 장이 팔렸고, 3옥타브를 넘나드는 그녀의 힘 있고 시원한 가창력에 곧 전 세계가 매료됐다.
그리고 1992년 영화 <보디가드>로 인생 최대의 전성기를 맞은 그녀는 영화음악의 대박과 함께 영화배우로서도 주목 받는 등 다방면에서 치솟는 인기를 누렸다. <사랑을 기다리며> <프리처스 와이프> 등 후속작까지 연달아 히트했고, 그녀의 승승장구는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런 바람과 달리 곧 불길한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연인지 몰라도 불행의 시작은 보비 브라운과의 결혼과 함께 시작됐다. 사실 둘의 결혼은 당시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여왕’이었던 그녀에 비해 브라운은 실패한 가수이자 말썽만 부리는 ‘악동’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처음 둘의 결혼생활은 마냥 행복해 보였다. 휴스턴은 “우리는 늘 함께 있었다. 무슨 일이든 항상 함께했다”며 애정을 과시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녀는 하지 말아야 할 것까지 함께하고 말았다. 바로 마약과 술이었다. 2009년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휴스턴은 “<보디가드>를 마친 후부터 마약 중독이 본격적으로 심해졌다. 브라운과 함께 거의 매일 마약을 했다. 주로 코카인과 마리화나였다”라고 털어 놓았다.
브라운의 가정폭력과 질투심 역시 그녀를 힘들게 했다. 브라운은 지난 2003년 한 차례 가정폭력으로 체포된 바 있으며, 당시 휴스턴은 뺨에 멍이 들고 입술이 찢어지는 등 처참한 모습이었다. 이와 관련, 휴스턴은 “여자가 남자보다 성공하면 남자들은 그걸 참지 못한다. 모든 건 질투심 때문”이라며 “이 때문에 밖에서는 항상 자신을 ‘미세스 브라운’으로 불러달라고 당부한다”고 말했다.
▲ 휘트니 휴스턴의 어린시절부터 절정기, 결혼 이후 마약에 중독된 모습까지. |
이에 곧 사람들은 ‘휴스턴이 마약을 한다’고 수군거렸고, 이런 의혹은 몰라보게 수척해진 그녀의 모습과 함께 2000년 하와이공항 경비대가 그녀의 짐 속에서 마리화나를 발견하면서 더욱 확산됐다. 이런 소문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2001년 ‘아리스타/BMG’와 무려 1억 달러(약 1110억 원)에 ‘세기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여가수로선 역대 최고의 대우였으며, 이로써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잠시나마 씻어낼 수 있었다.
2002년 ABC 방송 앵커인 다이앤 소여와의 인터뷰에서 휴스턴은 마약 소문과 관련된 자신의 억울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TV 인터뷰 방송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이 방송에서 그녀는 “파티를 좋아하긴 하지만 크랙(코카인의 일종)은 하지 않는다. 크랙은 싸구려다. 나는 싸구려 크랙을 하기엔 돈을 너무 많이 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거짓말은 얼마 안 가 들통이 나고 말았다. 2005년 <내셔널인콰이어러>에 공개된 애틀랜타 저택의 사진은 그야말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브라운의 누이인 티나 브라운이 “이 방법이야말로 휴스턴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며 제보한 사진은 돼지우리를 방불케 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방바닥에는 크랙 파이프와 각종 약물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방 곳곳은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티나는 “휴스턴은 마약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며칠 동안 밖으로 나오지 않는 날도 많다”고 폭로했다. 또한 악마가 보인다고 헛소리를 하면서 스스로 자학을 하거나 집안 물건을 부수는 등 폭력을 휘두르는가 하면, 욕실에 구멍을 뚫고 몰래 집안을 살피는 등 편집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마약에 취해서 소변을 가리지 못해 기저귀를 차고 다닌다는 충격적인 주장도 덧붙였다.
이 사진이 공개된 후 충격에 휩싸인 주변 사람들은 즉각 치료를 권했고, 휴스턴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재활원에 들어가는 등 마약을 끊기 위해 노력했다. 몇 달 동안 가족과 친구도 만나지 않고 재활에 매진했던 그녀는 2007년 마침내 브라운과도 이혼하는 등 새로운 시작을 다짐했다.
그리고 그녀의 재활은 성공적인 듯 보였다. 2009년 <오프라 윈프리 쇼>를 통해 처음 마약 중독 사실을 인정한 그녀는 “당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7개월 동안 잠옷만 입은 채 집에서 마약을 한 적도 있었다”고 털어 놓았다. 또한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생각도 없었다. 가수로서의 삶은 완전히 잊고 지냈다”고 말한 그녀는 “하지만 이제는 깨끗해졌다. 완전히 마약을 끊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아이 룩 투 유> 앨범과 함께 활동을 재개했지만 그녀는 이미 예전의 그 디바의 모습이 아니었다. 여전히 그녀는 마약에 취한 듯 보였으며, 무대 위에서도 혼자 서 있기 힘든 듯 휘청거리거나 땀에 범벅이 되는 등 늘 위태로운 모습을 보였다. 맑고 힘 있던 그녀의 목소리는 어느덧 마약과 담배로 인해 갈라지거나 쉬어 있었고, 고음은커녕 음정이 틀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결국 지난해 5월, 다시 재활센터에 입소했지만 별반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난동을 부리는 등 그녀의 기행은 계속됐으며, 여전히 오전 방송과 생방송은 거절하는 등 제멋대로 굴기 일쑤였다. 불행히도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하지 못한 채 돌연사한 그녀가 생전에 빚더미에 앉아 있었다는 소문도 들리고 있다. 한 친구는 “사망 당시 파산 상태였던 그녀가 주변 친구들에게 돈을 꾸곤 했다”며 “하루는 전화를 걸더니 100달러(약 11만 원)를 빌려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주택담보대출금과 세금을 체납해서 한때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는가 하면, 뉴저지의 저택은 현재 압류되기 직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1억 달러라는 ‘세기의 계약’을 비롯해 2억여 장의 앨범 판매 기록을 세웠던 그는 그 많은 돈을 다 어디다 날렸던 걸까. 이에 주변 사람들은 알코올 및 마약 중독이 가장 큰 이유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평생 마약에 쏟아부은 돈만 천문학적 액수였으며, 반대로 마약을 끊기 위해 들인 돈도 어마어마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3년 동안 재활에 들어간 돈만 매일 1300달러(약 146만 원)였으며, 이 소식에 팬들은 결국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은 꼴이 됐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소문은 무덤 속으로…
생전에 휴스턴을 괴롭혔던 소문 가운데에는 마약을 둘러싼 소문 외에도 양성애자라는 소문이 있었다. 휴스턴 본인은 이런 소문에 대해 끊임없이 부인했지만 눈을 감기 직전까지 그녀는 이 소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녀가 모든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보비 브라운과 결혼한 것 역시 이런 소문을 덮기 위해서였다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와 관련, 브라운은 자신의 전기에서 “휴스턴과 나는 다른 이유에서 결혼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이미지 변화를 위해서 결혼을 선택했다”라며 “언론은 줄곧 그녀를 양성애자로 몰아갔는데 그녀 입장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바로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의혹을 무마시키려 했다”고 말했다.
과거 그녀의 양성애 상대로 거론된 여성은 그녀의 오랜 친구이자 개인비서였던 로빈 크로포드였다. 둘이 동거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던 이런 소문은 한동안 그녀를 괴롭혔다. 휴스턴은 당시 “아마도 내가 20대 후반이 되도록 연애 한번 하지 않은 까닭에 불거진 오해다”라고 주장했다. 실제 그녀는 브라운을 만나 결혼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스캔들에 휘말린 적이 없었으며, 이런 까닭에 아름답고 성공한 그녀가 왜 남자를 만나지 않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소문은 그녀가 사망하기 몇 년 전 블로거들 사이에서 다시 불거졌다. 2009년 한 블로거는 “음반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둘의 관계에 대해 누구나 다 안다”며 “얼마 전 둘이 재결합했다”고 주장했다.
크로포드 외에도 한때 휴스턴의 동성애 상대로 지목된 여성으로는 영화 <탑건>의 켈리 맥길스가 있었다. 둘의 사이가 의심받기 시작한 것은 1988년 무렵이었으며, 당시 조디 포스터와 함께 삼각관계라는 다소 황당한 소문까지 불거졌었다. 그리고 1991년에는 휴스턴이 맥길스의 집에 주기적으로 드나든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런 소문은 더욱 확산됐다. 한동안 잠잠했던 둘 사이는 지난 2009년 맥길스가 커밍아웃을 선언하고, 포스터 역시 공개적으로 여성과 동거 생활을 시작하면서 다시 의심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휴스턴이 양성애자라는 소문은 그저 소문에 불과한 상태다. 맥길스는 <샌디에이고 게이 앤 레즈비언 뉴스>를 통해 “난 휴스턴을 만난 적이 없다”고 강력히 부인한 바 있다.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