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트링거 회장이 지난 1월 9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박람회에서 소니의 4K 홈 프로젝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소니 재정상황을 보면 알 수 있듯 소니의 발목을 붙잡는 최대 걸림돌은 만성적자를 보이는 TV 사업이다.
소니는 2007년에 세계 최초로 유기 EL TV를 내놓은 후 “차세대 주자가 될 것”이라며 시장 장악에 애썼으나 비싼 가격 탓에 채산성을 맞추지 못했다.
2010년에는 인터넷 TV인 소니 구글 TV를 내놓았으나 역시 시장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리모컨이 복잡해 불편하다는 혹평을 받은 데다 결정적으로 방송사들로부터의 콘텐츠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오는 6월 물러나는 미국인 하워드 스트링거 회장 겸 CEO(69)가 그간 펼쳐 온 경영방식인 이른바 ‘스트링거 체제’에 문제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주간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스트링거 회장은 언론인 출신으로 하드웨어에 무지한 탓에 일관성이 없는 전략을 내놓기 일쑤였다. 일례로 2009년에는 향후 연간 4000만 대 TV를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불과 3년이 지난 2011년 초에는 연간 2700만 대로 대폭 하향된 목표치를 내놨다. 더군다나 지난 6년간 TV 사업 부장만 해도 5명이나 바뀌었다. 그러다보니 TV 사업이 잘나가던 시기에 ‘꽃’이라 불리며 누구나 부러워하던 부장 지위가 이제는 모두가 기피하는 자리가 됐다. 한 간부는 “스트링거 회장이 하드 부문에 자신감이 없으니 인사가 엉망”이라고 토로했다.
실상 스트링거가 외국인으로서는 처음 소니의 수장으로 등극한 2005년 내부에서조차 의외의 인사라며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소니의 공동 창업자가 죄다 엔지니어 출신이었던 점과 비교해볼 때 그의 경력은 사뭇 이색적인 CBS 방송 프로듀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트링거가 1997년 소니 미국법인 사장으로 발탁된 후 보여준 성과도 만만치 않았다. 스트링거는 자신의 강점을 살려 영화 사업에 힘을 쏟았다. 스파이더맨 시리즈 등 히트작을 전 세계에 보급했고, 소니 뮤직의 BGM 인수 등을 성공리에 이끈 바 있다. 또 당시 소니가 독점하다시피 한 MP3플레이어 시장에서 애플이 아이팟을 출시해 돌풍을 일으키는 등 위기감이 고조됐다. 이런 가운데 소니는 소프트웨어 비즈니스에 중점을 뒀고, 영화와 음악 부문에서 그나마 안정적인 수익을 냈다.
반면 하드웨어 쪽에서는 부진한 실적을 면치 못했다. 물론 아직도 세계 시장 점유 1위를 차지하는 비디오카메라를 필두로 디지털카메라 등이 선전해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렇지만 TV사업 적자가 카메라 부문 흑자의 3배에 달하는 지경이다.
또 사외이사도 경영을 투명하게 감시해야 할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15명의 사외이사 중 전자 사업에 밝은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데다 이사회에서도 사업 현황이나 실태에 대해 제대로 된 논의가 어렵기 때문이다.
<주간다이아몬드>에 따르면, 변호사 출신 니콜 셀링맨 이사회 사무국장은 소니의 한 간부에게 “어차피 스트링거 회장이 전자 부문을 몰라 토의가 어려우니 이사회에 상세한 정보는 안 알려도 된다”고 한 적이 있다. 셀링맨 국장은 스트링거 체제에서 넘버 투로 불려온 인물. 한마디로 스트링거는 벌거벗은 임금님이었던 셈이다.
한편 기술자를 홀대하는 풍조도 소니의 실패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스트링거 회장은 취임 후에도 뉴욕에 거주하며 일본에 올 때는 언제나 호텔에 머물었는데, 일본어를 몰라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만 가까이 했다고 한다. 엔지니어들은 소통이 어려워 자연스레 멀어지게 됐다.
특히 2005년 이후 계속되어온 엔지니어 퇴출을 두고 소니가 기술 사업이란 본래 모습을 잃고 있다는 비판도 회사 안팎에서 강하게 제기됐다. 2009년에는 소니의 최첨단 기술연구 부문이 해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1년 4월 해커집단 어노니머스의 공격으로 소니네트워크에 등록된 770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나기 몇 달 전 보안 담당부서 직원을 여럿 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이러한 회사의 풍토 때문에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할 기회가 날아갔다는 지적이다. 인터넷과 TV시청이 가능한 휴대용 단말기 ‘에어보드’는 2001년 출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판매가 중단됐다. 2003년 나온 네트워크 접속형 PDA ‘클리에’도 에어보드와 마찬가지 운명을 걸었다. <사요나라! 우리의 소니>란 책을 쓴 저널리스트 다테이시 야스노리는 “에어보드나 클리에를 개량했더라면 아이패드만큼이나 선구적 태블릿PC로 자리매김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애석함을 나타냈다.
현재 소니는 매년 폭발적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든 상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소니 그룹 전체에 “장기적 비전이 없다”며 치열한 경쟁에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을 표하고 있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 스티브 잡스. AP/연합뉴스 |
잡스는 소니빠였다
오늘날 혁신의 대명사는 애플로 불리지만 소니도 진보된 기술과 독자적인 미학으로 애플 못지않게 열광적인 팬을 거느리던 시절이 있었다. 트랜지스터라디오가 나와 구미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1958년, 워크맨 출시로 각광받던 1979년, 플레이스테이션 출시로 세계 게임 시장을 압도한 1994년 무렵이다. 애플의 공동창업자 고 스티브 잡스도 워크맨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스티브 잡스는 어렸을 적 워크맨을 선물 받고 곧바로 분해해 조립했을 정도로 워크맨에 매료됐다고 한다. 1999년 10월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애플 신제품발표 설명회 당시 스티브 잡스는 평소 즐겨 입는 검은 터틀넥에 청바지 차림과는 달리 검은 양복을 쫙 빼입고 나타났다. 타계한 소니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를 기리고자 했던 것이라고 한다.
실제 스티브 잡스는 2002년 당시 인기가 있던 소니의 ‘바이오’ 노트북에 맥 화면을 띄워놓고 소니 간부를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바이오에 맥OS를 넣거나 신제품 개발을 위한 파트너십을 맺자는 제안을 했던 것. 하지만 소니 사내에서 의견이 엇갈리면서 무산됐다.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