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 취급받는 연예 활동 누군가에게는 ‘생계’…자발적 공연 취소·연기 시 대관료 돌려받기 어려워
이태원 참사 이후 몇몇 연예계 관계자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꺼냈다. 10월 29일 사고 발생 이후 11월 5일까지 국가애도기간이 선포됐다.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 기간 공연과 컴백이 예정됐던 가수들은 일제히 이를 미루거나 취소했고, 예능 프로그램도 결방됐다. 하지만 이런 연예계 활동이 누군가에는 ‘유흥’일 수 있으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계’다. 그렇기 때문에 연예 활동 자체가 부적절한 것으로 치부되는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음악만 한 위로와 애도가 있을까요?”
싱어송라이터 정원영은 추모 물결이 한창이던 지난 11월 1일 SNS를 통해 “모든 공연을 다 취소해야 하나요. 음악만 한 위로와 애도가 있을까요”라고 소신을 밝혔다. 타당한 의견 제기다. 적잖은 이들이 기쁠 때나 슬플 때, 음악을 들으면서 그 마음을 달래거나 돋우곤 한다. 특정한 시기에 어떤 노래를 듣고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사연도 적잖다. 하지만 국가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음악을 트는 행위 자체가 사회적 애도 분위기에 반한다는 인식이 적잖다. 실제로 몇몇 유명 커피숍은 ‘국가 애도 기간 중 음악을 틀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싱어송라이터 생각의여름(박종현)은 10월 31일 SNS에 “예나 지금이나 국가기관이 보기에는 예술 일이 유흥, 여흥의 동의어인가 보다”라면서 “공연이 업(業)인 이들에게는 공연하지 않기뿐만 아니라 공연하기도 애도의 방식일 수 있다. 레퍼토리를 다시 생각하고 매만져보고, 무슨 이야기를 관객에게 할까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이 제가 선택한 방식”이라고 목소리를 냈다.
이는 예능 프로그램도 고스란히 적용됐다. 이태원 참사가 벌어지고 약 일주일간 대다수 예능 프로그램이 결방됐다. 2012년 은퇴 선언 후 10년 만에 KBS 2TV ‘불후의 명곡’을 통해 복귀하는 가수 패티김의 녹화 역시 일주일 연기됐다.
웃음을 본령으로 하는 예능의 속성 상, 애도 기간에 방송되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일주일의 결방 후 11월 6일 방송된 SBS 예능 ‘싱포골드’에서 부산에 사는 육아맘으로 구성된 합창단 조아콰이어가 부른 ‘좋은 나라’를 들은 뒤 “이태원 참사 후 아픈 마음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시인과촌장이 발표한 이 노래의 가사 중에는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그곳에서 만난다면 슬프던 지난 서로의 모습들은 까맣게 잊고 다시 인사할지도 몰라요”라는 구절이 있다. 이태원 참사 발생 전에 진행된 녹화였는데, 절묘하게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 그리고 그로 인해 상처받은 모든 이들을 위한 위로와 같았다.
결국 ‘예능은 안 된다’는 획일적인 명제는 성립될 수 없다. 누군가는 오히려 마음이 힘든 시기, 웃음을 주는 콘텐츠를 보며 다시 기운을 얻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사회적으로 웃음이 상실된 채, 모두가 침통해 하는 분위기가 되레 우울감을 키운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대중음악평론가 배순탁은 “언제나 대중음악이 가장 먼저 금기시되는 나라. 슬플 때 음악으로 위로받는다고 말하지나 말든가”라면서 “우리는 마땅히 애도의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애도의 방식은 우리 각자 모두 다르다. 다른 게 당연하다. 방식마저 강요하지 말기를 바란다”는 소신을 전했다.
#그들의 피해는 아무도 모른다
이태원 참사 직후 이미 계획됐던 공연들이 줄줄이 취소됐다. 가수 백지영은 11월 5일 전국투어 청주 공연을 취소했고, 장민호는 11월 4∼6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기로 했던 공연을 진행하지 않았다. 혼성그룹 코요태 역시 11월 5∼6일 서울 세종대 대양홀에서 열려던 전국투어 서울 공연을 미뤘고, 이문세도 당진 콘서트를 취소했다. 이는 해외 스타도 예외가 아니었다. 8년 만에 내한 예정이었던 마이클 볼튼은 11월 8∼9일로 계획했던 공연을 내년 1월로 연기했다.
공연을 연기한 경우도 있고 아예 취소한 경우도 있다.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비용이 발생한다. 대관을 비롯해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세션 섭외와 각종 무대 장치 등의 비용이 들었으나, 취소나 연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고스란히 손해로 돌아온다. 혹자는 “사람이 죽었는데 그 몇 푼이 중요한가?”라고 타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가수들에게 사고 발생에 대한 직접적 책임이 있진 않다. 추모 열기에 동참하자고 할 수는 있으나, 그 누구도 그들에게 금전적 피해를 강요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그럼 그들은 이 손해를 어떻게 충당할까. 익명을 요청한 한 가요계 관계자는 “계약 시 약관에 ‘천재지변에 의한 취소’의 경우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다는 조항이 있긴 하다. 하지만 추모 분위기에 참여하는 뜻의 자발적 취소의 경우 이 조항 적용이 애매하다. 이로 인한 분쟁이 생겨 외부로 알려지면 이미지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손해가 있더라도 가수와 기획사가 감수하곤 한다”고 말했다.
이런 피해는 TV 예능에 출연하는 연예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프로그램 노출이 출연료 정산의 기준이 된다. 프로그램이 한 주 결방하면 그만큼의 경제적 이윤이 줄어드는 것이다.
또 다른 연예계 관계자는 “정말 많은 출연료를 받는 몇몇 스타를 제외하면, ‘생계형 연예인’이 적잖다. 국가적 재난으로 인해 몇 주간 결방이 이어지면 생계에 직접적 타격을 입는다. 하지만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할 때 이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어렵다”면서 “물론 콘텐츠의 주제나 성격을 고려해야겠지만, ‘무조건 예능은 안 된다’는 인식은 가혹한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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