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균’ 단백질·칼슘 등 주요 영양 성분 큰 차이 없어…우유 소비 줄었지만 유제품 소비는 늘어
원유 기본 가격을 리터당 49원 올리기로 한 낙동진흥회는 10월 16일부터 12월 31일까지는 3원이 더 많은 52원 인상 가격을 적용하기로 했다. 생산자와 유업계의 가격 조정 협상이 길어지면서 지난 8월부터 조정된 가격을 적용하지 못한 상황을 감안한 것이다. 이에 따라 올해 말까지 원유 기본 가격은 리터당 999원이다.
이번 인상폭은 원유가격 연동제가 도입된 2013년 이후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올해까지는 생산비 상승폭의 90~110% 범위 내에서 인상하는 연동제에 따라 원유가격을 매겼지만 내년 1월부터는 음용유와 가공유 등 원유 용도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적용한다. 따라서 내년 1월부터는 49원 인상된 리터당 996원이 음용유용 원유에 적용될 예정이며 가공유 가격은 리터당 800원이 적용된다.
원유가격 인상에 따라 우유, 빵, 카페 제품, 유제품 등 식품 가격도 줄줄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요신문i와 통화한 유업체 3곳은 모두 “원유가격 인상에 따라 우유 소비자 가격 인상도 내부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우유 소비자가격은 평균적으로 1리터당 2700원이다. 지난해 원유가격이 21원 올랐을 때 우유가격이 150~200원 인상된 바 있어 이번에는 우윳값이 3000원을 넘어갈 수도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보통 국내 우유가격은 생산비 상승, 유통마진 등의 이유로 인상된다. 낙농업계 한 관계자는 “사료값뿐 아니라 제반 물가가 다 올랐다”며 “연동제만 아니었으면 150원, 200원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유를 생산하기 위해 들어가는 사료비, 인건비, 관리비 등이 오르면서 낙농업계에서는 원윳값을 올려야 하고, 인상된 원윳값을 고려해 유업체들은 우유가격을 조정한다. 낙농업계 다른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과도한 유통 마진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일본이 우리나라에 비해 원유가격이 비싼데 우유 가격은 오히려 더 싸다”며 “우리나라 유통마진이 엄청 세다”고 토로했다. 한국낙농육우협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우유 유통마진은 38%이며, 미국 8%, 일본은 10%다.
우유 가격 인상 소식에 국산 우유 대신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수입 우유를 구매하는 소비자도 생기고 있다. 다만 대부분 수입 우유는 냉장 보관 상태의 살균우유가 아닌 실온에서도 보관이 가능한 멸균 우유다. A 유업체 관계자는 “전체 시장을 다 알 수 없지만 아직까지 수입산 살균우유는 본 적이 없다”며 “우유 수입을 하려면 배를 이용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한 달 이상 소요된다. 살균우유는 유통기한이 10일 내외로 짧고, 냉장보관도 해야 해서 수입이 어렵다”고 말했다.
살균우유는 63~130도의 열을 가해 미생물·병원균 등을 안전한 범위 내에서 줄인 우유이며, 멸균우유는 135~150도의 열로 균을 완전히 없앤 우유를 말한다. 살균우유는 유통기한이 길어야 2주 정도라 수입이 어려운 반면 멸균우유는 유통기한이 6개월~1년이며 상온에서도 보관이 가능해 수입도 가능하다. 심지어 수입산 멸균우유는 1리터당 1000원대 초중반 가격이어서 국산 우유보다 저렴해 소비자들이 많이 구매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멸균우유 수입량은 1만 4675톤(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326t)에 비해 57% 늘었다.
멸균우유가 살균우유보다 높은 열을 가하기 때문에 영양소 차이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우유의 주요 영양소인 단백질이나 칼슘 등은 큰 차이가 없다. 박정숙 백석문화대학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신선도나 맛에서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멸균우유와 살균우유의 영양소 차이는 크지 않다”며 “우유를 마시는 목적은 단백질과 칼슘을 섭취하기 위해서다. 상품으로서 가치를 생각하면 이 영양소들이 파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살균‧멸균 처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A 유업체 관계자도 “멸균유는 유익균도 완전히 없애고 비타민, 미네랄 등이 일부 손실될 수 있지만 주요 영양 성분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전했다.
소비자들의 우유 소비는 점점 줄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도 우유시장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B 유업체 관계자는 “저출산으로 소비 감소도 됐고, 우유를 대체할 만한 제품이 많아졌다”며 “우유는 저관여 상품이라 값도 싸고 쉽게 먹을 수 있는 제품인데 소비자들의 가격 민감도가 굉장히 높아서 가격이 계속 오르면 가격 경쟁력을 잃어가고 소비가 더 줄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026년이 되면 FTA(자유무역협정)에 따라 우유에 붙는 관세가 철폐돼 공격적으로 해외 제품들이 넘어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 상황이 되면 국내 유업체를 비롯해 낙농가들도 다 어려워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유 소비가 늘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우유가 빵, 아이스크림 등의 재료로 쓰이면서 카페나 기업 등의 우유 소비가 늘고 있다는 것이 방증이다. A 유업체 관계자는 “여전히 일반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우유가 더 많긴 하지만 카페 등에서 주문하는 물량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며 “카페 수가 증가하면서 B2B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애 인천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카페도 늘고, 우유가 들어간 커피 소비량도 늘면서 카페나 기업에서 음료나 디저트의 재료가 되는 우유를 많이 소비하게 됐을 것”이라며 “앞으로 우유를 사먹는 것보다 우유로 만든 음료나 제품들을 더 많이 구매하고 접하게 될 것이며 우유나 유제품 관련 선택지도 더 다양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우유와 유제품의 소비량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당 우유(음용유) 소비량은 2001년 36.5kg에서 2020년 31.8kg으로 감소했지만 치즈나 버터 등 유제품의 소비량은 2001년 63.9kg에서 83.9kg으로 늘었다. 전형주 장안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우유가 다른 식품에 비해 영양소나 가성비 측면에서 좋은 식품이지만 우유를 대체할 만한 식품들이 많이 나오다 보니 마시는 우유의 소비는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며 “우리나라는 유당 불내증 등으로 우유가 안 맞는 사람도 꽤 있어서 우유가 들어간 음식이나 제품을 통해 섭취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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