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성기’ 황선홍 마지막 평가전에서 인대 손상…이동국·김진수도 불운의 아이콘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을 눈앞에 두고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팀의 절대적 에이스인 손흥민이 큰 부상을 당한 것이다. 손흥민은 지난 1일 마르세유와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공중볼 경합을 하다 충돌한 이후 교체돼 나갔다. 경기 후 라커룸 사진에 얼굴을 비춰 심각한 상황이 아닌 듯했지만 골절을 진단 받았고 수술까지 이어졌다. 국내 축구팬들의 뇌리에는 월드컵 개막 직전 주요 선수들의 부상이 이어지는 악몽이 다시 한 번 스쳤다.
#마지막 평가전에서 부상
불의의 부상으로 월드컵에 나서지 못한 대표적인 선수는 황선홍이다. 대학생 신분으로 월드컵 무대에 나선 1990년 이후 10년 이상 그는 대표팀 간판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공격수로서 전성기 때 열린 대회인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황선홍은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대회 직전 치른 평가전에서 부상을 당하면서다.
황선홍은 어린 시절부터 부상이 잦은 선수였다. 프랑스 월드컵을 1년여 앞둔 시점, 다시 한 번 무릎 십자인대 파열을 경험한다. 이에 1997년 내내 이어진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 참가하지 못했다. 황선홍은 1998년 4월이 돼서야 A매치에 복귀했다. 복귀전인 한일전에서 그림 같은 결승골을 넣으며 여전한 감각을 선보였다. 이어진 평가전에서도 계속 출전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유고, 체코 등 강팀을 상대로 득점에 성공했다.
월드컵 이전 국내에서 마지막 평가전인 중국과 경기에서 황선홍은 불의의 부상을 당했다. 골문으로 쇄도하던 중 골키퍼와 충돌해 또 다시 인대에 손상을 입었다. 황선홍의 몸 상태에 대해 월드컵 참가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결국 황선홍은 조별리그 3경기 모두 결장했다.
당시 대표팀 일원이었던 이상윤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황선홍의 부상 장면을 생생히 기억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넘어지는 순간 큰 부상이라는 것을 직감했다"며 "팀 전체가 초상집 분위기였다. 황선홍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앞서 두 번의 월드컵을 경험한 공격수였다. 정점을 찍을 시기였고 최고의 활약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너무 안타까운 부상이었다"고 말했다.
작지 않은 부상이었지만 황선홍은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합류, 대회가 열리는 프랑스 현지까지 함께했다. 이상윤 해설위원은 "그때 마지막까지 황선홍이 팀 닥터와 함께 어떻게든 회복하려 애쓰던 모습이 기억난다. 마지막 한 경기라도 뛸 줄 알았는데 그럴 상태가 아니었던 것 같다"며 "팀 분위기가 정말 가라앉았다. 공격진 선수들은 황선홍이 없다는 사실에 부담감도 컸다"고 설명했다.
#'황선홍 후계자' 이동국의 월드컵 불운
황선홍 개인과 한국 축구에 비극이었던 1998 프랑스 월드컵. 주축 선수의 부상, 조별리그 3경기 무승(1무 2패), 대회 도중 감독 경질 등 악재가 이어진 대회였지만 그 중 희망도 있었다. 대회를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대표팀은 뜻밖의 환대를 받았다. 네덜란드를 상대로 대패하던 경기에서 후반 교체 투입돼 위협적인 슈팅을 날리던 만 19세 공격수 이동국의 존재감이 크게 작용한 덕분이다.
그러나 이동국은 2002 한일 월드컵 신화를 만든 거스 히딩크 감독과 궁합이 좋지 못했다. 히딩크 감독 체제에서 11경기에 나섰지만 득점은 1개에 불과했다. 결국 한일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하며 좌절을 경험했다.
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이동국은 다시 한 번 대표팀 핵심 공격수로 자리매김했다. 아시아 지역예선 8경기에 출전해 4골을 넣으며 팀을 본선으로 이끌었다. 소속팀에서도 9경기에서 7골 1도움을 기록하며 쾌조의 컨디션을 자랑했다.
하지만 월드컵과 악연은 또 다시 이어졌다. 월드컵을 눈앞에 둔 시점, 리그 경기를 치르다 부상을 입은 것이다. 무릎 인대가 끊어지는 큰 부상이었다. 월드컵이 열린 독일에 대회 참가가 아닌 치료를 위해 갔다. 그라운드가 아닌 관중석에서 동료들의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4년 뒤 2010 남아공 월드컵 직전에는 수비수 곽태휘가 앞서 황선홍, 이동국과 유사한 상황을 맞았다. 대회 직전 최종 담금질을 위해 떠난 유럽 전지훈련에서 벨라루스와 평가전 중 무릎 내측인대 파열 부상을 당한 것이다. 월드컵 본선 첫 경기를 불과 13일 남겨둔 상황에서 곽태휘는 국내로 돌아와야 했다.
#악몽 같았던 2018 러시아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가장 많은 부상자가 발생한 대회는 2018 러시아 월드컵이다. 최종예선 마지막 단계에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경질되고 신태용 감독이 부임하는 과정에서 히딩크 감독 논란이 이는 등 어수선했던 외부 분위기만큼 선수단에서도 부상으로 인한 혼란이 많았다.
시작은 김진수였다. 2018년 3월 북아일랜드와 평가전에서 김진수는 무릎 내측 인대 파열 부상을 입었고 월드컵까지 회복하지 못했다. 4년 전 2014 브라질 월드컵에 이어 두 대회 연속 부상으로 대회에 나서지 못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로도 선수들의 부상 소식이 이어졌다. 대표팀 내 존재감을 키워가던 김민재(정강이뼈 골절), 염기훈(갈비뼈 골절), 이근호(무릎) 등이 각자 소속팀 경기를 치르다 쓰러졌다.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던 권창훈마저 부상을 피하지 못했다. 당시 권창훈은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의 공격 첨병으로 낙점받은 자원이었다. 디종 소속으로 프랑스 리그에서 11골 3도움을 기록해 큰 기대를 받고 있었지만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부상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지 못했다. 신태용호의 부상 악령은 대회 중에도 이어졌다. 박주호와 기성용이 연이어 쓰러지며 대표팀은 온전한 전력을 가동하기 어려웠다.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까지 10일, 우리나라 대표팀의 첫 경기까지 약 2주가 남았다. 선수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은 역시 부상이다. 두 번의 월드컵을 경험한 이상윤 해설위원은 부상을 방지하는 방법으로 '집중력'을 꼽았다. 그는 "부상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불운은 피하기 쉽지 않다"면서도 "집중력을 유지하고 긴장감을 놓지 않아야 한다. 몇몇 부상 장면을 돌아보면 긴장감이 다소 풀렸을 때 사고가 일어났다. 우리 대표팀 내에서 더 이상 부상은 부디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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