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G vs 키움 4차전까지 일진일퇴…5차전 김강민 KS 최초 끝내기 대타 홈런으로 시리즈 향방 갈라
SSG는 정규시즌에도 리그 사상 최초로 개막일부터 최종일까지 단 한 번도 1위를 놓치지 않는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차지했다. KS에서도 막강한 전력을 과시하면서 명실상부한 최강팀의 위용을 뽐냈다.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는 5차전 9회 말에 대타로 나와 역전 끝내기 3점 홈런을 터트린 베테랑 외야수 김강민에게 돌아갔다. 김강민은 기자단 투표에서 유효표 77표 중 42표를 받았다. 40세 1개월 26일의 나이로 상을 받아 역대 KS 최고령 MVP 기록도 세웠다.
#전병우의 '가을 반란'
인천에서 막을 올린 올해 KS 첫 경기의 승자는 원정팀 키움이었다. 키움은 정규시즌 3위로 포스트시즌 티켓을 따낸 뒤 준플레이오프(준PO) 5경기와 플레이오프(PO) 4경기를 거쳐 어렵게 KS에 올랐다. 앞선 시리즈에서 이미 체력 소모가 커 불리한 상황에 놓인 듯했지만 창단 첫 우승에 목마른 키움 선수들의 가을 투혼이 값진 승리를 만들어냈다.
초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올해 KBO리그 최고 투수인 에이스 안우진이 2와 3분의 2이닝 동안 공 58개를 던지면서 2피안타(1피홈런) 4탈삼진 2실점 하고 조기 강판했다. 안우진은 KT 위즈와 준PO 1차전과 5차전에서 평균자책점 1.50으로 호투하면서 시리즈 MVP에 올랐고, LG 트윈스와 PO 3차전에서도 6이닝 2실점 역투로 승리를 뒷받침한 '기둥'이었다. 그러나 가을야구 첫 등판이던 준PO 1차전에서 손가락에 물집이 잡혀 계속 고생했고, KS 1차전 도중엔 끝내 물집이 터져 더는 마운드를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키움의 남은 경기에 그대로 그림자가 드리우는 듯했다.
그때 키움의 8년 차 내야수 전병우가 또 한 번 '가을 반란'을 일으켰다. 전병우는 키움이 4-5로 뒤진 9회 초 1사 2루에서 깜짝 대타로 투입됐다. 엎치락뒤치락 시소게임을 펼치던 키움이 8회 말 SSG에 한 점을 내줘 패전을 눈앞에 뒀던 상황이었다. 전병우는 SSG 베테랑 불펜 투수 노경은의 초구 슬라이더가 몸쪽으로 높게 들어오자 날카롭게 배트를 휘둘렀다. 타구는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역전 2점 아치가 됐다. 생애 첫 KS 타석에서 홈런으로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SSG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수세에 몰린 9회 말 1사 후, KS에서만 40경기 가까이 뛴 40세 베테랑 김강민을 대타로 내보냈다. 김강민은 키움 마무리 투수 김재웅의 직구를 두들겨 벼락 같은 좌중월 동점 솔로포를 터트렸다. 스코어는 그렇게 다시 6-6 원점. 끝내 승부는 연장전으로 접어들었다.
연장전의 주인공 역시 전병우였다. 그는 프로 입단 8년 만에 잡은 스포트라이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0회 초 2사 1·2루에서 SSG 외국인 투수 숀 모리만도를 상대로 좌전 적시타를 쳤다. 2루 주자 야시엘 푸이그가 홈을 밟으면서 키움은 값진 결승점을 뽑았다. 4시간 19분에 걸친 혈투에 사실상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이었다.
키움의 승리와 별개로 이 경기는 가을야구 역사에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겼다. 역대 포스트시즌 사상 최초로 대타 홈런이 한 경기에서 두 번(전병우·김강민) 터졌다. 또 김강민은 40세 1개월 19일의 나이로 홈런을 쳐 역대 포스트시즌 최고령 홈런 기록을 다시 썼다.
#'아기 짐승' 최지훈의 결자해지
홈에서 열린 첫 판을 아깝게 내준 SSG는 다음 날 2차전에서 곧바로 반격했다. '짐승남' 김강민의 후계자라는 의미로 '아기 짐승'이라는 애칭을 얻은 SSG 외야수 최지훈이 이날의 주인공이었다.
최지훈은 2차전을 앞두고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1차전에서 3타수 무안타 2삼진으로 침묵한 데다 수비에서도 두 차례 아쉬운 플레이로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는 김강민의 자리를 물려 받을 정도로 빠른 발과 강한 어깨,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하는 중견수다. 그래서 더 의외의 결과였다. 스스로도 "수비를 잘해야 하는 포지션인데, 결과가 그렇게 나와 자존심이 상했다"고 털어놨다.
절치부심한 최지훈은 첫 타석부터 힘차게 배트를 돌렸다. 무사 1루에서 중전 안타를 때려 1·3루 기회를 이어갔다. 그 후 키움 선발 타일러 애플러는 볼넷 2개를 주며 흔들렸다. SSG는 적시타 없이 1회에만 3점을 뽑았다. 최지훈은 두 번째 타석에서도 안타를 치고 나가 2루 도루까지 했다.
3-1로 앞선 5회 1사 1루에선 애플러의 커브를 걷어올려 오른쪽 담장을 넘겼다. 데뷔 첫 포스트시즌 홈런. 5-1로 달아나면서 사실상 승리를 확정하는 귀중한 한 방이었다. 7회 한유섬의 쐐기 솔로포까지 터지면서 SSG는 6-1로 승리했다. 김강민은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최지훈의 헬멧을 두드리며 축하 인사를 보냈다.
SSG 외국인 에이스 윌머 폰트는 7이닝을 5피안타 1실점으로 막고 정규시즌 15승 투수의 위력을 뽐냈다. 투구 수 100개 중 83개를 직구로 던졌는데도 '알아도 못 치는' 구위와 제구력을 뽐내며 키움 타자들을 완벽하게 제압했다.
#'수비형' 외인 라가레스의 반전 홈런
3차전은 키움의 홈인 고척스카이돔으로 자리를 옮겨 진행됐다. 7회까지 스코어는 키움의 1-0 리드. 시리즈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두 팀의 집중력과 위기 관리 능력이 고비마다 상대의 득점을 막았다. KS 1차전에 불펜 등판한 뒤 이틀 쉬고 마운드에 오른 키움 에릭 요키시는 5와 3분의 2이닝 7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여러 차례 찾아온 위기를 실점 없이 버텨냈다. SSG 선발 오원석도 데뷔 첫 포스트시즌 등판에 선발 투수로 나서 5와 3분의 2이닝 5피안타 1실점으로 역투했다.
팽팽히 맞선 두 팀의 희비가 엇갈린 건 8회 초였다. 1사 후 키움 유격수 김휘집이 SSG 최정의 땅볼 타구를 잡았다가 1루로 악송구하면서 경기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다음 타자 후안 라가레스는 2사 2루에서 키움 불펜 김동혁의 낮은 체인지업을 걷어 올려 오른쪽 담장을 넘기는 역전 결승 투런 홈런을 쏘아 올렸다. 먼저 투스트라이크에 몰리고도 공 3개를 커트해내며 버티다 결국 6구째를 공략해 최고의 결과를 냈다. 3차전의 승기가 단숨에 SSG 쪽으로 넘어오는 한 방이었다.
라가레스는 이전까지 SSG에 몸 담았던 헥터 고메스, 제이미 로맥, 케빈 크론 등 거포형 타자들과 다른 장점을 가진 선수다. 홈런을 많이 치진 못하지만 메이저리그(MLB) 뉴욕 메츠 소속이던 2014년 리그 최고의 수비수에게 주는 골드글러브를 수상했을 정도로 수비력이 안정적이다. 그런 라가레스가 가장 중요한 무대인 KS 3차전에서 홈런으로 존재감을 뽐냈다. 라가레스가 포스트시즌에서 홈런을 친 건 MLB 시절을 포함해 이번이 처음이다. 2015년 메츠 소속으로 월드시리즈 무대까지 밟았지만 홈런을 친 적은 없다. 라가레스 개인에게도 적잖은 기쁨인 셈이다.
키움은 역전 직후인 8회 말 선두타자 이정후가 우중간 2루타로 출루해 기회를 만들었지만 포스트시즌에서 불펜으로 투입된 SSG 잠수함 투수 박종훈이 실점 없이 아웃카운트 3개를 잡아 상대의 추격을 봉쇄했다. 여세를 몬 SSG는 9회 초 최정의 2타점 적시타 등으로 대거 6점을 보태 완승했다.
#'깜짝 카드' 이승호 또 통했다
1승 2패로 몰린 키움은 고민이 깊었다. KS 시작 전 4차전 선발로 예정했던 투수는 에이스 안우진이었다. 사흘만 쉬고 등판해야 하는 일정이었지만, 마땅한 국내 선발 투수가 없는 키움 마운드의 현실에선 감당해야 할 강행군이라 여겼다. 안우진 역시 흔쾌히 팀을 위해 희생을 자처한 터였다. 그러나 1차전에서 손가락 물집 상태가 악화되면서 도저히 4차전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왼손 이승호는 그런 키움이 고육지책으로 택한 깜짝 선발 카드였다.
이승호는 올 시즌 53경기에 모두 구원 등판했고, 앞선 준PO와 PO 3경기에도 모두 불펜으로 나섰다. 하루아침에 선발 투수만큼 긴 이닝을 소화하긴 어려웠다. 홍원기 키움 감독도 "공 50개 정도로 3이닝만 막아주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그런 이승호가 4이닝을 1피안타 1실점으로 역투하면서 그 기대를 뛰어넘었다. 지친 키움 마운드의 천군만마이자 팀이 초반 경기 흐름을 장악하게 한 일등공신이었다.
출발은 불안했다. 1회 초 선두 타자 추신수의 볼넷과 자신의 폭투로 1사 2루 위기를 자초했고, 최정에게 빗맞은 우전 적시타를 허용해 선취점을 내줬다. 그러나 이후 마운드를 내려갈 때까지 더는 안타를 맞지 않았다. 1회를 추가 실점 없이 마무리한 뒤 2~3회를 연속 삼자범퇴로 막았다. 4회 역시 선두타자 최정을 볼넷으로 내보냈을 뿐 후속 세 타자를 범타로 처리했다.
그 사이 키움 타선은 집중타로 SSG 선발 숀 모리만도(2와 3분의 1이닝 9피안타 6실점 5자책점)를 무너뜨렸다. 1-1로 맞선 3회 말 선두타자 전병우가 좌익선상 2루타로 포문을 열었고, 이정후가 우전 적시타로 역전 점수를 뽑았다. 1사 후엔 김태진의 안타와 이지영의 좌전 적시타가 이어졌다.
키움의 '가을 남자' 송성문은 계속된 1·2루서 한가운데 펜스 바로 앞에 떨어지는 2타점짜리 적시 2루타를 쳤다. 이어 당황한 SSG 야수들이 매끄럽지 못한 중계 플레이로 우왕좌왕하는 틈을 타 3루까지 밟았다. SSG는 부랴부랴 투수를 베테랑 불펜 노경은으로 교체했지만 이번엔 김휘집 대신 선발 유격수로 투입된 신준우가 1사 3루에서 우전 적시타를 때려내 사실상의 쐐기점을 뽑았다.
SSG도 마지막까지 추격의 고삐를 놓지 않았다. 7회 초 2사 만루서 최정의 2타점 좌전 적시타로 3-6까지 따라붙었다. 다만 8회 초와 9회 초 두 차례의 2사 만루 기회를 살리지 못해 끝내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승자를 가른 김강민의 '더 홈런'
그렇게 다시 인천으로 돌아가 재개된 KS 5차전. SSG 구단의 가을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탄생했다. 불혹의 김강민이 KS 역대 최초의 대타 끝내기 홈런을 터트렸다.
경기 내내 앞선 팀은 키움이었다. 손가락 물집 상태가 호전된 에이스 안우진이 닷새 만에 다시 마운드에 올라 무시무시한 공을 던졌다. 최고 시속 157㎞ 강속구로 정면승부를 하면서 6이닝 동안 2피안타 6탈삼진 무실점으로 SSG 타선을 틀어막았다. 안우진을 상대한 SSG 타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안우진은 1차전에 이어 다시 펼쳐진 SSG 에이스 김광현(5이닝 3실점)과 선발 리턴매치에서도 확실하게 판정승했다.
키움 타자들도 김광현을 잘 공략했다. SSG의 수비 실책이 나오는 행운까지 겹치면서 1회 초 2점, 2회 초 1점을 착실하게 뽑아 안우진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6회 초에도 1점을 보탰다.
그러나 '홈런군단' SSG의 반격은 안우진이 마운드를 내려간 경기 후반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최정이 8회 말 1사 1루에서 키움 소방수 김재웅을 상대로 2점 홈런을 쳤다. 스코어는 2-4, 2점 차까지 좁혀졌다. SSG는 여세를 몰아 9회 말 볼넷과 안타로 무사 1·3루 기회를 만들었다. 바로 그때, 김강민이 대기 타석에 나타나 배트를 휘두르며 대타 출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김강민 홈런!" SSG 팬들은 'SK 왕조'의 주역 중 한 명인 김강민을 향해 야구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과 응원을 보냈다. 김강민은 이에 화답하듯 볼카운트 투스트라이크에서 최원태의 3구째 슬라이더가 한가운데로 높이 몰리자 놓치지 않고 가볍게 걷어올렸다.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할 수 있는, 큼직한 포물선이 인천 하늘에 새겨졌다. SSG의 5-4 역전승을 선언하는 끝내기 3점포.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가을의 드라마였다.
김광현은 용수철처럼 그라운드로 튀어나와 펄쩍펄쩍 뛰었다. 간판타자 추신수와 최정은 울먹이며 "정말 미쳤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감격했다. 한 SSG 팬은 소셜미디어에 "2050년 KS에서도 70세의 김강민이 끝내기 홈런을 치고 있을 것 같다"고 썼다. 경기 전 정용진 구단주에게 재계약을 약속 받은 김원형 감독은 물기 어린 눈으로 김강민을 힘껏 끌어안았다.
김강민은 이 홈런 한 방으로 KS MVP가 됐다. 스스로 "이번 시리즈에서 안타 3개(홈런 2개)를 친 게 전부라 MVP는 생각도 못했다"고 했지만, 5차전의 역전 끝내기 3점포가 올해 KS의 향방을 갈랐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SSG는 다음 날 6차전에서도 2-3으로 뒤진 6회 말 김성현의 역전 2타점 2루타로 승부를 뒤집었고, 1점 리드를 끝까지 잘 지켜 우승을 확정했다. 김광현은 2010년과 2018년에 이어 올해도 SSG의 마지막 투수로 마운드애 올라 KS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직접 잡았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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