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끝에 그 부처에 대한 형식적인 치하와 함께 우수한 인재를 받아들여 조직을 엘리트화 하라고 했다. 그 부처 공무원들의 질이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며칠 후 그 부처 간부가 내게 와서 대통령의 말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집행했으면 좋을까 물었다. 대통령이 순시한 자리에서 내가 쓴 내용들을 그대로 말했던 것 같다.
대통령의 말이 권력이라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일정만 소화해 내기도 대통령은 바빴다. 그렇더라도 순간순간 자기의 생각이 담긴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의 말을 쓰는 사람이 권력이 되기 때문이다. 최순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연설을 도와준 게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도와준 게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내용에 손을 댔다면 그는 권력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사건에서 나는 뇌물공여로 기소된 국정원장의 변호사였다. 나는 서면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질문했다. 박 전 대통령은 반듯한 글씨에 정답을 쓰는 학생처럼 대답 서면을 보냈다. 절제된 자신의 입장이 요약되어 있었다. 글씨와 행간에서 박 전 대통령의 색깔과 스타일을 엿보았다.
1980년대 작성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의 최후 진술 부분을 읽은 적이 있다. 세월이 흘러 이 땅에 민주주의가 이룩되면 자기가 쓴 최후진술은 역사의 기록이 될 것이라는 취지였다고 기억한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는 연설문을 직접 쓰고 또박또박 읽었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엔 연설 현장에서의 뒷얘기를 당시의 외교안보수석한테서 직접 들었다. 비서실에서 연설문을 써서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대통령이 그걸 보고 북한에 대한 부분을 고쳐서 내려 보냈다. 그걸 본 수석비서관은 앞이 캄캄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이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석비서관은 외교부 장관을 동원해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대통령은 즉각 허락했다. 유엔총회 연설장에서였다. 대통령이 그 부분을 읽기 직전에 이런 말을 했다.
“제 참모진의 의견에 따라 이 부분을 수정했지만 이 자리에서는 제 진정한 의사를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연설이란 현장에서 대중과의 공감이라고 하면서 언어도 서민 대중이 쓰는 용어를 썼다.
문재인 변호사가 대통령이 되기 전 나와 둘이서 김밥으로 점심을 나누면서 얘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다. 나는 대통령이 되면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으냐고 물었었다. 대통령 시절 그의 연설문에는 그가 추구한 세상이 문학적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말과 글은 어떨까. 얼마 전 여러 대통령을 보좌했던 분을 만났다. 지혜가 뛰어난 노인이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대통령이 말을 할 때는 항상 먼저 야당을 배려해야 해. 정치적 파트너로 존중하는 태도지. 그런데 외교장관 해임안이 상정됐을 때 대통령의 태도를 보면 급해. 건의안이 올라오더라도 해임하지 않겠다고 바로 말해 버린 거야. 대통령이 그러니까 민주당 의원들이 반발했지. 보통은 반란표가 조금은 나오기 마련인데 그게 나오지 않았어.”
이태원 참사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관계자들을 모아 놓고 한 회의에서 한 말이 공개됐다. 대통령은 위험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인파를 보면서도 주저한 경찰을 나무랬다. 권한이나 법을 따지기 이전에 재난에 처한 인간을 도와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대통령의 표정과 어조에서 불행에 공감하고 본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들여다보였다.
대통령의 말을 왜곡시키는 언론도 있고 혼자 말이 많다면서 시비를 걸고 말꼬리를 잡는 글들도 많다. 총리를 포함한 내각이 총사퇴를 하라는 반대 정치세력의 공격도 보인다. 대통령이 됐다고 갑자기 말이 바뀔 수는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밖에서는 에둘러 말했지만 회의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면서 직격탄을 퍼부었다. 대통령도 자기 색깔대로 자기 스타일대로 가야 하는 게 아닐까. 위선의 언어나 감추는 언어보다는 일상의 언어 그대로가 진정성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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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