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신회계제도 도입에 기대와 우려 교차…신종자본증권 발행 외엔 뚜렷한 대안 없다는 지적
지난 3분기 일부 생명보험사들의 RBC 비율이 하락했다. 9월 말 기준 NH농협생명의 RBC 비율은 6월 말(185%)보다 78%포인트(p) 하락한 107%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DGB생명의 RBC 비율은 165.8%에서 113.1%로 52.7%p 하락했다. 한화생명은 10.6%p 하락한 157%의 RBC 비율을 기록했다. RBC 비율은 부채 대비 자산 비율로, 재무건전성을 대표하는 지표다. 보험사는 RBC 비율을 100%로 유지해야 한다. 100% 아래로 내려가면 보험금을 일시에 지급할 수 없다는 뜻이다. 금융당국은 보험사에 RBC 비율을 150% 이상으로 유지할 것을 권고한다.
보험사들의 RBC 비율이 떨어진 것은 금리가 오르면서 채권값이 떨어진 영향이 크다. RBC 제도에서 자산은 시가, 부채는 원가로 평가된다. 부채는 그대로인데 시가로 평가되는 자산의 가치가 줄면 RBC 비율은 하락한다. 대표적으로 3분기 NH농협생명 매도가능채권손실액은 5조 5000억 원을 기록했다. 매도가능채권은 금리에 따라 시가가 변하는 채권이다.
보험업계가 믿는 구석은 있다. 내년부터 새롭게 도입되는 국제보험회계기준(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다. 이 제도는 보험 부채 가치를 기존 원가 기준에서 시가 기준으로 평가하는 게 골자다. 실제 IFRS17 도입에 대비해 보험사들은 후순위채와 신종자본증권 등 회계상 자본으로 인식되는 자본성증권을 발행하고, 부동산 가치가 하락하는 상황에서 사옥을 매각해 리스크를 줄이는 등 노력을 해왔다.
그 결과 올해 6월 말 기준 국내 15개 생명보험사의 보험금 지급능력을 나타내는 LAT(책임준비금적정성평가) 잉여액 규모는 132조 원으로 자기자본 대비 39%가량 높다. 나이스자산운용은 “LAT 잉여액이 IFRS17 제도에서 전액 보험사의 순자산으로 가산되면 모든 보험사에서 자기자본 규모는 크게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생명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IFRS17 대비를 몇 년 동안 해왔기 때문에 준비는 돼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자본 확충 압박은 이어질 것이란 의견도 적잖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보다 내년에 영업 환경이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재무건전성 확보와 지급여력 유지를 위해서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생명보험사들의 경우 채권평가 손실보다 시가평가에 따른 비용 문제가 더 커 보이기 때문에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자본 확충을 위한 뚜렷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흥국생명이 5억 달러(약 7000억 원)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에 대해 조기상환(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행사한다고 결정을 번복했으나, 신뢰가 깨져 시장이 회복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릴 것이란 시각이 적잖다(관련기사 금간 신뢰 배후에 당국이? 흥국·DB생명 ‘조기상환권 미행사’ 후폭풍). 안 그래도 채권시장은 ‘레고랜드 사태’와 금리 급등으로 얼어붙은 상황이다. 앞서 10월 한화생명은 7억 5000만 달러(약 1조 600억 원) 규모 신종자본증권 발행 계획을 취소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 11월~내년 사이 생명보험사 중 한화생명, 신한라이프생명, 동양생명, 미래에셋생명, DB생명, KDB생명, DGB생명, 푸본현대생명 등이 보유한 신종자본증권 혹은 후순위사채의 콜옵션 행사시점이 예정돼 있다. 시장에서는 흥국생명 사태로 보험사들이 콜옵션 미행사를 결정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채권 발행이 어려우면 상장된 보험사들은 유상증자에 나서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유상증자는 기업이 기존 주주나 새로운 주주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신주를 발행하는 것이다. 채권과 달리 이자 부담이 없다는 장점도 있다. 다만 이마저도 쉽지는 않다. 대규모의 신주 발행은 주가 하락을 불러올 수 있어 기존 주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가뜩이나 최근 생명보험사 주가는 1년 전과 비교해 약세를 보이고 있다. 동양생명은 지난해 11월 24일 주가가 7490원을 기록했지만 올해 11월에는 5000원대에 머물고 있다. 한화생명 주가는 지난해 11월 3000원대 중반에서 현재 2000원대 초반으로 하락했으며, 같은 기간 미래에셋생명 주가는 4000원대에서 2000원대로 내려앉았다. 삼성생명은 지난해와 올해 11월 모두 6만 원대로 변동이 미미했다.
황세운 연구위원은 “자본 확충을 위한 마땅한 수단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신종자본증권을 계속해서 발행하는 것 외엔 대안이 별로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교수는 “대주주가 생명보험사에 증자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결국 시장에서는 대주주 스스로 생명보험사의 비즈니스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며 “지금까지는 보험사가 파산한 적이 없으니 다들 ‘잘 버티지 않겠나’라는 생각은 하지만, 이제는 자본력에서 뒤처지고 경쟁력이 없는 보험사는 시장에서 도태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단 생명보험업계는 ‘버티기’에 돌입한 모습이다. 최근엔 이율이 높은 저축성보험 판매를 통해 유동성 확보에 나서는 모습이다. 금융당국은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보험사의 유동성 평가 기준을 완화하기로 했다. 경영실태평가(RAAS)에서 유동성 지표 평가 등급을 한 단계씩 상향하는 것이다. 또 유동성 자산의 인정 범위 확대도 신속하게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는 유동성 비율을 규제할 때 만기 3개월 이하의 자산만 유동성 자산으로 인정했다. 이를 활성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만기 3개월 이상의 채권 등까지 유동성 자산에 포함하겠다는 것이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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