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일요신문 공모전 대상, 1년여 만에 카카오페이지 연재…“한탕주의 메시지 ‘오징어 게임’과 맥 같아”
1986년생인 곰돌맨의 삶은 그림 하나로 설명된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검도 만화 ‘열혈검객 무사시’를 읽으면서 만화가란 꿈을 처음 가졌다.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을 너무 좋아해서 친구들과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비디오를 다 빌려볼 정도로 만화에 푹 빠졌었다. 그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미대 입학 준비에 나섰다. 하지만 꿈과 녹록하지 않은 현실 사이에서 매 순간 고민했다. 결국 그는 디자인을 전공으로 2006년 대학교에 진학했다.
곰돌맨은 “만화가가 된다는 것은 막연한 꿈이었다. 밥벌이를 할 수 있을지가 가장 걱정됐다. 어려운 현실을 다 감수하면서까지 할 수 있을까를 계속 생각했다”며 “고민 끝에 만화가 대신 그림 관련 전공과 직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디자이너가 각광을 받던 시기여서 디자인학과로 진학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말 군대 제대 후 취업을 고민하면서 휴학을 했다. 만화가를 꿈꿨던 만큼 디자인뿐만 아니라 콘텐츠를 제작하는 쪽에도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디자인과 콘텐츠를 결합한 게임산업의 성장세가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직군끼리 소통하는 게임사 특징을 고려하면 디자인 직군으로서도 콘텐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숱한 시련과 고배를 마신 끝에 2014년 국내 대형 게임사에 일러스트레이터로 사회생활 첫발을 디뎠다.
곰돌맨은 “게임이 엔터테인먼트의 한 축을 담당할 산업이자, 재미와 성취를 추구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는 삼박자를 갖췄다고 생각했다”며 “당시 친구들한테 게임사 입사하겠다고 큰 소리를 쳤는데, 6개월 동안 입사하는 데 실패했다. 합격한 중소 게임사라도 갈까 고민했는데, 어머님께서 ‘하고 싶을 일이 있는데 왜 그렇게 성급하게 결정하려고 하냐고 만류하시면서 끝까지 도전하라’고 조언해주셨다. 그 덕분에 대형 게임사에 공채로 입사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게임사 생활은 기대했던 것만큼 자유롭지도,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그사이 웹툰 산업이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유명한 웹툰을 찾아 읽으면서 빠져 들어갔고, 가슴 한편에 묻어둔 만화가의 꿈을 다시 끄집어내는 데 이르렀다. 입사 3~4년 차부터는 퇴근 이후에 웹툰 작가 준비를 병행했고, 2019년 게임사에서 퇴사하고 본격적으로 웹툰 시장에 뛰어들었다.
곰돌맨은 “대형 게임사는 직군 간 경계가 명확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영역이 무제한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웹툰 시장이 커지면서 일반인도 도전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며 “신나는 기분에 당장 일을 그만둔다는 기분으로 하면 이것도 저것도 안 될 거 같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나눠서 준비하고 공부했다. 특히 웹툰 작가들이 사용하는 ‘클립스튜디오’ 툴로 그림을 그리는 데 적응하도록 노력했다. 게임사는 포토샵 툴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퇴사 이후 아는 웹툰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그림작가로 1년 6개월가량 일했다. 당장의 생활비뿐만 아니라, 웹툰 작가로서 경험을 쌓으며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다. 2020년 스튜디오에서 나온 후 본인이 직접 스토리, 연출, 작화를 모두 맡은 작품을 준비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미래은행’이다.
‘미래은행’은 2021년 제11회 일요신문 만화공모전 ‘도전! 웹툰왕’에서 대상을 거머쥐었다. 같은 해 12월에는 서울미디어코믹스와 작품 계약을 맺었다. 이후 서울미디어코믹스 전문 편집인력의 작품 매니지먼트를 거쳐 올해 10월 24일부터 카카오페이지에 공식 연재하게 됐다. 11월 10일 일요신문 대회의실에서 곰돌맨을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카카오페이지에 이어 일요신문 지면에도 연재될 예정이다. 소감을 듣고 싶다.
“첫 작품으로 공모전에서 입상한 데 이어 곧바로 데뷔했다. 사실 아직도 실감 나지 않는다. 굉장히 기쁘고 뿌듯한 감정을 느끼는 동시에, 긴 여정을 떠나기 위한 첫 발걸음을 디뎠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당시 네이버, 카카오 웹툰에서도 작업 제안을 해왔지만 그러던 찰나에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모두 거절했다. 더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다. 저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해주신 일요신문에 감사하다. 기대감에 배신하지 않고자 일상생활 없이 일만 하고 있다. 힘들지만, 너무 재밌다. 즐겁게 일하고 있다.”
―함께 공모전에서 수상한 박민경 작가는 보이지 않는다.
“스토리 보조작가로서만 도움을 주고 있다. 다른 활동을 준비하느라 동시에 ‘미래은행’을 병행하기 어려워서 참여하지 않게 됐다.”
―주변 반응은 어떤가.
“주변에서는 다들 자신의 일인 듯 기뻐했다. 특히 가족들이 신났었다. 다만 가까운 사람한테만 알렸다. 시작이 좋을 뿐이지 끝은 모른다. 힘들어서 중간에 도망가는 웹툰 작가도 많다. 그림작가를 완전히 교체하거나, 끝이 흐지부지돼서 회사에서 그만두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다. 운이 좋아서 시작이 좋지만, 창대한 끝마저 예고한 것은 아니다. 주변에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무거운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낀다.”
―대상 상금 3000만 원은 어디에 썼나.
“공모전에 제출했던 것보다는 더 나은 작품을 보여드려야 된다고 생각했다. 카카오페이지는 공식 오픈 전에 20화를 선 작업해야 했다. 20화를 그리는 데 최소 반년이 걸린다. 그 기간 동안 작품을 준비하는 데 상금을 다 투입했다.”
―‘미래은행’ 탄생 배경이 궁금하다.
“누구나 어마어마한 돈을 가지는 날을 꿈꾼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 어마어마한 돈을 갖게 되는 대신, 그에 따른 끔찍한 대가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 이야기다. 그런 삶이 결과적으로 행복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서 이야기를 더욱 구체화하면서 ‘미래은행’이 탄생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재미를 좇는 삶과 현실적인 경제적 문제가 일체화되기 어려웠다. 꿈과 현실 간극 사이에서 한탕주의, 불로소득을 상상한다. 주변 사람들도 다 비슷했다. ‘미래은행’을 기획할 때 비트코인으로 벼락부자가 탄생할 때였다.”
―작품 초기지만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과 비슷한 것 같다.
“지나친 경쟁과 물질만능주의에 지쳐버린 소시민들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 지친 마음에 꿈꾸는 한탕주의가 때로는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는 매우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도 담으려고 했다. 그렇다 보니 ‘오징어 게임’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메시지와 그 맥은 같이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닉네임 ‘곰돌맨’은 무슨 의미인가.
“단군신화에서 곰이 쑥과 마늘만 먹고 인내하고 기다려 결국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웹툰 작가는 재미있는 만화를 보여주기 위해, 항상 최선의 노력을 해야만 한다. 가끔 너무 힘들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드는 나태한 생각에 경고를 주기 위해 닉네임을 ‘곰돌맨’이라고 지었다. ‘곰이 사람이 된다’는 뜻을 표현한 것인데, 경쾌하고 즐겁게 들릴 수 있도록 ‘곰돌맨’이라고 짓게 됐다.”
―스토리가 공모전 제출 때와 비교하면 조금 바뀌었다.
“서울미디어코믹스의 작품 매니지먼트를 거치면서 수정하게 됐다. 고칠 때마다 다시 하라고 할까 봐 고통스러웠지만, 보완할 부분을 논리적이고 적절하게 피드백을 해주신 덕분에 지금의 ‘미래은행’이 탄생할 수 있었다. 지금도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있다.”
―존경하는 웹툰 작가는 누군가.
“네이버 웹툰 ‘싸움독학’의 박태준, 김정현 작가를 뽑고 싶다. 박 작가는 다작을 연재하는 걸로 유명하다. 그렇게 많이 벌었음에도, 여전히 궁극의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서 하루도 쉬지 않고 만화에 에너지를 쏟고 있다. 10년이 지나도 그 모습이 더 나아가면 나아갔지 떨어지지 않는 모습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김 작가는 그림체를 떠나서 매주 보여주는 수준급의 퀄리티와 양을 보면 현존하는 그림작가 중에선 최상위라고 생각한다. 타이틀 뒤에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모습이 있을 것이다. 그 자세에 존경심을 표한다.”
―앞으로 어떤 웹툰 작가가 되고 싶은가.
“만화를 통해 항상 재미와 즐거움을 주고 싶다. 이는 만화 자체에 집중하고, 어떻게 하면 독자에게 재미를 보여줄 수 있을까 매시간 매분 고민하고 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웹툰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있나.
“웹툰작가가 된다는 자체도 중요하지만, 어떤 이야기를 독자에게 보여주고 재미를 줄 수 있는지에 집중하고 준비한다면 결과는 저절로 따라올 거다. 항상 즐거운 상상을 하고, 그것을 잘 보여주기 위한 노력에만 집중하길 바란다. 분명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