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5일 새벽 6시경 SPC계열사에 빵을 공급하는 SPL평택공장에서 청년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희생자는 23살 청년 여성. 자신의 빵집을 차리겠다는 꿈을 안고 입사해 3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고인의 수첩과 휴대폰 영상 속엔성실하게 일해왔던 고인의 흔적이 군데군데 담겨있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빵공장으로 무려 7년간 '안전사업장' 인증을 받았다는 이 공장에서 이 청년은 왜 참혹한 사고를 당해야 했을까.
피해자는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소스를 배합하는 교반기에 팔이 끼면서 몸이 빨려 들어갔고 빠져나오지 못해 끝내 사망했다. 교반기는 끼임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장치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기계를 덮는 덮개와 덮개를 열었을 시 작동을 멈추도록 하는 인터록이 설치돼있어야 한다.
그러나 피해자가 사용한 기계에는 인터록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으며 동료직원은 정해진 시간까지 정해진 분량을 마치기 위해 바퀴날이 돌아가는 와중에도 덮개를 열고서 배합 작업을 해야했다고 한다. 안전장치가 제대로 설치되어있었다면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사고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사고 현장 출동 소방관은 "환자는 이제 상반신이 롤러 배합기, 롤러에 끼어있는 상태고 (공장) 관계자 분이 이제 소스 반죽이 바닥에 있었기 때문에 쓰레받기로 반죽을 치우고 있는 상태였고요"라고 말했다.
참혹한 사고에 국민들은 분개했다. 그러나 더욱 공분을 산 것은 사고 이후 회사가 취한 비인도적인 대응방식이었다. 고인의 빈소에 조문답례품으로 빵이 가득 담긴 상자를 보내거나 사고 발생 다음날 현장을 목격한 직원들을 출근시켜 일하게 하는 등의 행태를 보인 것이다.
이는 SPC 식품에 대한 불매 운동으로 이어졌다. 회사를 향한 경고이자 모범적인 기업으로 변하길 바라는 시민들의 메세지였다. 그러나 불매운동의 여파는 고스란히 자영업자인 가맹점주들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해 월세도 못 낼 처지에 있는 한 가맹점주는 이 현상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 공포스럽다고 말한다.
SPC그룹은 작은 빵집에서 시작해 현재 업계 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제빵기사들의 가혹한 노동 환경과 공장위생상태에 대한 내부 직원의 폭로로 여러차례 국민들의 외면을 받았다. 또한 특정 계열사를 향한 부당지원으로 공정위로부터 역대 최대 과징금을 맞는 등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현재도 끝나지 않은 이 논란들에 대해 SPC측에 입장을 물었다.
사고가 있은 지 엿새 뒤 SPC그룹 허영인 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또한 재발방지를 위해 안전관리에 1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지켜질 수 있을까.
지난 5월 '시사직격'은 제빵기사들의 가혹한 노동환경과 노조탄압행위 등을 고발했다. 제작진은 기사들을 다시 찾아가 방송 이후 노동환경이 개선되었는지 물었다.
SPC계열회사 내부제보자는 "회장이 (매장에) 방문을 했어요. 그런데 직원이 회장을 못 알아봐서 응대를 제대로 못 한거죠. 그거에 대한 결과로 어떻게 진행이 되었느냐. 바로 쫓겨났습니다"라고 말했다.
김남근 변호사은 "SPC그룹 내에서만 원재료들을 조달하는 폐쇄적인 구조로 바뀌다 보니까 납품하던 중소기업들은 결국 일감을 잃게 되고 결국은 소비자와 가맹점주들, 중소기업들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한 것이고"라고 설명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 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를 낸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하는 법이다. 산업현장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사고를 막고자 올해 1월부터 시행되었고 제정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산업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정부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매년 SPC 계열사에서는 100건이 넘는 산재 사고가 발생한다. 고인의 사망 사고 8일 전과 8일 후에도 손가락 절단, 찢어짐의 사고가 계속 됐다. 사고의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할까.
당연하게 지켜져야할 것들이 지켜지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을 겪어야할까.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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