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은 올해 3분기 매출 5조 6829억 원, 영업손실 3626억 원을 기록했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1분기 826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2분기에는 214억 원의 영업손실을 거두며 적자전환했고, 3분기에는 적자폭이 대폭 커졌다.
롯데케미칼의 실적 부진 원인으로는 수요 위축으로 인한 제품 가격 하락과 나프타 가격 하락에 따른 부정적 래깅 효과가 꼽힌다. 래깅 효과란 원자재 가격이 변동하면서 제품 가격에 변화가 발생하고, 이에 따라 제품을 판매했을 때 거둬들이는 마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증권가에서는 롯데케미칼이 올해 4분기에도 적자를 거둘 것으로 보고 있다.
비단 롯데케미칼뿐 아니라 세계적 불경기로 인해 석유화학업계가 전반적으로 침체에 놓여 있다. 일례로 금호석유화학의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2305억 원으로 지난해 3분기 6253억 원에 비해 63.1% 줄었다.
하지만 LG화학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3분기 7272억 원에서 올해 3분기 9012억 원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한화솔루션의 영업이익도 1783억 원에서 3484억 원으로 상승했다. LG화학과 한화솔루션 역시 석유화학 제품 관련 실적은 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이들은 2차전지와 신재생에너지라는 신사업에서 호실적을 거둬 석유화학의 부진한 실적을 상쇄할 수 있었다. 실제 한화솔루션의 기초소재와 가공소재 관련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줄었지만 신재생에너지 부문은 지난해 3분기 2335억 원의 영업손실에서 올해 3분기 2798억 원의 영업이익으로 흑자전환했다.
석유화학업계에서는 롯데케미칼도 실적을 위해 신사업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실 롯데케미칼이 신사업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롯데케미칼은 그간 플라스틱 재활용 관련 신사업에 집중해 왔다. 롯데케미칼은 2024년까지 울산2공장에 폐페트(PET)를 처리할 수 있는 공장을 신설하고, 여기서 생산된 단량체(BHET)를 다시 PET로 만드는 생산 설비를 구축할 예정이다. 롯데케미칼은 또 2030년까지 재활용 플라스틱을 100만 톤(t) 이상 판매하겠다는 계획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이 당장 실적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세계적으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플라스틱 제품 생산량이 줄어드는 등 전망이 좋지만은 않다. 박한샘 SK증권 연구원은 “중국 국가통계국(NBS) 자료에 따르면 플라스틱 제품의 생산은 지난 9월 기준 692만t을 기록했다”며 “연간 누적기준으로 전년 대비 4.2% 빠진 것”이라고 전했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3월 수소에너지사업단과 전지소재사업단을 신설하는 등 전지사업에도 관심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10월 일진머티리얼즈를 2조 7000억 원에 인수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일진머티리얼즈는 2차전지용 동박을 생산하고 있어 인수가 완료되면 롯데케미칼의 전지사업도 확대될 전망이다. 롯데케미칼은 2023년 2월까지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김교현 롯데케미칼 부회장은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계약 당시 “일진머티리얼즈는 세계 최초로 초고강도 동박 개발에 성공할 만큼 우수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며 “롯데그룹 화학군은 적기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전지소재사업의 사업 역량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인수자금 마련이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11월 8일 컨퍼런스콜에서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대금 조달은 내부자금 사용 및 외부자금 조달을 고려하고 있다”며 “내부자금은 약 1조 원 규모로 생각 중이고, 외부 자금조달은 금융권을 대상으로 현재 모집활동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롯데케미칼이 최근과 같은 고금리 추세 속 2조 원에 가까운 차입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롯데케미칼이 최근 흑자를 거두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때문에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11월 10일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을 ‘AA+/안정적’에서 ‘AA+/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오윤재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높은 원가부담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영업실적이 저하되고 있으며 신사업 인수 및 설비 투자 등에 따른 자금 소요로 차입 부담도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영향을 상쇄할 수 있는 수준의 자본확충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재무안정성이 저하되고, 단기간 내 2021년 말 이전 수준을 회복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다.
롯데케미칼은 롯데그룹의 핵심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역할을 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의 재무가 불안해지면 이는 곧 롯데그룹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이 하락했다는 이유로 롯데지주의 신용등급을 ‘AA+/안정적’에서 ‘AA+/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할 정도다.
민유성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단기적으로 롯데케미칼 신용도 변화 여부가 롯데지주의 신용도를 좌우할 전망”이라며 “(롯데케미칼의) 저조한 이익창출력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사업다각화 효과는 단기간 내에 나타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롯데그룹은 최근 롯데케미칼이 아닌 롯데건설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롯데건설은 지난 한 달 동안 차입과 유상증자 등을 통해 1조 원의 현금을 조달했다.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사태로 건설업계가 유동성 위기를 겪자 이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풀이된다. 롯데건설 지원에 가장 적극적인 계열사는 롯데케미칼이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10월 20일 롯데건설에 5000억 원을 대여해준 데 이어 롯데건설 유상증자에 참여해 876억 원을 투입키로 했다. 자본확충이 필요한 롯데케미칼이 확충은커녕 오히려 롯데건설 자금 지원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무리한 인수합병(M&A)이 롯데그룹 재무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분석도 나온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대금 조달 및 재무 불안 가능성과 관련해 “금융기관과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내부적으로도 검토를 계속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롯데케미칼 '배당성향 30%' 약속 지킬 수 있을까
롯데케미칼은 지난 3월 국내 주요 투자 기관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2 CEO IR Day’에서 중간배당을 실시하고, 배당성향을 별도 당기순이익 기준 30%로 맞추겠다고 약속했다. 배당성향이란 당기순이익 중 배당금의 비율을 뜻한다.
하지만 롯데케미칼의 실적 부진이 이어지면서 중간배당 약속은 이뤄지지 못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7월 공시를 통해 “상반기 시황 악화 및 대외 경제 불확실성 증가 등 회사 내부 경영상의 판단에 따라 기말배당으로 전환해 (배당을) 실시할 예정”이라며 “기존 배당정책인 연간 배당성향 30%는 그대로 지향하며 올해 총 배당 지급액은 정책에 따라 지급 예정”이라고 밝혔다.
롯데케미칼의 배당성향 30% 약속도 장담할 수는 없다. 롯데케미칼이 올해 최종적으로 적자를 거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 배당 자체가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롯데케미칼이 4분기 실적 반등에 성공할 가능성도 있고, 적자 기업이 배당을 진행하는 사례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자본확충이 시급한 롯데케미칼로서는 배당액 지출이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배당액으로 총 2845억 원을 지출했다.
현 분위기에서는 롯데케미칼이 배당을 진행하더라도 실적이 악화된 만큼 배당액도 전년 대비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간배당도 취소된 마당에 배당액마저 줄어들면 주주들의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배당성향 30%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최종적으로 적자가 발생할 경우) 경영 상황을 보고 판단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