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비 부부들이 예단비를 정하느라 골머리를 썩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
예단이란 원래 신부가 시댁에 보내는 비단을 뜻한다. 옛날에는 비단이 귀했기 때문에 신랑 측 집안에 비단을 보내는 것은 최대한의 예를 갖추는 것이라 생각했고 이것이 자연스레 풍습이 되었다.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비단보다는 다른 현물로 대체되기 시작했고 이제는 대부분 그에 상응하는 현금으로 대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신랑 집안에서는 받은 예단비의 절반가량을 다시 신부 집안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이미 널리 알려진 관습이다.
그런데 이 예단비가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양가 집안 모두에게 가장 애매하고 난감한 부분이라는 것이 결혼식을 치러 본 이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고려해야 할 부분도 많기 때문이다. 한 상류층 전문 결혼정보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사’자 전문직들의 경우 보통 1억 원부터 예단비가 시작된다고 한다. 이처럼 집안 환경이나 나이, 재혼 여부, 사회적 지위 등에 따라 기준이 천차만별이다. 한데 최근 일각에서는 신부가 신랑 측에서 해오는 집값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보내는 것이 예단비의 한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른바 ‘집값의 10% 공식’이다.
결혼을 준비 중인 20대 후반의 안 아무개 씨(여)는 “신랑 측에서 3억 원의 전세 아파트를 준비해오기로 해 우리는 3000만 원 정도로 예단비를 정했다”며 “혼수도 해야 하고 아파트 인테리어도 우리 쪽에서 해야 된다는데 당장 현금 3000만 원은 부담이 돼 나중에 돌려받을 돈을 미리 공제해서 2000만 원만 드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예단의 절반을 다시 돌려주는 관행이 있기에 가능한 셈법이다.
그러나 이 관행이 상황을 더 애매하게 만들기도 한다. 30대 초반의 한 아무개 씨(여)가 그런 경우다. 그녀는 “신랑 집안이 좀 괜찮아서 내심 기분이 좋았다. 강남에 있는 아파트를 사서 들어갈 정도였는데 당시 아파트 값이 13억 원 정도 한 걸로 기억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지는 그녀의 이야기.
“우리 측에서 가진 돈을 다 털어 6500만 원의 예단을 준비했다. 그러나 신랑 측 부모님들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다. 우리 부모님도 감정이 꽤 상하셨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는데 나중에 신랑 측 부모님이 한푼도 돌려주지 않더라. 우리 부모님은 크게 화가 나셨고 결국은 신랑과 나 또한 이 결혼은 아니라는데 동의, 파혼했다.”
한 씨의 경우 집값의 10%는 1억 3000만 원. 한 씨 신랑 측은 절반만 받았기에 돌려줄 이유가 없다고 본 반면 한 씨 측은 그렇지 않았던 셈이다. 이는 액수가 많고 적음을 떠나서 예단비의 애매한 관행 탓에 서로의 감정을 건드려 버린 대표적인 사례였다. 무료결혼식추진운동본부 이탁인 본부장은 “이러한 이상한 관행의 모든 문제는 기성세대들의 비교 문화와 체면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라며 “전통이 변질되어 허례허식에 빠진 예단비 문화가 근절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례허식을 피해 실용적으로 결혼하기로 양가가 모두 합의했다는 30대 초반의 예비신랑 김 아무개 씨는 “예단비를 아예 생략하고 그 돈을 모두 집값에 보태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결론을 내렸다”면서 “부모님들을 설득하는 게 가장 힘들었지만 예단비를 생략할 경우 전세집이 내 집으로 바뀔 수 있음을 어필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씨의 어머니는 못내 서운한 눈치다. 그녀는 “자기들이 좋을 대로 해야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예단비가 가진 이상한(?) 관행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크지만 당사자들끼리 합의한다고 해서 쉽게 바꾸긴 어렵다. 평생 한 번뿐이라는 이유에서부터 집안 어른들의 체면까지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가 바로 결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행을 개선하는 방법에 대해 이탁인 본부장은 “결혼식 전에 신랑·신부 교육은 있지만 부모님들은 따로 교육하는 과정이 없다”며 “부모들 즉 기성세대에 대한 결혼 교육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박상률 인턴기자
‘쩐’ 없이 ‘억’ 소리
손 씨는 “신랑 측보다 우리 쪽 손님이 2배 이상 많았다. 프리미엄 웨딩홀 한 층 전체를 빌릴 수밖에 없었는데 이 모든 것을 신랑 측에서 부담하긴 형평성에 맞지 않아 우리가 냈는데 순수한 결혼식 비용만 2억 원가량 들었다”며 “나머지 신혼집에 들어간 비용까지 하면 7억 원은 족히 쓴 셈이다. 아버지가 공무원이라 현금이 오가는 것을 달가워하지도 않았고 비슷한 수준의 지인들 결혼식도 큰돈이 들어가는 부분을 나눠서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김 아무개 씨(여·29)의 경우 집값은 비슷하지만 손 씨에 비해 상대적으로 예단비가 적게 든 편이다. 김 씨는 “신랑이 20억 원이 조금 넘는 아파트를 준비했지만 우리 집에서는 신혼집 인테리어 비용과 혼수에 신경을 써서 3억 원에 조금 못 미치게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혼수를 빼고 나면 ‘집값의 10% 공식’이 어느 정도 지켜진 셈이다.
신랑신부가 모두 전문직인 정 아무개 씨(30)는 앞의 사례와 조금 다르다. 정 씨는 “신혼집이 17억 원 정도였는데 결과적으로 따지면 신부 측에서 예단 명목으로 6억 원가량 준비한 셈이지만 현금은 1억 원만 받았다. 양가 부모님이 만나 우리 쪽에서 친인척 명단과 필요한 물품 목록을 전달했고 신부 측에서 알아서 준비했다. 브랜드며 가격은 신부에게 전적으로 맡겼는데 기대 이상으로 준비해와 조금 놀라긴 했다”면서 “주변에 결혼하는 친구들을 봐도 예단비 전부를 현금으로 받는 경우는 드물고 거의 대부분은 직접 물품(예단)으로 받는다”고 전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