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고령자 재산, 자녀라도 예적금 인출·부동산 매각 못해…성년후견제도·가족신탁 등 제도 보완 지적
#가족도 자산처분 불가능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이 추계 자료를 공표했다. 자료에 의하면, 2020년 시점에서 일본 내 치매 환자가 보유한 금융자산은 약 175조 엔, 부동산이 약 80조 엔으로 자산총액은 255조 엔에 달한다. 이는 전체 가계금융자산의 8%에 해당하는 규모다. 더욱이 “2030년도에는 치매 환자의 금융자산이 231조 엔에 이르고, 치매 환자가 소유한 주택 수도 급팽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 민법에는 “의사능력이 없는 자의 법률행위는 무효가 된다”는 규정이 있다. 즉 치매가 진행돼 판단능력을 상실하면 예·적금 인출, 부동산 매각 같은 법률행위를 할 수 없게 된다. 아울러 간병이 목적이라도 부모를 대신해 자녀가 재산을 처분하기가 어려워진다. 재산분할에 얽힌 악용을 피하기 위해서다. 사실상 자산이 동결되는 셈이다.
하지만 간병 비용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가족도 있어 치매 환자의 자산 활용이 일본에서는 큰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이런 경우 ‘성년후견제도’가 선택사항이 된다. 가족들이 가정법원에 신청해 선임된 후견인이 치매 등으로 판단능력을 상실한 피후견인의 재산을 지켜주면서 필요한 곳에 재산을 사용하는 제도다. 다만 치매 환자 수의 증가와 달리, 제도 이용률은 저조하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이용자 수는 24만 명에 머물렀다. 전체 치매 고령자의 5%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치매에 대응한 신탁상품 등장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본 전국은행협회는 “계약자 본인의 의료비로 쓸 경우에 한해 가족들의 예금 인출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신탁은행들은 치매 대책에 특화된 패키지형 상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가령 계약 시 입출금을 담당할 대리인을 정하는 것이다. 만약 계약자 본인이 치매로 진단받으면 지정된 대리인이 의료나 간병 등에 필요한 비용을 인출할 수 있다.
금융기관에 따라서는 치매가 발병한 후 생활비 등을 계좌로 이체해주는 정액 이체 서비스라든지, 스마트폰 앱에서 청구 절차를 거치면 지정된 대리인의 지정 계좌로 이체해주는 서비스도 운영 중이다.
테크놀러지를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다. 치매에 걸리면 판단능력을 잃어 보이스피싱 등 금융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인공지능(AI) 개발 스타트업 ‘엑사위저즈(ExaWizards)’는 고객의 입출금 정보를 분석해 ‘이상 거래’를 감지하는 시스템을 후쿠오카 은행과 공동 개발했다. 예를 들어 고액의 인출이 있거나 같은 상품을 계좌이체로 여러 번 구입할 경우 가족에게 통지한다. 실제로 고액의 해외송금을 고령자의 가족에게 연락해 막은 사례가 있다.
엑사위저즈는 AI를 활용해 고령화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스타트업이다. 자산 관리와 생활을 폭넓게 지원하는 서비스를 검토하던 중 애초 고령자의 대부분이 ‘성년후견인’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실태를 알게 됐다. 여기서 ‘이상 거래 감지 시스템’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기술적으로 시스템은 확립됐지만, 아직 과제가 남아 있다. 다름 아니라, 고령자 본인의 동의다. 회사 측에 따르면 “아무리 자식이라도 금융거래를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고령자가 의외로 많다”고 한다. 회사 관계자는 “그러한 소비자의 심리를 염두에 둔 서비스 설계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불어나는 ‘동결자산’ 제도보완 시급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는 “2030년도에 치매 환자의 금융자산이 231조 엔에 이르고, 2040년에는 환자가 소유한 주택도 280만 채가 될 것”으로 추산한다. 그만큼 치매 인구 증가추세가 가파르다. 연구소의 호시노 다쿠야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치매 환자들의 금융자산이 묻히고 돈이 순환되지 않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며 “정부가 성년후견제도의 유연성을 높이는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올해 3월, 일본 정부는 ‘성년후견제도 이용을 촉진하는 5년 기본계획안’을 국무회의에서 결정했다. 요컨대 “후견인의 교체를 유연하게 인정하는 동시에 필요한 기간만 이용할 수 있도록 재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사회보험노무사 모치즈키 아쓰코 씨는 “일시적 이용이 허용되면 자택 매각 등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치매를 둘러싼 상황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사연을 소개했다. “아버지의 뜻이었는데 집을 팔 수 없다니…, 이대로라면 계속 묶이고 만다.” 미국에 사는 50대 남성은 뜻밖의 사태에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코로나로 2년 넘게 귀국하지 못한 사이 요양원에 있던 70대 아버지에게 치매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간병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본가 매각을 진행 중이었는데, 치매 판정을 받아 중단되고 말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처럼 대면 기회가 적어지다 보니, 떨어져 사는 부모님의 치매 증상을 뒤늦게 알게 돼 자택 매각 등이 막히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관련 제도의 근본 개혁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NHK는 자산동결을 막는 열쇠로 ‘IT를 활용한 금융혁신’을 꼽았다. 가령 치매 발병 전 금융자산과 부동산 관리를 가족에게 맡기는 ‘가족신탁’의 경우다. 날마다 변동하는 자산 상황을 시각화해 관리를 용이하게 하는 디지털툴에 대한 요구가 늘어날 것 같다.
치매에 대한 대비는 금융기관에 있어서 새로운 분야다. NHK는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면서 재산이 본인을 위해 확실히 쓰이게 하려면 어떤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실천할 때”라고 강조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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