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펜시아리조트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목적으로 건설된 스키 리조트로 2010년 개장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알펜시아리조트의 적자가 이어졌고, 결국 강원도는 지난해 KH강원개발에 알펜시아리조트와 인근 부지를 7100억 원에 매각했다. KH강원개발은 KH그룹 계열사로 KH필룩스가 지난 9월 말 기준 지분 81.82%를 갖고 있다.
그러나 알펜시아리조트 매각 과정에서 입찰 담합 혐의가 불거졌고,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경찰에 관련 수사를 의뢰했다. 강원지방경찰청은 지난 11월 7일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와 강원도청 소속 공무원 A 씨, KH그룹의 임원 B 씨 등을 입찰 방해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런 가운데 KH필룩스는 지난 4월 알펜시아리조트 인근 부지와 건물을 평창블루개발이라는 부동산 업체에 매각하겠다고 공시했다. 매각가는 1000억 원, 매각 예정일자는 지난 8월 31일이었다. KH필룩스는 지난 6월 매각 예정 부동산 중 일부를 매각 취소하고 매각가도 800억 원으로 조정했다. 이어 지난 8월에는 매각 예정일자를 올해 12월 30일로 변경했다.
KH필룩스는 지난 4월 쌍방울그룹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쌍용자동차 인수를 추진했다. 알펜시아 인근 부동산을 매각하는 이유도 쌍용차 인수를 위한 현금 마련 때문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KH필룩스는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한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실제 KH필룩스의 부채비율이 지난해 말 26.24%에서 올해 3월 135.70%로 늘어나는 등 재무 상황도 악화하고 있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KH그룹 계열사 KH전자가 알펜시아 에스테이트의 PM(자산관리)용역을 맡고 있다는 점이다. 알펜시아 에스테이트는 단독형 휴양콘도로 2019년 189세대의 분양을 완료했다. KH전자는 알펜시아 에스테이트를 통해 부동산 사업 강화를 꾀하고 있다. KH전자는 분기보고서에서 “부동산 시행 경험이 많은 인재를 통해 평창 알펜시아 에스테이트 개발 사업 시행 대행을 진행하고 있다”며 “시행 대행 경험을 바탕으로 부동산 시행대행사로서의 입지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KH전자는 지난 8월 평창블루개발과 ‘평창 알펜시아 에스테이트 A·B·C 블록 개발 사업’ 관련한 30억 원 규모의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일각에서는 KH그룹에게 관련 사업 일부를 맡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KH그룹은 선을 긋고 있다.
KH그룹 한 관계자는 "알펜시아 에스테이트 개발사업은 평창블루개발이 단독으로 시행, 향후 에스테이트 운영 관리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KH그룹에게 관련 사업 일부를 이관할 계획이 전혀 없다"면서 "단, 평창블루개발이 리조트 단지 내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므로 KH강원개발과의 조율 및 협의를 위해 KH전자가 PM용역사로 필요할 뿐"이라고 말했다.
KH전자는 지난해까지 음향기기 제조 사업과 모바일 게임 관련 사업만 영위했다. 그러다가 올해 들어 부동산 PM 사업과 용역 사업에 뛰어들었다. KH전자의 올해 1~3분기 부동산 PM 관련 매출은 6억 원, 용역 관련 매출은 1767만 원이다. KH전자의 올해 1~3분기 전체 매출이 106억 원임을 감안하면 부동산·용역 사업은 주요 사업도 아니고, 두드러진 경쟁력을 보여준 것도 아니다.
일각에서는 KH그룹이 현금 마련을 위해 평창블루개발에 부동산을 매각하지만 이 과정에서 개발 사업 참여를 약속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아 알펜시아 에스테이트 개발 사업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 부동산 매각 예정 일자가 연기된 것도 평창블루개발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KH필룩스도 “금융기관으로부터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조달이 지연될 경우 상호 협의해 잔금 일정 등을 조정할 수 있다”고 공시했다.
평창블루개발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법인등기부에 따르면 평창블루개발은 지난해 4월 설립된 부동산 분양 업체로 설립 당시 사명은 챔피언컴퍼니였다. 챔피언컴퍼니는 KH그룹과 부동산 매매 계약을 맺은 후 사명을 평창블루개발로 변경했고, 사업목적에 △종합관광 휴양지 개발 및 운영사업 △체육진흥사업 △음식·숙박업 등을 추가했다. 비슷한 시기 회사 본사를 서울시 구로구 한 공유오피스에서 서울시 강남구로 이전했다. 부동산 매매 계약을 맺기 전까지는 사무실도 제대로 없었던 셈이다. 또 임 아무개 평창블루개발 대표이사의 거주지는 서울시 구로구에 위치한 한 여관으로 기재돼 있다.
평창블루개발의 설립 당시 자본금은 액면가 기준 1000만 원에 불과했다. 이후 증자를 진행해 현재 자본금은 10억 5000만 원이다. 평창블루개발이 외부감사 대상이 아닌 것으로 보아 회사 규모도 크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규모가 크지 않은 평창블루개발이 알펜시아 부동산 인수 대금 800억 원을 어떻게 조달할 수 있을지도 관심이 집중된다. 특히나 최근 금리가 높아지면서 자금 조달도 예전에 비해 어려워진 상황이다. 자금을 조달하더라도 적지 않은 돈이 대출 이자로 빠져나가게 된다.
재계 관계자는 “높은 대출 금리로 인해 외부자금 조달이 어려운 상황이며 중소·중견기업은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아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기가 더욱 어렵다”며 “대출 금리는 기준 금리보다 가파르게 오르고 있어 고금리 리스크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사업 파트너인 KH그룹의 사업 능력에도 의문이 남는다. KH전자가 부동산·용역 사업과 관련해서는 신생 업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KH전자는 올해 초 최 아무개 씨를 부동산 PM 담당 이사로 선임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인력 보강도 없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KH전자의 직원 39명은 모두 음향사업부 소속이고, 부동산·용역 관련 부서 소속 직원은 없다. 그렇다고 부동산 관련 자회사를 두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와 관련, 평창블루개발 관계자는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내의 부지에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알펜시아리조트와의 협의사항들이 많고, 준공 이후에도 알펜시아리조트 시설을 이용할 수 밖에 없어 업무조율이 필요하다”면서 “KH그룹과의 업무조정이 원활한 KH전자에 PM용역을 맡기는 것이 효율적이라 판단했다. KH전자는 PM용역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전문법인을 협력업체로 선정해 놓았기에 업무능력을 믿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KH그룹의 혼란한 현 상황도 사업 진행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알펜시아리조트 입찰 방해 혐의를 받고 있는 배상윤 KH그룹은 현재 해외에 체류 중이다. 이에 경찰은 배 회장에 지명수배를 내린 상태다. 배 회장의 부재는 KH그룹의 의사 결정이나 사업 진행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KH건설 '국회의원 출신' 사외이사 이사회 참석률 논란
KH그룹은 2019년 2월 이엑스티를 인수해 사명을 KH건설로 변경했다. 한 달 후인 2019년 3월, KH건설은 이철 전 민주당 의원과 정호준 전 통합민주당 의원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이철 전 의원은 제12·13·14대 국회의원을 역임했고, 2005년 6월부터 2008년 1월까지 한국철도공사 사장으로 재직했다. 정호준 전 의원은 제19대 국회의원 출신으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 등으로도 활동했다. 두 사람은 올해 3월 연임에 성공했고, 이에 따라 사외이사 임기는 2025년 3월까지다.
하지만 이철·정호준 사외이사의 이사회 참석률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철 사외이사의 2019년 이사회 참석률은 14%에 불과했고, 2020년과 2021년에는 단 한 번의 이사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올해는 9%의 참석률을 보였다. 정호준 사외이사의 이사회 참석률은 △2019년 11% △2020년 6% △2021년 100% △2022년 1~9월 49%다. 2021년을 제외하면 매년 낮은 참석률을 기록한 것이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철·정호준 사외이사는 매년 KH건설로부터 1200만 원을 받는다.
사외이사의 낮은 이사회 참석률은 사회적으로도 논란이 되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 2월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에 ‘이사회 참석률이 직전 임기 동안 75% 미만이었던 자’의 이사 재선임을 반대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KH건설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이철·정호준 사외이사를 제어할 수는 없다.
한국개발연구원(KDI) 한 관계자는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안건에 대한 결정력이 사내이사에게 넘어간다는 측면에서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감독 역할을 충실히 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며 “사외이사의 이사회 참석률은 교체 가능성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않지만 이사회에서 반대표를 행사한 사외이사는 연임되지 않을 가능성이 확연히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