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에 신규로 주택을 취득한 사람이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높아지는 금리에서 이들이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아니, 버티지 못한다면 과연 국가 경제는 어떻게 되는 건가 하는 불안감이 온 국민을 떨게 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수출 부진은 어쩌면 이러다 외환위기 같은 큰 환란이 닥치는 것 아니냐는 위기의식을 가져다주고 있다.
이태원에서는 수많은 청춘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 슬픔은 유가족은 물론 전 국민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줄 만큼 충격적이다. 아직도 사람들은 그 충격과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루하루 우울하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살아남은 국민들은 그 참사가 몇몇의 잘못과 순간의 상황대처의 미비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대한민국의 시스템의 문제인지도 아직은 알 수 없기에 하루하루 더 불안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북한은 연일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다. 금방 끝날 것 같았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유럽으로 확산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자아내고 있다. 전쟁이 끝나야만 사회·경제가 안정될 거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은 점점 더 실현 가능한 예측인가 하는 걱정만 키우고 있다. 정말로 뭐 하나 희망적인 지표가 안 보이는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짙은 어둠으로 국민을 몰아넣고 있는 느낌이다.
국민을 안심시키고 통합시키고 미래의 비전 또한 제시해야 할 정치는 오히려 더 국민을 분열시키고 서로를 비난하고 ‘네편 내편’을 나누면서 서로에 대한 저주와 분노의 언어를 퍼붓고 있다.
하루하루 치솟는 금리와 불황에 시달리는 국민들에게 통합과 희망의 메시지를 제시해야 할 리더들은 자신들의 뜻과 배치되는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경청하고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서로를 그저 ‘타도 대상’ 혹은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사람들’이라고 규정지으면서 날마다 저주의 언어를 쏟아내고 있다.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는 도대체 누굴 믿고 살아가야 하나.
세계에서 10번째의 경제대국을 이끌었고 인류역사상 최단시간에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해낸 나의 조국 대한민국은 해방 후 어쩌면 최대의 위기국면을 맞고 있다. 현재 우리는 과연 누굴 믿고 누굴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더 비관적이고 가슴 아픈 것은 사회 최후의 보루이자 국민의 마지막 희망인 종교계마저도 저주의 언어를 내뱉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보다도 훨씬 더 ‘네편 내편’을 나누어 나와 뜻을 같이하지 않는 사람은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무시무시한 언어와 생각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세상 밖으로 쏟아내고 있다.
종교를 믿든 안 믿든 모든 사람들은 마태복음 5장의 문구는 기억할 것이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2000년 전에 남겨진 말씀이다. 우주를 정복하고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는 인간들이 2000년 전의 교훈을 다시 되새겨야 한다는 것이 참 가슴 아프다. 2022년 대한민국 정말 어른이 필요하다. 저주의 언어, 분열과 선동, 비난이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말해줄 수 있는 진정한 어른이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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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