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기피 논란이 사실무근으로 확인된 2월 22일, 의혹을 제기한 강용석 의원이 의원직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어퍼컷을 날리려다가 KO펀치를 맞은 꼴 아닌가.”
이 정도는 점잖은 표현이다. 평소 강용석 전 의원을 지켜봐온 새누리당의 한 보좌관은 “올 것이 왔다. 그동안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강 전 의원을 봐왔는데 언젠가 이런 꼴을 당할 줄 알았다”는 쓴소리를 내놓았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좀 이상한 사람 같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강용석 전 의원은 주목받기 좋아하는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유독 ‘튀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강용석 전 의원의 인지도를 급상승시킨 사건은 지난 2010년의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 파문이었다. 강 전 의원이 한 대학생 토론대회에 참석했던 대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아나운서가 꿈이라는 한 여대생에게 “아나운서가 되려면 뭐든지 다 줘야 한다”는 등의 성희롱 발언을 했다가 아나운서협회로부터 집단모욕죄 고소를 당한 것.
이 사건으로 아나운서들과의 싸움을 시작하게 된 강 전 의원은 ‘불난 데 기름을 붓는 듯’ 더 나아가 자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여자 아나운서 100명의 주소가 담긴 판결문을 인터넷에 유출해 논란을 부추겼다. 이 사건이 터지며 그가 2008년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섹시한 박근혜’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가 논란을 빚었던 일이 회자되기도 했다. 당시 그는 “나뿐 아니라 많은 유부남들이 박근혜의 물구나무 선 모습, 완벽한 아치 모양의 허리에 감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라고 썼다가 물의를 빚은 바 있다.
결국 아나운서 성희롱 사건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았음에도 이후 강 전 의원의 ‘대처’는 상식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지난해 11월 KBS <개그콘서트>에서 “집권여당 수뇌부와 친해져서 공천을 받아 여당 텃밭에 출마하면 된다. 선거 유세 때 평소 잘 안 가던 시장에서 할머니와 악수만 하면 된다. 약점을 개처럼 물고 늘어지면 된다”는 개그맨 최효종 씨의 발언에 대해 자신이 고소당한 명목과 똑같은 집단모욕죄로 고소하기에 이른 것.
당시 상황에 대해 강 전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민사소송으로 아나운서협회에서 내게 손해배상 12억 원을 청구한 판결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이미 형사사건 1, 2심이 집단모욕을 인정해 민사도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본적으로 여론을 바꾸지 않으면 꼼짝없이 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최효종을 고소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그는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아야 했다. 강 전 의원은 결국 고소를 취하했고 개그맨 최효종은 오히려 그 덕분에 확실히 ‘떠버렸다’.
하지만 정작 국회의원 ‘그들만의 리그’에서 강용석 전 의원은 보호받는 분위기였다. 강 전 의원이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음에도 새누리당은 한 달 넘게 의원총회 소집을 미루다가 출당 조치를 시켜 ‘제 식구 감싸기’라는 질타를 들었다. 하지만 2010년 9월 한나라당에서 제명되며 의원직 신분을 간신히 유지해온 무소속 강 전 의원은 조용히 지내지만은 않았다.
▲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그는 박원순 시장은 물론 안철수 원장과 이준석 새누리당 비대위원까지 물고 늘어졌다. 안철수 원장을 횡령ㆍ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데 이어 도피 우려가 있다며 안 원장을 출국금지 조치해야 한다고 촉구하는가 하면, 이준석 비대위원에 대해서도 학력과 병역 의혹을 제기해 이 비대위원과 트위터를 통해 서로 공방전을 벌인 것. 강용석 전 의원에 대해 극우성향의 보수인사인 ‘조갑제닷컴’의 조갑제 대표는 “한나라당에 의하여 제명당하였지만 강용석 전 의원은 이 당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지난 석 달간 강 전 의원이 한 일은 새누리당 전체가 한 일보다 더 애국세력에 도움이 되었다”라고 말하는 등 적극 두둔하기도 했다.
그런데 ‘저격수’를 자처한 강 전 의원의 의혹 제기는 해당 인사들의 ‘검증’ 그 자체에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자신의 ‘부상’에 더 큰 목적이 있었다는 평가다. 스스로 “어쩔 수 없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정치적 생명을 눈앞에 두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고 밝힐 만큼 강 전 의원은 위기에 몰려 있었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당으로부터 제명당하고 이미지까지 추락한 상태에서 강용석 전 의원이 회생할 길은 사실상 많지 않았다. 야권의 주요 인사들을 공격하는 데 앞장서서 스스로의 주가를 높이는 길 외엔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위험부담이 컸지만 잃을 것이 별로 없는 강 전 의원의 입장에선 가장 효과적일 수도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 세브란스병원에서 박주신 씨의 MRI 재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 한석주 교수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박원순 시장과 가족에 사과하고 있다. |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다소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는 강 전 의원의 성향을 그가 걸어온 삶과 결부시켜 분석하는 이들도 있다. 강 전 의원은 어린 시절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는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살 정도로 어려운 삶을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스물아홉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13~14년간을 교도소에 있었다. 생계형 횡령 사기 경제범죄 등으로 들락날락했다”고 밝힌 바 있다.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고3 때 장학퀴즈 프로그램에 나가 월 장원을 했고 그 장학금으로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 이력도 갖고 있다. 어려운 집안 형편과 전과가 20범 가까운 것으로 전해진 아버지는 그에게 큰 부담이 되었을 터.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는 무서운 집념으로 서울대 법대와 하버드 법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당시 목포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아버지 때문에 원하던 판사 임용이 좌절되었다고 한다.
그는 약자들을 위한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1998년부터 5년간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집행위원을 맡으며 재벌개혁과 소액주주운동을 펼쳤고, 2001년에는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 씨가 삼성전자 상무보로 임명한 것을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2000년에는 다른 변호사들과 함께 ‘소액주주 소송 전문로펌’을 만들어 소액주주 피해 보상을 이끌어냈고 1998년 지리산 수해 당시엔 야영객 30여 명이 사망하자 유족들의 변론을 맡아 국가배상을 받아내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사돈관계라는 사실도 강 전 의원의 ‘특이 이력’ 중 하나다. 강용석 전 의원의 처남 윤호상 씨와 이 대통령의 처조카 김지현 씨가 지난 2010년 5월 결혼하면서 사돈관계가 된 것. 강 전 의원의 장인은 13대 국회의원을 지낸 윤재기 전 의원이며 윤 전 의원의 차남 호상 씨와 결혼한 지현 씨는 김윤옥 여사의 동생 김재정 씨의 딸이다. 장모 홍명희 금강장학회 이사는 박원순 시장이 만든 아름다운재단의 부설기관인 아름다운가게의 공동대표이며, 장인 윤 전 의원은 박원순 시장의 후원자 역할을 해온 선배 변호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강 전 의원이 박 시장을 공격하는 것에 대해 장인과 장모는 사위인 강 전 의원을 만류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강용석 전 의원은 지난 18대 총선 공천 당시 이재오 의원이 공천에 도움을 준 것으로 전해진 바 있어 친이계 인사로 분류되고 있다. 결국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의원직을 반납하게 된 강용석 전 의원. 의원직에서는 물러났지만 ‘훗날’을 도모하는 그는 계속해서 저격수의 이미지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언젠가 대중이나 유권자가 알아주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다음 선거에서는 모르지만 60세까지는 선거 나올 거니까 호흡을 길게 가져갈 생각이다.” 무서운 집념이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안·박·이 공격하니 요즘 짭짤
돌출발언도 서슴지 않는 강용석 전 의원은 인터뷰와 방송 출연에서 눈길을 끄는 발언을 종종 해왔다. 그 중 몇 대목을 소개한다.
“조국 교수는 정치가 뭔지 모르는 것 같다. 정치는 목숨 걸고 하는 거다. 정치는 치열하다.”
“안철수 원장을 캐는 것이 어느덧 나의 트레이드마크가 돼버렸다. 이제는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다. 팬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줘야 한다.”
“나는 직업으로 정치한다. 폼 잡으려 하는 게 아니다. 홍정욱 의원 스타일로 폼 잡다가 불출마 선언하고 그런 거 아니다. 생계 등 모든 게 정치에 달려있다. 밥줄 끊으라는 소리랑 같다. 국민이 선택하지 않는 건 좋다. 하지만 다시 선택 받기 위해 노력한다.”
“네티즌과 언론의 맹비난을 받아본 사람만이 인생의 참맛을 알 수 있다.”
“나의 메인 타깃은 안철수 원장과 박원순 시장이다. 서브 타깃이 이준석 비대위원이다. 안철수 원장과 박원순 시장에 이어 이준석 위원까지 공격하니까 요즘 짭짤하다.”
“고소 직후 최효종 측에서 사과할 테니 취하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사과할 필요 없다. 그럼 진짜 코미디 된다’고 내 의도를 자세히 설명했다. 내가 살기 위해 그런 거라 당연히 취소할 거라고 했다. 최효종 씨 불안해하지 말라고 했다. 미안하다고도 했다.”
“한나라당에서 청년위원장 하면서 열심히 한 것은 아예 뉴스가 안됐다. 그때 알았다. 개가 사람을 무는 건 뉴스가 안 되고 사람이 개를 물어야 된다는 것을. 아나운서 발언은 사람이 개를 문 거다.”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