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은 올해 1~3분기 영업손실 21조 8342억 원이라는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석탄과 LNG(액화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면서 원가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지난 10월 일반 소비자용 전기요금을 1kWh(킬로와트시) 당 2.5원 인상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한전의 SMP(발전사로부터 전력을 구매하는 가격)가 상승세에 있어 4분기 실적 전망도 긍정적이지 않다.
이 때문에 산업부에서는 전기요금 추가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전기요금 조정은 산업부 산하 전기위원회 심의를 거쳐 산업부 장관이 결정한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지난 11월 1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제 연료 가격 상황이 내년에도 급격히 나아질 것 같지 않다”며 “내년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최근 물가 상승률 등을 고려하면 전기요금 인상은 가계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전기요금 추가 인상은 정부 지지율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전기요금을 인상하더라도 한전의 흑자 전환이 가능할 정도의 인상폭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정혜정 KB증권 연구원은 “2023년 상반기까지 높은 물가 상승률이 지속되고, 내년 1분기 중 기준금리 인상이 한 번 더 단행될 전망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필요한 만큼의 전기요금을 올리기는 힘들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적자가 이어지면서 한전의 재무 상황도 악화하고 있다. 한전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223.23%에서 올해 9월 말 352.60%로 증가했다. 이에 한전은 보유 부동산과 출자 지분 매각을 통한 유동성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일례로 한전 자회사 한전KDN은 YTN 지분 21.43% 매각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계 일각에서는 YTN의 민영화가 언론의 공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야당에서는 일제히 한전 등 공공기관의 자산 매각을 반대하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이와 관련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제출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공공기관이 자산을 매각할 경우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획서를 제출하고, 동의를 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한전의 자산 매각도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11월 10일 정책조정회의에서 “부자들에게 감세를 해주고, 그 감세로 부족한 자산을 국민들의 재산을 매각해서 메우겠다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공공기관 자산은 윤석열 정부의 것이 아닌 국민 재산”이라며 “국민의 자산 매각 계획을 발표하며 어떠한 공론화 과정도 매각 타당성 검증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자산 매각이 어려우면 회사채를 발행해 자본을 확충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전은 이마저도 여의치가 않은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최근 공공기관에 회사채 발행 자제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이 높은 공공기관이 회사채를 대량으로 발행하면 시중의 유동성을 흡수할 수 있다. 특히 레고랜드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사태로 국내 자금시장이 경색된 상황에서 채권마저 공공기관에 쏠리면 사기업의 채권은 시장에서 외면 받을 가능성이 높다.
한전은 회사채 발행 대신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방식으로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한전은 최근 하나은행으로부터 6000억 원을 빌리기로 했고, 다른 은행으로부터 추가 대출을 받아 2조~3조 원을 확보할 계획이다. 하지만 시중은행이 공급할 수 있는 유동성은 한정돼 있다.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최근 같은 고금리 기조에서는 대출 이자 부담도 만만치 않다.
결국 한전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대책 중 무엇 하나 순조롭게 추진되는 것이 없는 상황인 셈이다. 한전은 정부와 정치권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현재 국회에서는 한전 적자의 책임 소재를 논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한전의 적자폭이 커졌다고 주장하는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원가 상승이 결정적 요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측은 “한전뿐 아니라 전력그룹사는 신규 투자를 미루는 등 자구노력을 진행하고 있다”며 “정부는 한전의 재정 적자를 하루빨리 정부의 책임으로 해결할 것을 촉구한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와 관련, 한전 관계자는 “당장은 전기요금 인상 외에 이렇다 할 뾰족한 대안이 없으므로 (전기요금을) 인상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라며 “기획재정부나 산업부 등 관련 부서에 한전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낙하산 또?' 한국동서발전, 비전문 비서관 출신 임명
한국전력공사 자회사 한국동서발전은 지난 11월 8일 김회구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비상임이사로 선임했다. 김 전 비서관은 한나라당 충북도당 사무처장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총무기획관실 선임행정관, 청와대 인사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그는 2016년 총선 당시 새누리당 소속으로 제천·단양 지역구 출마를 시도했지만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로부터 컷오프당한 바 있다.
김회구 전 비서관은 오랜 기간 정치권에서 활동했지만 전력업계에 몸담은 경력은 없다. 청와대에서 근무할 때도 산업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한 적은 없다.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일요신문은 22일 한국동서발전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한국동서발전 관계자는 “담당자 확인 후 연락주겠다”고 한 후 별다른 답변을 주지 않았다.
비단 한국동서발전뿐 아니라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낙하산 논란이 수차례 불거졌다. 한전은 지난 8월 전력업계와 무관한 나주시 시의원 출신의 A 씨를 비상임이사로 선임해 논란이 된 바 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최근 숙박 업체를 운영하는 B 씨를 비상임이사로 선임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논란이 불거지자 B 씨는 한수원에 사의를 표한 것으로 전해진다. 안귀령 더불어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를 원천 차단하겠다고 한 약속은 말짱 거짓말이었다”며 “공정한 인사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직책에 맞는 소양과 자질은 채워주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