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당시 이순신처럼 현 시점에도 ‘영웅’ 필요…윤제균 감독 “‘영웅’은 안중근과 어머니의 이야기”
#공연·출판·영화…안중근을 만나다
안중근 의사가 본격적으로 문화계 화두로 등장한 것은 13년 전인 2009년이다. 1909년 10월,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지 100년이 되는 것을 기념해 뮤지컬 ‘영웅’이 초연됐다. 단순히 의미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 아니라, ‘영웅’은 뮤지컬로서 그 만듦새도 인정받아 각종 시상식을 휩쓸었고, 올해 어느덧 9번째 시즌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훈 작가가 쓴 소설 ‘하얼빈’이 발표됐다. 교보문고에서 9주 연속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1위에 오르며 20만 부 이상 팔린 이 책은 ‘청년’ 안중근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쏜 그 상황 자체보다도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안중근의 행보를 뒤좇고, 그의 인간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김훈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한국 청년 안중근은 그 시대 전체의 대세를 이루었던 세계사적 규모의 폭력과 야만성에 홀로 맞서 있었다”면서 “그는 서른한 살의 청춘이었다.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두어놓을 수는 없다”고 집필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오는 12월 ‘국제시장’, ‘해운대’ 등으로 유명한 윤제균 감독의 신작인 ‘영웅’이 개봉된다. 이 영화는 뮤지컬 ‘영웅’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으로,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마지막 1년을 담는다. 당시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와의 회담을 위해 하얼빈을 찾는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하얼빈역에 도착한 국가의 원수를 향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에게 총탄 3발을 명중시킨 뒤, 러시아군에 체포되면서도 ‘코레아 우라’(대한제국 만세)를 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역사적인 순간이 영화를 통해 재현된다.
영화 ‘영웅’의 특징 중 하나는 뮤지컬 ‘영웅’의 주인공인 배우 정성화를 또 다른 안중근으로 기용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윤 감독은 “제가 제작한 영화 ‘댄싱퀸’에서 정성화를 처음 만났다. 그때 정성화가 뮤지컬 ‘영웅’을 공연하고 있었는데, 꼭 한번 와서 같이 보면 좋겠다고 해서 보러 갔다. 그때 공연을 보고 정말 많이 울었다. 정말 많이 울고 안중근 의사의 공연을 보고 자랑스럽다 멋있다 하는 생각에 자긍심이 느껴지는 것보다 안중근 의사에 죄송했다.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하고 미안했다”고 밝혔다.
‘영웅’은 윤 감독이 연출한 첫 뮤지컬 영화다. “무조건 노래는 라이브로 하겠다고 생각했다”는 윤 감독은 뮤지컬을 보던 때의 감동을 유지하기 위해 정성화에게 주인공을 맡겼다. 그는 “한 겨울에 소리 때문에 파카를 입지 못하고 세트장 밑에 담요를 깔고 야외 로케 촬영에는 벌레소리 퇴치를 위해 방역을 했다”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힘든 촬영이었지만 그래도 라이브로 간다는 것을 결정한 것은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왜 이 시점에 안중근인가
지난 2014년 대한민국에는 이순신 열풍이 불었다. 그해 7월 개봉한 김한민 감독의 영화 ‘명량’은 1761만 관객을 동원했다.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한국 영화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이다. 명량해전을 앞두고 열세에 놓인 조선의 수군을 진두지휘하며 승리를 일군 이순신 장군의 모습은 관객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2014년은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특히 그해 4월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며 대한민국 사회는 집단 우울증에 걸렸다. 300여 명이 세월호와 함께 침몰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무엇 하나 할 수 없었던 대중은 보다 정의롭고 책임감 있는 리더십을 원했다. 이런 리더십 부재에 의한 갈증을 이순신이라는 역사적 영웅을 통해 해소하려는 심리 기제가 작용한 셈이다.
이는 현재의 안중근 열풍과 맞닿아 있다. 2022년 대한민국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혼란기다. 여소야대 구조 속 정치권에서는 연일 잡음이 흘러나오고, 글로벌 경제 위기와 더불어 치솟는 물가와 금리는 서민의 생활을 팍팍하게 만든다. 게다가 이태원 참사로 또 다시 대중은 충격을 받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중은 영웅을 원한다. 그래서 안중근 의사가 소환됐고, 그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의 제목은 ‘영웅’이다.
윤제균 감독은 “안중근 의사뿐만 아니라, 모든 독립운동가를 우리가 지켜드리지 못해 마음에 걸리고 아팠다”면서 “언젠가는 뮤지컬 ‘영웅’을 영화로 내가 꼭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하겠다’고 결심한 것이 10년이 넘었고 결국 영화화하게 됐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영웅은 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대적 상황, 그리고 그를 둘러싼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영웅이 탄생한다. 이 부분을 포착한 윤 감독은 안중근 의사와 어머니의 관계를 강조한다. 감독에 갇힌 독립군 아들에게 정의로운 죽음을 택하라고 권하는 어진 어미가 있었기에 안중근 의사라는 영웅이 등장하고, 대한민국의 독립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윤 감독은 “저는 영화 ‘국제시장’이 돌아가신 제 아버지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만들었다. 그 후 2017년 저희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인간 안중근의 이야기와, 안중근과 어머니의 이야기가 가슴에 많이 와닿았다”면서 “‘국제시장’이 아버지의 영화라면 ‘영웅’은 안중근과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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