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벌열차’ 카페와 만화도서관 주민들이 직접 운영…죽변 해안스카이레일 타고 환상 절경 만끽
만화가 이현세의 대표작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주인공 까치가 남긴 명대사다. 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인 ‘이장호의 외인구단’ OST의 대표곡 ‘난 너에게’의 유명한 가사이기도 하다. 당대 최고 가수였던 정수라가 불렀는데 전 국민 누구나 흥얼거릴 만큼 공전의 히트를 쳤다. 시절은 갔어도 여전히 익숙한, 그 세대가 아니어도 한번쯤 들어봤을 노래를 따라 그 시절 추억을 더듬거리며 울진으로 간다.
경상북도 울진군에는 ‘이현세 만화거리’가 있다. 매화면 매화마을의 집집마다 추억 돋우는 이현세의 만화 벽화로 단장되어 있다. 이현세 작가가 울진에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매화마을에 살았던 인연으로 이현세 만화거리가 조성됐다. 벽을 따라 마을길 골목골목을 걸어가며 그 시절 추억의 만화를 들춰보는 기분이 꽤 이색적이다.
만화가 이현세는 1980년대를 주름잡던 대한민국 대표 만화가로 꼽힌다. 그중 ‘공포의 외인구단’이 단연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와 애니메이션, 드라마 등으로 제작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만화다. 1980년대에 만화방을 들락거리며 만화 꽤나 봤던 사람들에게는 만화방의 그 기억들이 추억 이상의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지금이야 만화시장의 메인이 디지털 세계 안에서 보는 웹툰이 됐지만, 당시에는 만화방에서 침 발라가며 넘기던 종이 만화책 시절 고유의 정서가 있었다. 그 시절의 정서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이현세 만화거리는 일반 벽화거리와는 다른 특별함을 준다.
이현세 만화거리의 현재 완성 구간은 약 1km 남짓으로 계속 조성 중이다. 1구간은 350m 정도로 버스정류장이 있는 매화면사무소에서 시작해 매화2길을 거쳐 보건소까지의 거리로 메인거리와 더 안쪽으로 들어가는 골목에서 ‘공포의 외인구단’의 명장면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면사무소 대형 창고 벽면에 작품 속 주인공들이 크게 그려져 있어 여행객들의 포토스팟이 되고 있다.
200m가량의 2구간에서는 이현세 작가의 2005년 작품인 ‘누구라도 길을 잃는다’의 명장면과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다. 보건소 맞은편 골목에서 시작해 매화중학교 뒷골목을 거쳐 매화역사관까지 걸으며 시와 같은 명대사들을 훑는 재미가 있다.
3구간은 ‘공포의 외인구단’의 명장면을 걸어가면서 읽을 수 있는 벽화만화거리다. 복지회관 맞은편에서 시작해 매화중학교를 거쳐 매화3길을 따라가면 된다. ‘공포의 외인구단’의 까치와 엄지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학창시절로 돌아온 듯 호들갑을 떨며 걷게 되는 길이다. 엄지와 까치가 등장하는 덕에 ‘러브로드’라고도 불린다.
만화거리를 걸은 뒤엔 이현세 만화들을 모아 놓은 만화도서관과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열차카페 ‘남벌열차’도 들러보자. 이현세의 작품들을 모아 놓은 만화도서관에서는 옛 만화방에서의 추억을 되살리며 만화를 읽을 수 있고, 이현세의 1990년대 작품인 ‘남벌’의 이름을 딴 열차카페 남벌카페에서는 새마을호를 개조한 열차 내에서 커피와 매실차 등을 마실 수 있다.
이현세 만화를 그려놓은 벽화거리도 그렇지만 매화마을의 만화도서관과 소품숍, 남벌열차 등 여러 사업들은 모두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주민사업체를 구성하고 스스로 꾸려가는 마을사업들이다. 점점 인구가 빠져나가며 마을공동화가 시작되는 시점에 진행하는 마을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도 의미가 있다.
만화거리와 만화도서관, 남벌열차 등 마을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매화마을 이장은 “관광객이 잘 찾지 않는 지방 소도시지만 주민 스스로 콘셉트를 잡고 단장해 4050 세대에는 추억을 선사하고, 2030 세대에는 레트로 포토스팟으로 홍보하고 있다”고 전했다. 60대 이장이지만 실시간 동영상을 찍어 올리는 등 소셜미디어를 통한 소통에도 열심이다.
매화마을 골목골목의 벽화거리를 다 구경했다면 마을을 끼고 흐르는 매화천을 따라 ‘시가 있는 산책로’를 걸으며 낭만적 정서를 잔뜩 품어볼 수도 있다.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일본식 가옥인 옛 동서약방집과 주민들이 직접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복원한 일본식 목조주택 영동이네 옛집도 둘러볼 만하다.
이현세 만화거리를 다 둘러봤다면, 차로 20분 거리의 죽변항 인근에서 해안스카이레일을 타보자. 죽변등대부터 봉수항까지 왕복 40분 동안 바다 위에 깔린 레일을 따라 환상적인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바람소리와 파도소리의 음정 없는 오케스트라 협연을 들으며 한계 없는 하늘과 바다에 실컷 취하게 된다. 기암괴석들로 몰아치는 파도의 향연이 압권이다. 바람 부는 겨울에 더 매력적이다.
KTX가 닿지 않아 더 멀게 느껴지는 울진이지만 멀어서 더 좋을 때도 있다. 도저히 아는 사람 한 명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곳에서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 누구나 훌쩍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먼 곳으로 가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울진은 바로 그런 곳이다.
울진=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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