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트 롬니가 지난 2월 10일 미국보수연합(ACU)의 연례총회인 보수정치행동(CPAC)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최근 자신을 둘러싼 ‘부자 논란’에 대해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64)는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일해서 성공했고, 또 성공해서 부자가 된 것이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미국 유권자들의 생각은 다른 듯하다. 그가 미국 대통령이 되기에는 너무 부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과연 그가 서민들의 고충을 헤아릴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고 말한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이런 의심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롬니는 역대 미 대선 출마를 선언한 후보 가운데 세 번째로 가장 부자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초부유층(UHNW:Ultra High Net Worth)’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그가 연설 도중 벌이는 크고 작은 말실수는 늘 상대 진영에게 좋은 공격의 빌미가 되곤 한다. 일례로 지난달 디트로이트 연설 도중 즉흥적으로 덧붙였던 몇 마디는 그에게 다시 한 번 ‘부자 후보’라는 꼬리표를 더욱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지난 2월 24일, 자신의 고향이자 자동차공업도시인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연설을 했던 롬니는 준비한 연설문이 끝나갈 무렵 즉흥적으로 몇 마디를 덧붙였다.
“나는 미국을 사랑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디트로이트를 사랑합니다”라고 운을 뗀 그는 “이곳에서 본 대부분의 자동차들이 디트로이트에서 생산된 것이라는 사실이 매우 기쁩니다”라고 말했다. 뒤이어 “저는 무스탕과 쉐보레 픽업 트럭을 몰고 있고, 제 아내 앤은 캐딜락 두 대를 갖고 있습니다. 또 저는 예전에는 닷지트럭도 몰았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이 발언은 곧 역풍을 맞았다. 반대 진영에서 “역시 롬니는 너무 부자다” “저렇게 자랑을 하다니 제정신인가”라며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던 것이다. 가령 그의 아내가 보유하고 있는 캐딜락 SRX의 가격은 3만 5000~4만 9000달러(약 4000만~5460만 원)인데, 이는 미 중산층의 평균 연수입인 4만 9445달러(약 5500만 원)와 맞먹는다.
사실 이렇게 말한 롬니의 의도는 나쁜 것은 아니었다. 쇠락해 가는 디트로이트 자동차산업을 의식해서 자신의 가족들은 미국산 자동차만, 그것도 네 대나 갖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자 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결국 롬니의 의도와 달리 애국심보다는 그가 부자라는 사실만 부각됐고, 다시 한번 스스로 ‘부자 논란’에 불을 지핀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이런 경우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롬니의 이런 말실수는 예전에도 심심치 않게 있어왔고, 그때마다 그는 ‘부자라서 저런다’라는 비난을 듣곤 했다. 문제는 늘 즉흥적인 코멘트를 할 때마다 벌어졌다. 준비된 원고 없이는 절대로 연설을 하지 않기로 유명한 그가 가끔 즉흥적으로 몇 마디를 할 때면 꼭 말실수를 하는 것이다.
가령 지난해 6월, 탬파에서는 상심에 찬 한 무리의 실업자들 앞에서 “나 역시 실업자랍니다”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했는가 하면, 12월에는 아이오와주 수시티에서 벌어진 TV 토론회에서 경쟁자인 릭 페리에게 자신의 책에 실릴 내용을 두고 “릭, 1만 달러 걸죠, 1만 달러 어때요?”라며 즉흥적으로 내기를 제안하기도 했다. 또한 사우스캐롤라이나 플로렌스의 연설 도중에는 자신이 강연료로 받는 37만 4000달러(약 4억 원)가 ‘별로 많지 않다’고 말해 물의를 빚기도 했으며, 가장 최근에는 저소득층의 정책에 대해 묻는 질문에 “빈곤층에 대한 걱정은 별로 하지 않는다. 사회안전망이 잘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 비난을 샀다.
하지만 자신을 향한 이런 ‘부자 비난’에 대해 롬니는 오히려 당당한 편이다. 오하이오 <610 WTVNM>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부자라는 사실 때문에 공격을 받을 때면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성공한 것에 대한 사과는 하지 않겠다”라며 “사실 내가 이번 예비선거에 출마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내가 전 세계를 돌면서 사기업에서 쌓은 경험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미국을 다시 일으키는 데, 또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있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게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만일 내가 성공한 것을 문제 삼는다면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으며 “자신의 성공 노하우를 국민들을 돕는 데 이용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롬니를 지지하는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 역시 CBS 방송의 <페이스 더 네이션>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원하는 대통령은 바로 이렇게 성공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가 부자라는 점이 선거에서 긍정적인 요소가 되야 한다”고 말했다.
▲ 미트 롬니 부인의 캐딜락. 롬니 부부는 자동차를 4대 보유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일으켰다. |
‘탐욕은 좋은 것이다! 롬니-게코 2012’라는 제목이 달린 이 흑백 사진에는 롬니와 헤지펀드사 동료 여섯 명이 20달러 지폐를 손에 들고 있거나 혹은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이 사진은 롬니가 ‘베인 캐피탈’에 재직하던 무렵 촬영된 것으로 당시 롬니는 3700만 달러(약 420억 원)의 헤지펀드를 모금하는 데 성공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롬니는 이 사진이 논란이 되자 “당시 우리 회사가 성공한 첫 번째 펀드였다.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성공적이어서 이를 축하하는 자리였다”라고 해명했다.
선거 기간 내내 계속되고 있는 롬니의 ‘부자 논란’에 공화당 경쟁 후보들까지 가세했지만 그는 여전히 건재한 모습이다. 최근 미시간과 애리조나 두 곳서 벌어진 예비선거에서 라이벌인 릭 샌토럼을 따돌리고 승리를 거두면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그는 오는 3월 6일로 다가온 ‘슈퍼화요일’을 앞두고 한층 여유를 갖게 됐다.
만일 그가 경선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한다면 미 역사상 최고의 ‘부자 대통령’이 탄생할 가능성도 한층 높아지게 될 전망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미국인의 ‘0.001%’
몰몬교 명문 가문에서 태어난 미트 롬니는 어려서부터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엘리트 출신이다. 또한 롬니 가문은 정치가 가문이자 사업가 가문이기도 했다.
그의 부친인 조지 롬니는 ‘아메리칸 모터스’ 자동차회사를 경영했던 성공한 사업가 출신으로, 미시간 주지사를 역임했으며 1968년 공화당 경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그 후 닉슨 행정부에서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을 지냈고, 모친인 르노어 롬니 역시 1970년 미시간주 연방상원의원에 출사표를 던진 바 있다.
하버드대학 법학 박사 및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롬니는 졸업 후 컨설팅 회사인 ‘보스턴 컨설팅 그룹’을 거쳐 ‘베인 앤드 컴퍼니’에서 벤처 투자가로 일했다. 그리고 1984년 ‘베인 앤드 컴퍼니’의 자회사인 ‘베인 캐피탈’을 공동 창업하면서 월스트리트의 실력가로 명성을 날렸다.
그 후 다시 ‘베인 앤드 컴퍼니’의 최고경영자로 복귀했다가 1994년 매사추세츠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 워싱턴에 발을 들여 놓았다. 1999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을 거쳐 2002년 매사추세츠 주지사에 선출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현재 그의 재산 규모는 적게는 8500만 달러(약 950억 원)에서 많게는 2억 5000만 달러(약 2800억 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재산은 ‘베인 캐피탈’ 재직 시절 모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현재 롬니는 미국에서 최소 2억 5000만 달러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초부유층’인 0.001퍼센트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다 할 뚜렷한 직업은 없지만, 현재 롬니는 퇴임 시 작성한 계약에 따라 ‘베인 캐피탈’로부터 매년 투자 배당금과 수익금 명목으로 2100만 달러(약 230억 원)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지난해 신고한 재산에 따르면 현재 롬니는 ‘베인 캐피탈’에 1240만~6090만 달러(약 140억~680억 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아내 명의로 1000만 달러(약 116억 원)의 신탁도 보유하고 있다.
비록 대부분의 재산이 ‘블라인드 트러스트(백지신탁)’에 묶여 있지만 일부 재산은 직접 관리하고 있으며, 미연방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 가운데는 25만~50만 달러(약 2억 8000만~5억 6000만 원) 상당의 종마와 비슷한 금액의 금도 포함되어 있다.
롬니에 비하면 다른 예비후보들은 그야말로 평민 수준에 불과하다. 롬니의 뒤를 바짝 쫓고 있는 릭 샌토럼의 경우 보유 재산은 100만~300만 달러(약 11억~33억 원)로 후보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축에 속한다. 이밖에 뉴트 깅리치는 700만~3100만 달러(약 78억~350억 원), 론 폴은 240만~540만 달러(약 26억~60억 원), 존 헌츠먼은 1600만~7200만 달러(약 180억~800억 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재선을 노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경우에는 현재 연봉 40만 달러(약 4억 5000만 원)를 받고 있으며, 2010년 신고한 재산은 172만 8096달러(약 20억 원)다.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