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곡중 운동장에 다목적이용시설 건립 예정…학부모 대다수 반대에 교육당국 명쾌한 해답 못 내려
연세대학교 강남세브란스병원은 현재 새 병원 건립 사업을 진행 중이다. 송영구 강남세브란스병원장은 지난 10월 기자간담회에서 “정보통신기술(ICT)과 인공지능(AI)이 조화를 이뤄 효율성이 극대화된 도심형 스마트병원을 만들겠다”며 “0~2단계까지 총 3단계로 나눠 새 병원을 건립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초 진행 예정인 0단계 사업에선 대체주차장 확보에 중점을 뒀다. 병원 인근 도곡중학교 운동장에 지하 4층, 지상 3층 규모의 다목적이용시설 및 지하주차장을 짓고 병원에서 해당 지하주차장을 이용한다는 내용이다. 1단계 사업에서는 새 병원의 메인이 될 수직 집중형 건물을 세운다. 응급부·진료부·수술부·병동부가 수직으로 연계되는 중증도 중심 진료체계를 확립할 계획이다. 2단계 사업에서는 새 병원 메인 건물과 기존 2·3동 철거 자리에 들어설 건물을 이어 수평 확장형 병원으로 넓힐 예정이다.
하지만 건립 사업이 첫 단계부터 암초를 만났다. 0단계 도곡중학교 다목적 시설 및 지하주차장 신축 사업에 대해 도곡중학교 학부모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1983년 문을 연 이후 지하주차장을 신축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주차난에 시달려왔다. 이에 병원 측은 인근 도곡중학교 운동장에 지하 4층, 지상 3층 규모의 다목적이용시설을 지은 뒤 이 시설을 학교에 기부하고 20년간 무상으로 시설 내 지하주차장을 이용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와 관련, 지난 8월 학교에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다목적이용시설 및 지하주차장 증축 사업 설문조사에서 전체 투표 인원 478명 중 457명, 전체 약 96%가 공사에 반대했다. 도곡중 학부모비상대책위원회(학부모 비대위) 관계자는 “공사에 반대하는 건 정의 실현 때문도 아니고 돈을 받겠다는 것도 아니다”며 “아이들이 안전하게 학습할 수 있는 권리만 보장해주면 된다”고 강조했다.
다목적이용시설 및 지하주차장 신축공사에 대해 학부모들은 △붕괴 위험 △석면 활성화 △소음으로 인한 수업 방해 등을 우려하고 있다. 이 중 붕괴 위험은 학부모들이 가장 크게 우려하는 부분이다. 도곡중학교는 매봉산 중턱에 위치해 있다. 학교 운동장 부지 아래는 옹벽이 설치돼있다. 문제는 옹벽에 대한 붕괴 위험성이 이미 제기된 바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에서 2020년 작성한 ‘공유재산 관리계획 조건부 의결 이행 결과 보고(2016년도 제4차분 도곡중 복합화 시설 증축의 건)’의 특이사항 조항에는 ‘아파트 재건축 공사에 따른 굴착공사로 비탈면 학교옹벽 붕괴 위험’이라고 명시돼 있다. 교육청 측은 보고서에 추가로 ‘옹벽 붕괴 예방을 위해 아파트 재건축과 운동장 내 다목적 시설 및 지하주차장 증축 공사를 함께 진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강남세브란스병원과 도곡중학교 정면에 있는 도곡삼호아파트는 재건축 공사를 앞두고 있다. 즉, 도곡중학교 운동장 아래에 있는 옹벽이 도곡삼호아파트 주택재건축 정비사업 과정에서 붕괴할 수 있다는 내용이 서울시교육청 보고서에 작성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육청도 최근까지 도곡중학교 다목적이용시설 신축 공사에 대해 우려를 표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7월 강남서초교육지원청·도곡중학교·학부모 간 진행된 회의 내용이 담긴 회의록을 확인한 결과, 강남서초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세브란스 측 지하주차장을 (도곡중학교 운동장에) 파기 위해서 그거를 버텨내기 위한 어스앵커를 (해야) 하는데 이건 제가 보기에는 안 될 것 같은데…”라고 언급했다. 어스앵커는 토압 지지에 쓰이는 토목공법으로 토사물이 넘치지 않도록 지지하는 지중정착장치다. 이 관계자는 또 “걱정스러운 건 건물 횡(가로)으로 쭉 어스앵커를 찔러 넣는다는 게 찝찝하고 불안하다”며 “상도초등학교 사건도 있고 해서 건물에 지하 상태가… 물론 지질조사는 했지만 어스앵커를 찔러 넣었을 때 ‘건물 변이가 생기면 누가 감당할 거냐’ 이 부분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다목적이용시설 및 지하주차장 신축 사업과 관련해 공사 전 안전성을 확인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지난 11월 17일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은 “학교 인근에 삼호아파트 재개발과 강남세브란스병원 공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예정인데 이에 대한 안전영향평가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사 진행과 관련해 강남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교육청을 가운데 두고 여러 문제에 대해 (학부모들과) 타협점을 (찾기 위해)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다목적이용시설 및 지하주차장 신축 사업으로 인한 석면 활성화도 문제로 떠올랐다. 학교 건물 내 석면 교체 공사 등 내진 보강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운동장 공사가 진행되면 공사에 따른 진동으로 가라앉았던 일부 석면가루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석면은 1급 발암물질로 석면가루를 자주 흡입할 경우 폐질환이나 암을 유발될 수 있다.
최근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도 “지어진 지 30년이 넘은 도곡중학교는 내진설계가 돼 있지 않은 노후된 건물”이라며 “공사기간 등교와 수업을 계속 한다면 소음과 분진은 물론 석면 활성화와 암반 발파로 인한 진동으로 학교 건물 붕괴 위험마저 있어 학생들과 교사들의 학습권과 안전권 침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공사 소음으로 인한 교육권 침해도 학부모들이 우려하는 부분이다. 학부모 비대위 관계자는 “공사를 진행하면 (운동장을 이용하지 못해) 아이들 체육수업을 교실에서 진행한다. 이렇게 밖에서 활동하지도 못한 채 수업 내내 공사 소음을 듣고 있으면 아이들에게 큰 스트레스일 것이고, 선생님들도 수업에 지장이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상황에 교육당국은 명쾌한 해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학부모 비대위에 강남세브란스병원 측에 다목적이용시설만 짓는 걸로 요구하라고 발언한 것으로 파악됐다. 학부모 비대위 관계자에 따르면 강남서초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학부모 비대위 관계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 “협의체 차원(학부모 비대위)에서 (강남세브란스병원 측에) 지하주차장 빼고 다목적이용시설만 지어달라고 요구하시지”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학부모 비대위 관계자에 따르면 강남서초교육지원청 관계자는 또 학부모 비대위 관계자에게 “(병원과 교육청, 학교 간 체결한) MOU는 깨지 않은 채 협의체에서 지하주차장은 위험하다고 반대하니까 짓지 말고 (급식실·체육관이 들어서는) 다목적이용시설만 짓는 걸로 협의하시는 거 어떻겠느냐”고 귀띔했다고 전해진다. 앞서 2015년 10월 12일 강남세브란스병원은 도곡중학교와 공간개발 및 상호발전을 위한 MOU(업무협약)를 체결하고 공간 확충을 통한 장기발전계획을 약속한 바 있다.
다목적이용시설 및 지하주차장 신축 공사가 난항에 빠지자 현재 공사 기간에 학교를 옛 영동중학교로 임시 이전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학부모 비대위 관계자는 “한 학부모께서 옛 영동중학교로 임시 이전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며 “위험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는 것보다 조금 거리가 멀어져도 안전한 장소에서 교육을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강남서초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확정된 사안은 아니고 현재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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