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서양 엄마들과 포대기 판매 사이트는 포대기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쉽게 잠들지 않아 고생했던 첫째 딸을 포대기에 감싸는 순간 거짓말처럼 잠이 들어 놀라웠다. 아이와 정서를 교감하는 기분이 더 강했을 뿐 아니라 가벼워서 다른 일을 함께 하기 좋았다.
아이가 엄마에게 밀착될 뿐만 아니라 엄마가 보는 것을 뒤에서 함께 볼 수 있다. 아이들은 포대기에서 세상을 관찰한다.’
한국에서는 서양의 유모차, 캥거루 띠, 베이비 워머, 일본식 아기 띠 포대기에 밀려 사라져가는 우리의 포대기가 서양에서 각광받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포대기는 “어린아이의 작은 이불로 덮고 깔거나 어린아이를 업을 때 쓴다”고 되어 있다. 아이를 업을 때만 쓰는 게 아니라 덮고 깔 때 쓰는 이불을 뜻한다. 아이를 업고 아기를 업은 사람의 앞까지 폭 싸게 하여, 아기를 따스하게 해주는 천도 포대기, 혹은 ‘처네’라 불렀다. 또 갓 태어난 아이의 탯줄을 끊고 나서 아이의 몸 전체를 감쌀 수 있게 만든 것도 포대기로 불렀다.
‘아이를 업을 때 쓰는’ 포대기의 역사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구체적인 문헌 기록을 찾기 어렵다. 우리 곁에 공기처럼 살아 숨 쉬는 것이어서 주목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 우리의 포대기가 서양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podaegi’로 아기를 업은 외국 엄마들의 모습. |
‘조선에서 포대기는 대개가 무명이나 그렇지 않으면 주단에 솜을 두어 누빈 것입니다. (중략) 아이를 업는 것은 안는 것보다 일하기 편하고, 걸음 걷기도 좋고, 또 겨울에 어린애의 배를 차게 하지 않는 등 여러 가지 좋은 점이 있습니다. (중략) 일본이나 중국의 어린아이 업는 풍속보다는 조선의 것이 좀 낫지 않은가 합니다. 중국에서는 넓고 두터운 보의 네 귀에다 끈을 달아가지고, 두 개는 어깨에 메고 두 개는 허리 근처를 매어 자유로 어린아이가 놀 수 있게 한다고 합니다. 또 일본사람의 어린애 업는 것을 볼 것 같으면, 가는 끈으로 어깨와 넓적다리를 매어가지고 업은 것을 가끔 보는 것인데 그것은 어린애에게 퍽 좋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어떻든 어린애는 넓은 끈을 펴가지고 허리와 볼기를 좀 편하도록 매어줄 것입니다.’
1987년 아동심리학을 전공한 연세대의 김경희 교수도 비슷한 견해를 내놨다.
‘포대기보다 끈이 훨씬 좁고 딱딱한 캥거루 띠는 아기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한다. 특히 엄마와 아기가 피부 접촉을 하지 못하는 지게 식 캐리는 양쪽에 불안감을 준다.’(동아일보 1987년 4월13일자).
반면 포대기는 허리에 닿는 면적이 넓어 편안하고, 아기와 밀착되므로 안정감을 준다. 포대기로 아이를 업으면 아이와 엄마는 일체가 된다. 아이는 뱃속에 있을 때처럼 엄마의 심장 소리를 피부로 들으며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다. 또 아이는 엄마와 눈높이가 같아진다.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서 더 많은 세계를 관찰할 수 있다. 더 많은 자극에 노출되고, 두뇌 발달도 더 잘 된다.
포대기와 관련된 속설이 있다. 포대기에 아이를 업고 다니면 아이의 다리가 오자 형으로 변형된다는 주장이다. 인터넷에서도 이런 속설들이 돌아다닌다. 하지만 의사들은 아이는 모두 오자 형 다리를 지니고 태어나며 포대기와는 상관이 없다고 설명한다.
서양 것만을 좋은 것으로 여기고 따라하던 우리에게 서구의 ‘포대기 붐’은 좋은 교훈을 준다. 우리문화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재조명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 문화에 대한 새로운 성찰과 각성과 토론도 붐을 이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