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신문] 연말이 다가오면서 소득세법 개정안을 향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새해부터 금융투자소득과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정부 입장은 두 세금 부과를 모두 2년씩 유예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역시 2년 유예 찬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그러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세부항목에서 정부와 야당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 때문에 가상자산 과세 유예 논의는 시작도 못하는 형국이다.
2023년부터는 금투세가 신설된다. 주식·채권·펀드 등 금융투자 상품에서 얻은 소득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이에 따라 대주주가 아니더라도 주식으로 5000만 원 넘게 소득을 봤다면 20~25%의 세율이 매겨진다. 다만 이익과 손실을 5년간 유예할 수 있도록 했다. 한 해 동안 발생한 손실을 이익에서 공제한 뒤 손실금이 남았다면 다음 해로 넘겨서 공제할 수 있다.
증권거래세는 내려간다. 현행 코스피 시장의 증권거래세는 0.08%다. 다만 매도시 농어촌특별세 0.15%를 더해 총 0.23%가 부과된다. 코스닥은 증권거래세 자체가 0.23%다. 금투세 신설로 코스피는 증권거래세를 폐지하고 코스닥은 세율을 인하한다. 즉 코스피·코스닥 모두 증권 거래시 내는 세율이 0.15%로 통일되는 셈. 금투세 도입을 찬성하는 전문가들은 이월 공제 제도와 증권거래세 인하로 손실을 봤을 때도 세금을 내야 했던 개인 투자자들의 과세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폭락했던 주가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주식시장에 훈풍이 불었던 것이 금투세 도입에 윤활유 역할을 했다. 코스피만 하더라도 2020년 3월 1400대를 기록한 이후 2개월 만에 2000선을 회복하더니 금투세가 의결된 12월 초에는 2600선까지 회복했다. 이듬해 초 3000선까지 넘어선 코스피는 그해 호황기를 보냈다. 덕분에 여야 큰 이견 없이 소득세법이 개정됐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금투세 도입에 제동이 걸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양도소득세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그러나 부자 감세 논란과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존재했다. 정부는 이 공약을 유보한 대신 금투세 유예를 강조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6월 ‘새정부 경제 정책 방향’ 발표시 금투세 도입을 2년 유예해 대주주 기준을 10억 원에서 100억 원으로 인상했다. 증권거래세 인하도 0.15%를 보류하고 0.20%까지만 낮췄다.
정부의 입장이 바뀌니 여당도 금투세를 유예하자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자연스럽게 야당과 대립각이 세워졌다. 당초 야당은 예정대로 금투세를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현재는 조건부 찬성으로 바꿨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은 대주주 기준은 10억 원, 증권거래세는 금투세 도입 때 정한 0.15%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금투세 도입 당시와 자본 시장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물가 상승으로 금리 인상이 자본 시장을 압박하고 있어서다. 2020년과 2021년 코스피 평균 거래량은 약 8억 9000만~10억 건 수준이었으나 올해는 11월 30일 기준 약 6억 건대로 거래량이 크게 줄었다.
시장 상황이 좋지 못한 탓에 금투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부각되고 있다.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 금투세 도입은 큰손들의 이탈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본시장연구원이 2019년 발행한 ‘상장 주식에 대한 증권거래세에서 양도소득세로의 전환 성공 및 실패 사례’에 따르면 대만은 1988년 주식시장 과열을 안정시키기 위해 1989년 1월 1일부터 취득한 주식의 양도 차익에 대해 최대 50% 세율의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그러나 세율 부과 발표는 시장을 급격히 얼어붙게 했다. 발표 직후 한 달 동안 TWSE 지수는 8789에서 5615로, 일일 거래금액은 17억 5000만 달러에서 3억 7000만 달러로 급락했다.
개인투자자 차별 논란도 나온다. 금투세 적용 대상이 개인투자자라는 점 때문이다. 게다가 증권거래세까지 인하하면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자는 주식 투자시 세금에서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당은 기관은 법인세를 내고, 외국인은 본국에 세금을 내기에 금투세를 부과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증권거래세 인하·폐지시 장기 투자 활성화라는 기대와 달리 외국계 증권사나 기관투자자의 ‘단타’ 거래가 증가하면서 개인투자자의 손실이 늘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금투세 유예 법안은 2023년도 세입예산안 부수 법률안(부수법안)에 지정돼 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11월 30일 주재한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12월 2일 오후 2시까지 타결하는 데 노력하기로 했다. 그러나 예산안 심사 논의에 앞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어 금투세 유예에 대한 결정은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상황에 가상자산 유예 논의는 시작도 못하고 있어 가상자산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국회에 가상자산 거래 소득에 관한 과세 시점을 내년에서 2025년으로 유예하는 내용을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관련법에 따르면 가상자산에 투자해 250만 원이 넘는 소득을 낸 사람은 22%의 세율로 세금을 내년부터 내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가상자산 과세도 유예가 옳다고 주장한다. 현재 개정된 소득세법에 따르면 가상자산은 기타소득으로 분류돼 있다. 가상자산을 일반적인 자산으로 본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발생한 소득으로 본 것. 그렇기 때문에 투자로 인한 손실이 발생해도 주식처럼 손실 이월도 불가능하다. 투자자 보호 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과세 체계만 마련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가상자산은 획득 방법이 다양하다. 채굴, 예치 즉 스테이킹, 하드포크, 에어드롭 등 다양하게 가상자산을 얻을 방법이 있기에 단순히 기타소득으로 분류하기보다 저마다 다른 과세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례로 자본시장연구원에서 11월 30일 발행한 ‘국내 가상자산 소득과세에 있어서의 주요 쟁점 및 개선 방향’에 따르면 채굴로 인한 가상자산 소득은 사업성 여부를 따져야 한다. 사업성이 있다면 사업소득세 과세 대상인지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과세당국은 가상자산 채굴사업으로 인한 소득의 사업소득 인정 기준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이러한 법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가상자산 채굴사업에 종사하는 사업자가 관련 사업비용 공제가 안 되거나 불측의 세금을 부담하는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앞의 보고서를 작성한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가상자산 과세제도의 정비 수준은 국제적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가상자산 과세제도의 입법적 미비를 해결하기 위한 시간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는 가상자산 기타소득 과세 시행 시기의 2년 유예 조치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는 박성준 앤더스 대표는 “현 가상자산 과세는 허점이 너무 많다. 정부 차원에서 가상자산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후 가상자산에 대한 법과 제도를 마련해 가면서 과세 체계도 세밀하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과세 유예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조언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