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프랑스가 우승한다면 여기에는 또 한 가지 특별한 의미가 있게 된다. 바로 ‘월드컵의 저주’ 혹은 ‘디펜딩 챔피언의 저주’를 끝내게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는 ‘지난 대회 우승팀은 다음 대회에서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한다’는 저주로, 지난 20년 동안 단 한 차례만 제외하고 모두 들어맞았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우승국인 프랑스가 과연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할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프랑스는 일단 저주를 피한 듯 보인다. 덴마크, 튀니지, 호주와 함께 D조에 속했던 프랑스가 조 1위(2승 1패)로 16강 진출을 확정지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다섯 번의 월드컵에서 내내 챔피언의 어깨를 짓눌렀던 ‘승자의 저주’도 풀리게 됐다.
특히 이 저주는 유럽 국가에게만 혹독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8강까지 올라가면서 유일하게 저주를 피했던 브라질을 제외하고 2002년 프랑스, 2010년 이탈리아, 2014년 스페인, 2018년 독일은 디펜딩 챔피언 타이틀 방어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일찌감치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는 씁쓸함을 맛봤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선수들은 물론이요, 팬들도 은근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도 약체 팀을 상대로 어이 없이 무너지거나, 심지어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허무한 경기력을 보이면서 실망감을 안겨주는 일도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만일 프랑스가 이번 월드컵에서 내친 김에 우승컵까지 들어올린다면 이 또한 역사적인 기록이 될 전망이다. 1930년 첫 월드컵 대회부터 2018년까지, 전체 월드컵 역사를 통틀어서 한 국가가 연속으로 우승한 경우는 단 두 번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934년과 1938년 연이어 우승한 이탈리아와 1958년과 1962년 우승했던 브라질 두 나라만이 현재 이 영광스런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 후 56년 동안 이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월드컵의 저주’는 어떻게 시작된 걸까. 저주의 시작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월드컵 우승팀이 다음 대회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던 적은 딱 한 번뿐이었다. 1934년 우루과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우루과이는 대회 참가를 거부했기 때문이었지 탈락은 아니었다.
1998년 우승국 프랑스가 2002년 월드컵에 출전했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프랑스를 우승 후보로 점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1998년 브라질을 홈에서 3 대 0으로 가뿐히 꺾고 처음으로 챔피언 자리에 오른 프랑스는 당시 지네딘 지단, 에마뉘엘 프티, 마르셀 드사이 등 스타 선수들을 보유한 강팀이었다. 심지어 월드컵 2년 전에는 유로 2000까지 우승한 상태였다.
하지만 서울에서 열렸던 세네갈과의 첫 조별리그 경기는 충격이었다. 2002 월드컵이 데뷔 무대였던 최약체 세네갈에 1 대 0으로 패하면서 한방을 먹었던 것이다. 아무리 지단이 부상으로 결장한 상태라고 해도 우승 후보였던 프랑스가 세네갈의 거침없는 공격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은 전세계 축구팬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우루과이와는 0 대 0 무승부, 그리고 덴마크에게는 2 대 0으로 패하면서 조별리그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한 채 조 최하위로 탈락하고 말았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저주는 계속됐다. 이번에는 2006년 우승국이었던 이탈리아 차례였다. 2006년 결승전에서 프랑스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기세등등했던 이탈리아는 하지만 4년 후에는 조별리그에서 2무 1패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면서 쓸쓸히 퇴장했다. 게다가 월드컵에 처음 출전하는 슬로바키아에게까지 3 대 2로 패했다는 사실에 이탈리아 팬들은 분노했다.
우연도 반복되면 필연이라고 했던가. 2010년 우승팀이었던 스페인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개막이 다가오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스페인은 월드컵 외에 유로 2012 정상에도 올랐을 만큼 세계 최고의 전력을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스페인도 월드컵의 저주를 피해가지 못했다.
조별리그에서 만난 네덜란드에게 1 대 5로 대패한 스페인은 이어서 만난 칠레에게도 0 대 2로 패했다. 호주에게 3 대 0으로 이겨 간신히 체면을 차리긴 했지만, 1승 2패의 처참한 성적으로 일찌감치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는 독일 차례였다. 2014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1 대 0으로 꺾고 역대 네 번째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린 ‘전차 군단’은 2018년에도 역시 우승 후보팀 가운데 하나였다. 아닌 게 아니라 2017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2군 라인업으로 출전했는데도 우승했는가 하면, 2017년 3월부터 죽 FIFA 랭킹 1위를 유지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8 월드컵을 앞두고 독일의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는 조별리그 탈락이었다. 멕시코와의 1차전에서 의외로 허술한 경기력을 보이면서 1 대 0으로 패한 독일은 스웨덴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마지막에 만난 우리나라에게 2 대 0의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면서 탈락하고 말았다. 독일이 1라운드에서 탈락한 것은 1938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후 독일은 FIFA 랭킹도 15위로 추락하는 등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렇다면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과연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까. 조별리그를 통과한 프랑스가 저주를 푼 김에 우승까지 할 수 있을까. 이에 축구 전문가들은 이 저주가 “1998년 프랑스에서 시작해 아마도 2022년 프랑스에서 끝날 것 같다”라고 점치고 있다. 무엇보다 현재 프랑스 팀의 전력이 세계 최고라는 점 때문에 그렇다.
킬리안 음바페를 비롯한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특히 음바페의 나이가 이제 겨우 23세라는 점은 더욱 고무적이다. 과거 2회 연속 우승했던 이탈리아와 브라질의 경우에도 당시 비슷한 나이에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던 젊은 선수가 주축이 됐었다. 이탈리아의 주세페 페피노 메아차는 1934년과 1938년 이탈리아가 연속으로 우승할 당시 각각 24세, 28세였으며, 브라질의 펠레는 1958년과 1962년 두 차례 월드컵 우승 당시 18세, 22세였다.
현재 축구 전문가들은 프랑스의 우승 확률을 19% 정도로 점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디디에 데샹 감독은 2012년 대표팀 감독 부임 후 지금까지 64%의 승률을 보이고 있다. 과연 프랑스는 월드컵의 역사를 새로 쓸 수 있을까.
'주술사 고용했으면 돈은 내야지…' 나라별 월드컵 저주들
#호주
호주 대표팀이 30년 넘게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던 이유가 혹시 저주 때문이었다면 믿겠는가. 전 호주 국가대표 선수였던 조니 워런이 2002년 자서전에서 털어놓은 바에 따르면, 호주팀의 비극은 아프리카 주술사의 저주 때문이었다.
이 저주의 시작은 1970년 멕시코 월드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호주는 모잠비크에서 열린 지역 예선에서 로디지아(현재 짐바브웨)와 맞붙었다. 하지만 당시 워런을 포함한 몇몇 호주 선수들은 승리에 집착한 나머지 한 가지 꼼수를 부렸다. 경기 전 주술사를 찾아가 상대팀을 저주하는 주문을 부탁했던 것. 이에 주술사는 골대 근처에 뼈를 묻고 상대편을 저주하는 주문을 걸었고, 호주는 로디지아를 3 대 1로 꺾고 승리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호주 선수들이 주술사에게 약속했던 대금을 지불하지 않고 돌아가버리자 주술사는 괘씸한 마음에 호주팀을 저주하는 주술을 걸었다. 이 때문일까. 그 후 호주는 이스라엘을 꺾는 데 실패하면서 지역 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1974년 호주는 월드컵 본선에는 진출했지만, 조별리그 세 경기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한 채 1무 2패로 탈락했다. 그리고 그것이 본선 무대 마지막이었다. 그 후 32년 동안 호주는 단 한 번도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특히 1998년 지역 예선에서는 이란을 상대로 내내 2 대 0으로 앞서 나가다가 경기 막판에 2점을 연달아 내주고 비기면서 결국 고배를 마셨다.
이 저주가 풀린 것은 시나리오작가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존 사프란의 2004년 TV 시리즈 ‘존 사프란 vs 신’을 통해서였다. 워런의 책을 읽고 이 저주에 대해 알게 된 사프란은 모잠비크로 날아가서는 저주를 풀어줄 새로운 주술사를 고용했다.
정말 이 주술이 통했던 걸까. 놀랍게도 호주는 2006년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을 뿐만 아니라, 16강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감독은 거스 히딩크였다. 그리고 그 후에도 호주는 2010년, 2014년, 2018년, 2022년 월드컵 본선에도 계속해서 진출하고 있다.
#멕시코
멕시코 대표팀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라고 하면 아마 ‘16강 단골팀'일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1994년 월드컵부터 매 대회마다 번번이 8강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1994년 이후 7회 연속 16강에 진출했지만, 늘 거기까지였다. 1994년 월드컵에서 불가리아에 승부차기 끝에 패한 게 시작이었으며, 이를 가리켜 멕시코 팬들은 ‘5차전의 저주’라고 부르고 있다.
한편 카타르 월드컵에서 멕시코는 아예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면서 16강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잉글랜드
잉글랜드에게는 다소 특별한 저주가 있다. 일명 ‘믹 재거의 저주’다. ‘롤링스톤스’의 리더인 믹 재거가 공개적으로 팀을 응원하는 발언을 하거나, 경기를 직관하면 잉글랜드가 진다는 징크스다. 때문에 잉글랜드 축구팬들에게는 우승 외에도 원하는 소망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재거가 제발 월드컵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하지 않는 것이다.
이 저주가 잉글랜드 팀에 영향을 발휘한 것은 2014년과 2018년 월드컵이었다. 2014년 재거는 잉글랜드 팀의 승리를 기원하는 트윗을 두 번 올렸고, 그때마다 잉글랜드는 공교롭게도 패했다. 그리고 2018년 월드컵 4강에서 잉글랜드가 크로아티아에 1 대 2로 뼈아픈 패배를 당했을 때도 재거는 관중석에 있었다.
재거의 저주가 통하는 건 비단 잉글랜드뿐만이 아닌 듯하다. 월드컵에서 그가 공개적으로 응원하는 팀들은 모두 패배했다. 일례로 2014년 월드컵 독일과 브라질의 4강전을 앞두고 재거는 공개적으로 브라질을 응원한다고 밝혔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독일이 브라질을 상대로 무려 7골을 넣으면서 7 대 1 대승을 거두었다.
‘믹 재거의 저주’가 시작된 건 2010년 월드컵이었다. 당시 재거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나란히 가나와 미국이 맞붙은 16강전을 현장에서 관람했다. 당시 재거는 미국팀을 응원했지만, 미국은 1 대 2로 패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