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공휴일 응급 의약품 처방 문제 해결 위해 개발…박인술 대표 “토털 헬스케어 플랫폼으로 발전 기대”
#10년의 기다림이 통했다
30여 년간 약국을 운영하던 박인술 쓰리알코리아 대표가 화상투약기에 대해 고민하게 된 계기는 2011년 안전상비의약품 제도 논란이 일면서다. 진통제, 소화제 등 가정상비약 일부에 한해 편의점에서 판매를 허용하는 방안을 두고 약사 사회에서 갑론을박이 일었다. 처음에는 차라리 약국에 자판기를 설치하자는 얘기도 나왔지만 전문성이 없는 민간인이 약을 함부로 타갈 수 있다는 점에서 똑같은 반대에 부딪혔다. 박 대표는 “자판기의 단점을 극복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환자들이 의약품을 직접 고르는 게 아니라 약사가 원격으로 약을 선택해 처방해주는 방식이면 괜찮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상품이 화상 상담을 통해 약사가 환자의 증상을 확인해 원격제어로 약을 건네줄 수 있게 만든 화상투약기다. 첫 시제품 발명 이후로는 한동안 순풍을 단 듯 순조로웠다. 2011년에 특허 출원을 마치고 2012년엔 쓰리알코리아 법인을 설립했다. 전국 최대 규모의 지부 중 하나인 경기도약사회와 화상투약기 사업을 함께하기로 업무협약(MOU)도 맺었다. 2013년에 인천시 부평구의 한 약국에 화상투약기 시제품을 설치해 2개월간 시범운영을 하면서 환자 만족도가 상당하다는 점을 확인하기까지 했다.
당시에는 화상투약기 사업이 규제의 영역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는 것이 박인술 대표의 설명이다. MOU를 맺기 전 경기도약사회 쪽에서 법령해석을 요구해 법무법인을 통해 미리 문제가 없다는 확답도 받았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주문, 관리, 복약지도, 인도가 모두 약국 내에서 이뤄지는 것과 동일하게 이뤄진다. 문제 될 요소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대한약사회가 강경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시범 운영 현장에는 약사들의 릴레이 항의와 설득 전화가 빗발쳤다. 보건복지부도 화상투약기 사업이 위법하다는 내용의 유권해석을 내놓았다. 국내 약사법 제50조에 ‘약국 개설자 및 의약품 판매업자는 그 약국 또는 점포 이외의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된 것이 근거였다. 화상투약기를 통해 원격으로 약을 사고파는 행위를 ‘약국 외 판매’로 본 것이다. 결국 시운영 2개월 만에 화상투약기를 철거해야 했다.
그때부터 규제와의 지난한 싸움이 시작됐다. 법제처, 국민신문고, 규제개혁신문고를 거쳐 2016년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약사법 개정 의결까지 이끌어냈지만 거기까지였다. 마지막 남은 희망이 규제 샌드박스였다. 샌드박스 사업 출범 직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먼저 쓰리알코리아에 신청할 것을 권했다. 규제 샌드박스 적용 과제 예시와 서류 신청양식에도 화상투약기를 사례로 적어 홍보했다.
그러나 2019년 1월 샌드박스 사업이 출범한 직후 쓰리알코리아는 2021년 6월까지 단 한 번도 심의위원회에 상정되지 못했다. 박인술 대표는 “처음에는 국정감사와 총선을 핑계로 연기하더니 나중에는 더 이상 이유도 설명하지 않았다. 줄곧 강경하게 반대 중인 약사회의 눈치를 본 것이라고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2021년 8월 부작위위법확인소송까지 제기했다. 결국 이례적으로 5차례나 사전검토위원회가 열린 끝에 2022년 6월 화상투약기의 샌드박스 특례승인이 떨어졌다. 무려 10년 만의 쾌거였다.
#시공간의 제약 넘어…모두에게 ‘윈윈’
2000년 의약분업 이후 밤늦게까지도 운영하던 약국의 영업시간은 병원과 동일하게 조정됐다. 그렇기 때문에 야간이나 공휴일에 응급 상황을 맞이한 환자들이 의약품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게 될 때도 있다. 박인술 대표는 “응급실에 갔는데 경증질환으로 판명날 경우 10만 원 안팎의 응급관리료를 따로 내야 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그냥 참는 경우가 많다. 화상투약기를 이용하면 다음날 아침 병원이 문을 열 때까지 증상을 완화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샌드박스 특례승인이 떨어지면서 쓰리알코리아는 향후 3개월간 총 10개 약국에서 화상투약기를 운용할 수 있게 된다.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전국 최대 1000개의 약국까지 확장할 수 있게 된다. 특례승인 이후 벌써 전국 곳곳에 있는 약국에서 설치 문의가 쇄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인술 대표는 “사업설명회를 우선 한 차례 열어 흥미를 보이는 약사 분들께 자세한 시스템을 알려드리려고 한다. 화상투약기의 KC인증도 진행 중이기 때문에 내년 1월쯤에야 운영을 시작할 수 있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샌드박스 특례승인이 이뤄지면서 화상투약기로 판매할 수 있는 의약품 종류는 11개 효능품목군으로 제한됐다.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편의점에 구비된 상비약보다는 더 다양한 종류의 약을 판매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화상투약기가 상용화되면 전문 상담 약사가 약국이 문을 닫은 이후 시간인 야간이나 공휴일에 자택이나 콜센터에서 대기하면서 환자들을 응대하게 된다. 박인술 대표는 “앞으로 시범운영을 통해 데이터를 모은 후 시간대별로 필요한 수만큼 상담 약사들을 배치할 예정이다. 환자들이 별로 없는 시간대에는 한 명의 약사가 수십 대의 투약기를 전담해도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약국의 구매 부담을 덜기 위해 화상투약기는 구매가 아닌 렌털 방식으로 운용될 예정이다. 월 임대료는 정액제가 아니라 화상투약기의 판매 수익에 따라 정산될 방침이다. 원격으로 근무하는 상담 약사의 임금 정산 또한 판매 수익 안에서 이뤄지게 된다. 최초에 쓰리알코리아에 지급하는 서비스 가입비용과 보증금을 제외하면 약국에 유리한 조건이다. 박인술 대표는 “초기 부담은 회사가 지고 갈 예정이다. 저희는 이미 어느 정도 데이터를 쌓은 데다 한두 대가 아니라 여러 대를 운용하기 때문에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인술 대표는 “저희는 국민의 안전한 의약품 사용을 위해 약사들을 매개해주는 역할을 하는 만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약국과 함께 발전해나가길 희망한다. 이번 샌드박스 특례승인으로 화상투약기의 기능이 인정받게 되면 향후 자연스럽게 다양한 기능을 망라하는 토털 헬스케어 플랫폼으로도 발전할 수 있게 되리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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