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의 ‘수박경제’ 발언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2월 27일 “(한국경제가) 겉은 시장경제를 유지하지만 안을 잘라보면 빨갛다”며 한국의 시장경제를 ‘수박경제’라고 비판했다. 심지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 경제를 ‘역(逆)수박경제’라며 시장경제만 놓고 보면 중국이 더 낫다는 의견을 피력하기까지 했다. 작심이라도 한 듯 이 회장은 정부(정치권)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업계에서도 이 회장을 외면하고 있다. 역풍을 맞고 있는 셈이다. 그 까닭을 짚어봤다.
지난 2월 2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기자간담회에 나선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은 정부와 정책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 회장의 이날 발언 강도와 수위는 몹시 높았다. 이 회장은 ‘수박경제’ 비유뿐 아니라 “정부(정치권)는 지금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국가에도 없는 정책을 펴고 있다”며 “반서민 포퓰리즘 정책으로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우리나라가 이러다가 나라 망치는 방향으로 안 가나 우려한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이 회장의 발언은 얼핏 최근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포퓰리즘에 대한 날선 비판으로 들린다. 하지만 속내를 뜯어보면 호응받기 쉽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이 회장 발언의 배경이 된 것은 대형 유통업체에 대한 규제다. 대형마트의 영업일수·시간제한,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영업제한 등 갈수록 심해지는 유통업체에 대한 영업제한 조치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판단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 회장의 발언이 동의를 얻기는커녕 오히려 ‘대기업 최고경영자로서 적절하지 않다’는 반응이 더 많다. 무엇보다 자기 이익을 우선시하면서도 마치 서민을 생각하는 척 포장했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즉 정부의 규제 때문에 매출과 이익이 줄어들자 반발한 것인데, 마치 정부가 서민들이 값싸고 질 좋은 물건을 살 기회를 박탈하는 것처럼 주장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각에서는 최고경영자가 사업의 어려움을 막말을 써가며 규제 탓으로만 돌린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런저런 규제가 사업을 확장하는 데 어려움을 주는 원인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설사 규제가 따른다 해도 최고경영자라면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한 회장이 협회장을 맡고 있는 한국체인스토어협회는 지난 2월 17일 대형마트와 SSM의 영업제한 등 규제에 대해 ‘직업(영업)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이 회장은 홈플러스가 ‘골목상권’을 침해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홈플러스는 대로에만 들어간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도 환영받지 못했다. ‘골목’의 의미를 사전적으로만 해석해 주장했다는 것이다.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관계자는 “홈플러스가 대로에 있다는 것 자체가 골목상권에 크나큰 피해를 주는 것”이라며 “골목을 오가는 사람만 골목상권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회장의 발언은 즉각 중소상공인들의 반발과 비난을 샀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억지주장을 펼치며 합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승재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 사무총장은 “다른 유통업체와 비교해 유독 홈플러스가 소상공인들과 충돌이 잦다”며 “유통법과 상생법을 피해가는 교묘한 편법 수단을 홈플러스가 가장 많이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야간 개점과 기습·편법 입점 등을 가리킨다.
▲ 홈플러스의 ‘365플러스 편의점’. 김미류 인턴기자 |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또 지분 50% 이상을 개인에게 양도하면 상생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 직영점이 아닌 개인사업자와 함께 하는 가맹점 형태로 입점을 추진해 편법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앞서의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 관계자는 “가맹점 형태로 입점하는 것을 마치 상생협력의 모델로 선전하는 행태도 어이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홈플러스는 입점할 때마다 마찰이 잦았고 할인행사마저도 실은 미끼나 눈속임이라는 질타를 많이 받았다. 많은 소상공인들이 “야간 영업을 하는 대형 유통업체도 홈플러스가 유일하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홈플러스 측은 “매장마다 영업시간이 다르다”고 해명해 야간 영업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다.
이승한 회장은 그간 잦은 말 바꾸기로 구설에 오른 적도 적지 않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편의점 사업 진출을 부인하다 결국 편의점 사업을 시작한 경우다. 이 회장은 “골목상권을 살리자고 대형마트·SSM의 영업을 제한하면 결국 피해는 좋은 상품을 싸게 살 기회를 잃어버리는 일반 서민”이라고 했지만 대형마트의 가격 눈속임은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바다.
최승재 사무총장은 “영업제한 조치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으로 아는데, 반대로 헌법 제123조에는 국가가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해야 하며 제37조에는 자유와 권리는 질서유지나 공공복리를 위해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며 “대기업이라면 자기 이익만 추구하지 말고 공공복리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질타했다. 최 사무총장은 또 “대기업 최고경영자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말들”이라며 “도덕성에 의심이 간다”고 덧붙였다.
이승한 회장 발언에 환영할 법한 업계 반응도 되레 차갑기는 마찬가지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상황이 좋지 않아 신중하게 행동하고 있다”며 “이 회장 발언의 도가 지나친 데다 마치 업계 전체적인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처럼 비쳐 우리에게도 불똥이 튈까 염려스럽다”고 전했다.
이처럼 업계에서도 홈플러스에 대한 시각은 곱지 않다. 무엇보다 잦은 말썽과 분쟁을 일으킴으로써 홈플러스의 문제가 마치 대형 유통업체 전체의 문제처럼 비친다는 것이 다른 유통업체들의 가장 큰 불만이다. 한마디로 대형 유통업체 전체 이미지를 훼손시킨다는 것이다. 앞서의 유통업체 관계자는 “홈플러스가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괜히 몸을 낮추게 된다”고 전했다.
한편 이승한 회장의 강경 발언에 대해 홈플러스 측은 속 시원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평소 소신을 피력한 것이며 누군가 해야 할 말을 대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