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분할 665억 원 선고, 노 관장 청구액의 5%에 불과…1조 원대 SK(주) 주식 분할 대상에서 빠져
지난 12월 6일 서울가정법원 가사합의2부(부장판사 김현정)는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이 이혼하고,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현금 665억 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혼인 파탄의 주된 책임이 최 회장에게 있다며 위자료로 1억 원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또 판결 확정 후에도 최 회장이 재산분할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연 5%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연이자로 지급토록 했다. 소송비용은 양측이 합해 각각 부담한다. 이날 법정에는 최 회장과 노 관장 모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최 회장 측 대리인은 참석하지 않았으며, 노 관장 변호인만 선고 시간이 다 되어서 도착했다.
#청구 금액보다 훨씬 적은 재산 분할액, 이유는?
앞서 최태원 회장은 2015년 12월 세계일보를 통해 노소영 관장과의 이혼 의사를 밝혔다. 당시 최 회장은 “성격 차이 때문에 저와 노소영 관장은 10년 넘게 깊은 골을 사이에 두고 지내왔다. 지금은 오랜 시간 별거 중”이라고 말했다. 내연녀와 혼외 자녀의 존재도 처음 알려졌다. 최 회장은 “노 관장과 이혼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이어가던 중에 우연히 마음에 위로가 되는 한 사람을 만났다. 수년 전 여름에 그 사람과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다. 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어린아이와 아이 엄마를 책임지려 한다”고 밝혔다.
이어 2017년 7월 최태원 회장은 법원에 이혼조정을 신청했다. 이혼조정은 법원의 중재에 따라 부부가 협의해 이혼 합의를 끌어내는 절차다. 그러나 2019년 2월 조정이 결렬되며 정식 소송이 시작됐다. 같은 해 12월 노소영 관장은 이혼에 응하겠다며 최 회장을 상대로 반소(맞소송)를 제기했다. 동시에 위자료 3억 원과 최태원 회장이 보유한 SK(주) 주식(1297만 5472주)의 42.29% 등을 분할해 달라고 요구했다. SK 전체 주식수의 약 7.4%에 해당하는 지분으로, 12월 5일 종가 기준 1조 1578만 원에 이른다.
재판부는 이날 최태원 회장이 재산분할로 665억 원가량을 지급하라는 판단을 내렸다. 노 관장이 제기한 청구 금액의 5% 정도에 불과한 액수다. 노 관장의 의지대로 되지 않은 셈이다. 법조계 안팎에서 “노소영 관장이 사실상 100% 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재판에서 쟁점은 최태원 회장의 SK(주) 지분을 재산분할 대상으로 볼지 여부였다. 1998년 최태원 회장은 부친인 고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의 사망으로 최종현 선대회장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 모두가 최태원 회장에게 상속됐다. 노소영 관장과 최태원 회장은 그보다 앞선 1988년 결혼했다. 최태원 회장은 지금의 SK(주)는 최 회장이 물려받은 지분을 토대로 이후 계열사 합병 및 분할을 통해 설립됐다고 주장해왔다.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은 상속받은 재산의 경우 기본적으로 특유재산으로 본다. 특유재산은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으로, 원칙적으로 이혼 시 재산분할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이혼 전문 이은경 CL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부부 일방의 특유재산은 원칙적으로 분할의 대상이 되지 않지만, 특유재산일지라도 다른 일방이 적극적으로 그 특유재산의 유지에 협력하여 그 감소를 방지했거나 그 증식에 협력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분할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판결에선 특유재산을 재산분할 대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70~80% 정도 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소송에서 재판부는 SK(주) 주식을 특유재산으로 인정하면서 재산분할 대상으로는 보지 않았다. 분할 대상이 될 정도로 노 관장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최 회장이 보유한 재산 중 SK(주) 주식 외에 일부 계열사 주식과 부동산, 퇴직금, 예금 등을 분할 대상으로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혼·형사 전문 김신혜 법무법인 한경 변호사는 “노소영 관장이 SK(주) 주식 가치를 상승시키는 데 역할이 미미했다고 본 것 같다. 일부 계열사 주식이 분할 대상으로 포함된 것은 계열사 규모 차이도 있어 보인다. (지주회사인) SK(주)에는 오너의 입김이 강해 노소영 관장 역할이 인정되지 않았다면, 크기가 작은 계열사 가치에는 노 관장이 어느 정도 기여도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혹은 계열사 설립 시기의 차이가 반영됐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과거 삼성가 이혼소송에서도 비슷한 판단이 나왔다. 2016년 임우재 전 삼성전자 고문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상대로 소유 재산의 절반인 1조 2000억 원 분할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부진 사장의 재산은 고 이건희 선대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삼성그룹 주식이 대부분이었다. 2020년 대법원은 이 사장이 임 전 고문에게 141억 원가량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당시에도 이 사장이 보유한 주식이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소영 관장의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SK그룹 성장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노 관장 측이 입증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그간 SK그룹이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노소영 관장과의 결혼 및 노태우 전 대통령의 후광이 작용했다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1992년 노태우 정부는 한국이동통신 민영화를 위한 사전단계로 제2이동통신사업자를 선정했다. 이때 SK그룹(당시 선경그룹)이 포항제철, 코오롱을 제치고 최종 사업자로 선정되며 ‘사돈기업 특혜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SK는 일주일 만에 사업권을 반납했다. 지금의 SK텔레콤은 김영삼 정부 시절 한국이동통신을 민영화할 때 공개입찰로 인수한 회사다.
다만 재판부는 최태원 회장에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른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최 회장이 노 관장을 상대로 냈던 이혼소송은 기각했고, 위자료 1억 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일반적으로는 이혼소송에서 위자료가 5000만 원 정도만 되어도 금액이 많이 책정됐다고 보는 편이다. 노소영 관장이 소송에 불복해 2심이 진행될 여지도 있다. 다만 2심에서 재산분할액이 크게 뒤집히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전해진다. 2심에 돌입하면 최 회장은 당장 노 관장에게 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지만, 위자료 이자가 늘어난다는 부담은 있다.
#최태원 회장, 지배율 하락은 막았다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소송에서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SK의 지배구조 변화다. 현재 SK(주)의 최대주주는 17.50%를 보유한 최 회장이다. 노 관장은 0.01%만 보유하고 있다. 만약 노소영 관장이 요구한대로 최 회장이 보유한 SK(주) 주식 42.29%를 받았다면, 최태원 회장의 SK(주) 지분은 10.09%로 지분율이 줄어든다. 법원은 현금으로 665억 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최 회장이 SK(주)나 계열사 지분을 반드시 처리하지 않아도 된다. 주식 대신 부동산 등을 활용해 현금을 마련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한편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은 1988년 9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미국 시카고대 유학 시절에 선후배 사이로 만나 테니스를 치며 연애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 사이에는 장녀 윤정 씨(1989년생), 차녀 민정 씨(1991년생), 장남 인근 씨(1995년생)가 있다. 최윤정 씨와 최민정 씨는 각각 SK바이오팜와 SK하이닉스에 근무하고 있다. 최인근 씨는 SK E&S 사원이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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