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중시·백화점 계열분리는 삼성, 자수성가·아진차 인수 등은 현대 떠올라…원작자 “미국 재벌 이야기도 한 스푼”
‘재벌집 막내아들’의 인기 요인은 ‘2022년의 재벌 총수 일가 비서 윤현우가 1987년의 재벌가의 막내 진도준으로 회귀해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판타지에 있다. 물론 판타지를 다룬 드라마는 기존에도 많았지만 ‘재벌집 막내아들’은 현실을 기반으로 한 판타지라는 점이 강점이다. 극 중 진도준의 힘은 ‘1987년부터 2022년까지의 일들을 미리 알고 있다’에서 나오는데, 시청자들 역시 이 부분을 알고 있어 진도준에 대한 감정이입이 쉽다. 그럼에도 시청자 입장에서 유독 안 풀리는 부분이 하나 있다. 순양그룹은 과연 현실 속 어느 재벌일까.
‘재벌집 막내아들’의 중심인 순양그룹은 기본적으로 실제로 존재하는 대기업을 기반으로 창작된 것이다. 그런데 어떤 측면에선 삼성그룹이 떠오르지만 조금 각도를 달리하면 현대그룹이 떠오른다. 분명 현실 속 대기업을 모델로 했지만 여러 회사를 뒤섞어 탄생시킨 상상 속 대기업이 바로 순양그룹이다.
기본적으로 순양그룹은 현대와 삼성의 특징을 골고루 섞어 놓았다. 진양철 순양그룹 회장(이성민 분)이 반도체를 중시하고 만년 꼴찌인 순양자동차에 애착을 보이는 부분은 삼성그룹을 떠올리게 만든다. 계열분리된 순양백화점 또한 신세계백화점을 연상시킨다.
반면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만석꾼의 집안에서 꽤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과 달리 진양철 회장은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낸 뒤 자수성가한 캐릭터다. 오히려 어린 시절부터 자수성가하는 과정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에 더 가까워 보인다.
드라마의 주요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보면 순양그룹은 삼성그룹보다 현대그룹에 더 가깝다. 우선 순양그룹은 아진자동차 인수에 성공하는데 이 과정은 현대자동차의 기아자동차 인수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순양그룹은 한도제철 인수에 성공하는데 한도제철은 IMF 외환위기의 시발점이 된 한보철강 부도를 연상케 한다. 순양그룹은 진도준(송중기 분)의 작업 탓에 과도한 금액으로 한도제철을 인수한 뒤 IMF 외환위기를 맞아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한보철강 부도와 IMF 외환위기를 기반으로 한 설정으로 보이는데 현실 속 한보철강은 위탁 운영과 법정관리를 거쳐 오늘날의 현대제철이 된다. 이번에도 현대그룹이다.
원작 웹소설을 집필한 산경 작가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순양은 전자, 대현(드라마에선 대영으로 바뀜)은 자동차가 주력이니 삼성과 현대를 모델로 한 건 맞다”며 “영화 ‘올 더 머니’로도 만들어진 미국 석유사업가 폴 게티 손자 유괴 사건도 진양철 캐릭터를 만드는 데 영감을 줬다”고 밝혔다.
이처럼 드라마의 중심인 순양그룹은 삼성그룹과 현대그룹 등 실제 대기업을 혼재해 새롭게 만들어 낸 회사지만 드라마의 에피소드는 실제로 벌어진 일들을 기반으로 한다. 드라마의 주된 흐름이 2022년의 윤현우가 1987년의 어린 진도준으로 회귀해서 벌어지는 일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2022년까지 한국 사회와 순양그룹에서 벌어진 일들을 모두 알고 있는 진도준의 행보가 드라마에 재미를 더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진도준이 알고 있는 것들을 시청자들도 함께 알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실제로 1987년부터 현재까지 한국 사회와 전세계에서 벌어진 일들을 기반으로 해야 시청자들의 몰입도가 높아진다는 의미다.
앞서 언급한 아진자동자와 한도제철 인수전, IMF 등은 물론이고 진성준(김남희 분)과 진도준이 맞붙은 ‘새 서울타운 개발 사업권’은 서울 마포구 상암지구에 월드컵 주경기장 건설이 확정된 1998년 발표된 ‘새 서울타운 조성’ 계획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또한 진도준의 노림수에 빠져 진화영 순양백화점 대표가 ‘뉴데이터 테크놀로지’에 무려 1400억 원을 투자한다는 설정은 닷컴버블 당시의 새롬기술에서 가져왔다. 드라마 속 뉴데이터테크놀로지는 공모가 1500원으로 시작해 6개월 만에 30만 원까지 올랐지만 1년 만에 고점 대비 98% 추락한 주식으로 나온다. 실제로 새롬기술은 1999년 공모가 2300원으로 코스닥에 상장해 2000년 2월 28만 원을 돌파하지만 그해 연말 5000원대까지 추락했다.
김은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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