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은 최근 보유 지분 매각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10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산은은 케이조선, KG스틸, 금호타이어, 환영철강공업, 서진켐 등의 지분을 매각할 계획이다. 강석훈 산은 회장도 지난 9월 대우조선해양 매각 계획을 발표하면서 “대주주의 책임 있는 역할, 이해당사자의 고통 분담, 지속 가능한 경영정상화 방안이라는 기존 산은 구조조정 기조에 더해 신속한 매각 추진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산은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지분 매각에 나서는 것으로 분석한다. 산은은 2020년부터 자금 시장 안정화를 위해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최근 들어 기간산업 등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산금채(산업금융채권) 발행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레고랜드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사태로 경색된 회사채 수요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산은으로서는 산금채를 발행하지 못하면 자금 조달이 쉽지 않고, 자금이 부족하면 회사채나 CP 매입에도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산은의 재무 건전성 악화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산은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총자본비율은 지난해 말 15.05%에서 올해 9월 말 13.08%로 1.97% 포인트(p) 하락했다. 같은 기간 국내 은행 전체 총자본비율은 15.53%에서 14.84%로 0.69%p 줄어들었다. 산은의 총자본비율 하락폭이 다른 은행보다 큰 것이다. 총자본비율은 은행의 자기자본을 위험자산으로 나눈 것으로 은행 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다.
산은은 지난 11월 21일 보유 중인 케이조선 주식 104만 3000주(지분율 2.47%) 매각 공고를 내면서 본격적인 지분 매각 움직임에 들어갔다. 매각 예정 가격은 주당 2500원으로 총 26억 7500만 원이었다. 산은은 경쟁 입찰 방식을 적용했다. 입찰자는 매각 예정 가격 이상의 가격을 제시해야 하고, 이 중에서 최고가를 제시한 곳이 최종 낙찰자로 결정되는 방식이다. 동가의 최고가 입찰자가 두 곳 이상인 경우에는 추첨을 통해 낙찰자를 결정한다.
산은은 이어 11월 28일 전자제품 업체 우전 주식 59만 1118주(지분율 2.39%) 매각 공고도 발표했다. 매각 예정 가격은 주당 1098원, 총 6억 4095만 원이었다. 케이조선과 마찬가지로 경쟁 입찰 방식을 적용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산은은 케이조선과 우전 지분 매각에 모두 실패했다. 지분 인수 희망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산은은 지난 12월 1일 케이조선 주식 매각 재공고까지 냈지만 이때도 인수 희망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산은은 아직 케이조선 주식 매각 재재공고나 우전 주식 매각 재공고는 내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산은 관계자는 “케이조선 지분 매각은 유찰돼서 재공고한 것이 맞고, 추가 입찰자도 없는 상태”라며 “우전 역시 입찰자가 없었다”라고 밝혔다.
주식 매각이 실패한 이유는 최근 투자 심리가 위축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2%대의 지분율도 매력적이지 않다. 특히 우전은 올해 1~3분기 9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실적도 좋지 않다. 케이조선의 경우 올해 흑자를 거두고는 있지만 조선업계의 전반적인 전망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이봉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해양플랜트는 기회요인이 되겠지만 경기침체로 인한 발주 둔화와 선가 하락은 위기 요인이 될 것”이라며 “실적면에서도 건조선가가 올라가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인건비 부담은 위기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증권가에서는 당분간 기업들의 투자 심리 위축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따라 산은이 추진 중인 지분 매각 작업도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경기 둔화 이슈가 지속됨에 따라 전반적인 투자 심리 위축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최근 유입되던 외국인 자금이 경기 침체 이슈로 인해 이탈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산은이 지분 매각 계획을 쉽사리 철회하기도 어렵다. 기획재정부(기재부)는 지난 11월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불요불급한 자산을 매각하고, 핵심 업무와 무관하거나 부실한 출자회사, 과도한 청사·사무실 등을 정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산은은 지분 매각이 기재부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체적인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산은이 낮은 가격에 지분을 매각하면 공적자금 회수를 하지 못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산은은 지난해 중흥건설에 대우건설을 매각할 때도 헐값 매각이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참여연대와 금융정의연대 등 시민단체는 “입찰완료 후 입찰자에게 가격정정을 허용함으로써 중흥건설에 2조 3000억 원에서 2조 1000억 원으로 가격 조정 기회를 줬고, 국가에 2000억 원의 손실을 끼쳤다”며 “관리와 단속을 제대로 하지 못해 약 2000억 원의 국고 손실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배임의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동걸 당시 산은 회장은 2021년 국정감사에서 “적법한 절차 내에서 최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진행됐다고 본다”고 해명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자금 시장이 얼어붙은 만큼 산은의 지분 매각 시기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회비용 등을 감안하면 섣부른 지분 매각이 더 큰 손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성장 가능성이 있는 주식을 매각하면 장기적으로 국민에게 손해가 돌아갈 수 있다”며 “당장 매각하는 것보다 보유해서 얻을 수 있는 미래가치가 훨씬 큰 자산마저 팔아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공공기관 자산 매각 계획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조 실탄 장전 중" 한화그룹의 대우조선 인수 어디까지 왔나
한화그룹은 현재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대우조선의 최대주주는 지분 55.7%를 보유한 KDB산업은행(산은)이다. 한화그룹은 유상증자를 통해 대우조선 최대주주에 오를 계획이다. 유상증자가 진행돼도 산은의 대우조선 지분율만 낮아질 뿐, 보유 주식은 그대로 유지된다.
한화그룹은 지난 9월 대우조선과 2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대우조선 지분 49.3%를 확보하기 위한 조건부 투자합의서를 체결했다. 또 산은과는 대우조선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협력하겠다는 내용의 기본합의서에 서명했다.
한화그룹의 대우조선 인수 작업은 현재까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변수로 지목됐던 전국금속노동조합 대우조선지회(대우조선 노조)와도 원만한 협상을 이끌어낸 것으로 전해진다. 대우조선 노조 측은 “(노조의 요구안에 대해) 본계약 체결 후 실무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하자는 한화 측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대우조선 노조가 이전 대우조선 인수 희망자였던 현대중공업을 연일 비판했던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한화그룹의 마지막 숙제는 2조 원에 달하는 자금 조달이다. 한화그룹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1조 원 △한화시스템 5000억 원 △한화임팩트파트너스 4000억 원 △한화컨버전스 300억 원 △한화에너지싱가포르 300억 원 △한화에너지재팬 400억 원을 각각 분담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자금 시장이 얼어붙어 한화그룹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한화그룹 관계자는 “인수에 참여하는 회사들의 자체 현금창출 능력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자금 조달에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산은 입장에서는 공적자금 회수라는 숙제가 남아있다. 다만 공공기관인 산은이 대우조선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한화그룹의 투자를 통해 대우조선 경영정상화를 이끌어내고, 이에 따라 대우조선 기업 가치가 상승할 때 산은이 대우조선 지분을 매각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강석훈 산은 회장은 지난 9월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대우조선이 정상 여신으로 분류가 되면 1조 6000억 원이 이익으로 환원이 되고, 주식 가격이 올라가면 투입 금액의 상당 부분을 회수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