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하락 속 가계 자금력 한계 봉착…미분양 여파 건설·증권사·저축은행 등 도미노 타격
#가계 자금력 ‘한계’ 봉착…가중되는 집값 하락 압력
한국은행의 9월 '금융안정 상황(2022년 9월)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주택가격 상승률은 코로나19 이전(2020년 1월) 대비 25.5%(2022년 5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가운데 15위다. 소득 대비 주택가격(PIR)은 비교대상 33개국 중 3위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OECD 36개국 중 7위다.
가계부문의 원리금상환부담(DSR) 수준은 2021년 말 현재 비교 가능 대상 17개국(BIS 통계 기준) 중 5위로 중상위권 수준이었으나, 코로나19 이후 2년간 증가폭은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즉 집을 사는 데 대출을 많이 사용했다는 뜻이다. 우리 가계의 변동금리 대출 비중은 75%를 넘는다. 금리가 오르면 원리금 상환부담이 커진다. 이자비용이 늘어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상승하면 대출금 일부를 갚아야 할 수도 있다.
이자부담은 집을 살 수 있는 자금여력을 제한한다. 집을 내놔도 원하는 가격에 팔리기 어렵다는 뜻이다. 팔기 싫어도 팔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전세다. 전세보증금은 전세대출이 이뤄진 경우에만 정부의 가계부채 통계에 잡힌다. 전세보증금 규모만 800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2020년 임대료 상승을 제한하는 임대차 3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이후 전세 가격이 급등했다. 인상폭을 제한하기 전에 충분히 올리려는 움직임 때문이다. 2년이 경과한 올해 4분기부터 갱신기간이 본격적으로 돌아오고 있다. 금리가 오르면 전세보증금은 하락한다. 집주인이 보증금 일부를 돌려줘야 한다.
집 주인이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면 임차인은 새집을 살 수도, 새로 전세를 구할 수도 없다. 임대인이 돈을 구하지 못하면 임차인 입장에서는 집을 경매에 넘겨 보증금을 회수해야 한다. 최근 집값이 하락하며 경매에 내놔도 제대로 팔리지 않고 있다. 팔리더라도 헐값이 대부분이다.
부동산경매 전문업체 지지옥션이 6일 발표한 ‘11월 경매동향보고서’를 보면 경매가 진행된 아파트 1904건 중 624건이 낙찰됐다. 낙찰률은 32.8%로, 전달대비 3.7%포인트(p) 하락했다.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의 28.1% 이후 최저치다. 낙찰가율도 78.6%로 전월보다 5%p나 떨어졌다.
#강남 재건축도 불안해졌다…커지는 미분양 공포
‘서울’ ‘신축’ ‘아파트’는 부동산시장의 ‘불패 3요소’로 꼽힌다. 올해 초 분양한 강북구 ‘북서울자이 폴라리스’(34.4 대 1), ‘한화포레나 미아’(7.3 대 1), 지난 11월 청약이 이뤄진 강동구 둔촌동 ‘더샵파크솔레이유’도 1순위 경쟁률(15.6 대 1)은 꽤 높았다. 초대형 재건축인 올림픽파크 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까지 성공적으로 분양된다면 향후 부동산 시장 회복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컸다.
지난 12월 6일 진행된 올림픽파크 포레온 1순위 청약에는 3695가구 모집에 1만 3647건의 청약통장이 접수됐다. 평균 경쟁률 3.7 대 1이다. 이튿날인 7일 1순위 기타지역(서울 2년 미만 거주자 및 수도권 거주자) 청약에서도 3731명이 추가 신청하는 데에 그치며 평균 경쟁률은 4.7 대 1를 기록했다. 모집가구수의 5배수까지 모집(경쟁률 6 대 1 이상)해야 하는 예비정원 미달로 청약 마감에 실패하면서 2순위 청약까지 넘어가게 됐다. 사실상 흥행실패다. 원자재 가격 상승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난으로 분양가가 크게 높아지면서 수요를 위축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 성북구 장위자이레디언트도 12월 7일 진행한 1순위 청약도 평균 경쟁률은 3.1 대 1에 불과했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 아파트는 최초 2년간 의무거주해야 하고 8년간 전매가 불가능하다. 또 10년간 다른 아파트 청약 당첨도 제한된다. 일단 청약을 해도 계약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면 미분양 될 수 있다.
수도권 사정은 서울보다 더 어렵다. 파주 운정신도시 'A2블록 호반써밋'은 지난 2일부터 6일까지 1031가구에 대한 청약을 2순위까지 진행했으나 269명만 청약을 해 전 주택형이 미달됐다.
지방은 ‘지리멸렬’이다. 충남내포신도시 '대광로제비앙'도 601가구를 모집했으나 263명이 신청하는 데 그쳤다. 전남 함평군 '함평 엘리체 시그니처'는 지난 5일부터 이틀간 특별공급과 1순위 청약 신청을 받았지만 단 1건도 접수되지 않았다. 광주 북구에 지어지는 '산이고운 신용파크' 역시 227가구 1순위 청약에 71건만 접수돼 모든 주택형에서 미달이 발생했다. 전북 군산시의 '군산 신역세권 예다음'도 563가구에 대해 1순위 청약 신청을 받았지만, 접수 건수는 101건에 불과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10월 주택 통계'를 보면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총 4만 7217가구다. 전월(4만 1604가구) 대비 13.5%(5613가구) 증가한 수치로, 2019년 12월(4만 7797가구) 이후 최대치다. 수도권은 7612가구로 전월보다 2.6%(201가구) 감소했지만, 지방이 3만 9605가구로 전월보다 17.2%(5814가구) 증가했다.
#건설사 줄도산, 금융 부실 거쳐 위기로 번질 수도
한국신용평가는 6월 말 기준 만기 6개월(올해 12월 말) 안에 만기가 도래하는 사업장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 여부를 조사했다. 제때 상환을 하겠다는 사업장은 전체의 26%에 그쳤다. 49%가 만기를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25%는 미정이라고 응답했다. 착공 이후 공사와 분양 등에 투입되는 자금을 조달하는 ‘본 PF’가 승인되기 전까지 필요한 초단기 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인 ‘브릿지론’의 경우 만기 내 상환 비율은 24%에 불과했다. 38%는 만기 연장, 38%는 미정이었다.
상환이나 만기 연장이 제때 되지 못하면 보증을 선 건설사나 금융회사가 자금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분양이 되면 다행이지만, 미분양이 나거나 사업이 중단되면 그동안 투입된 자금을 회수하지 못한다. 건설사는 부동산PF 보증이나 신용공여를 우발채무로 분류했다. 재무제표에 반영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감당하기 쉽지 않다.
공문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건설사들은 주택시장 호황기 우발부채를 활용한 차입 확대로 이익을 극대화했다”며 “주택경기가 둔화되고 분양 환경이 악화되면 우발부채 부담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건설사 부도는 이들에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의 부실부담을 높이고 금융시장 전반의 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부동산 외에 다른 업종 기업들의 자금조달까지 어려워질 가능성을 높인다.
한국은행은 '11월 금융·경제이슈 분석' 보고서에서 “향후 부동산 경기가 경착륙 할 경우 PF 브릿지론 등 취약부문을 중심으로 부실화 우려가 증대된다”면서 “연말까지 만기 도래하는 증권사 CP(15.7조 원)와 PF-ABCP(17.2조 원) 등의 원활한 차환 여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한은은 경기 둔화 우려에 그간 지속된 대출 증가세, 높아진 자금 조달 비용 등을 고려하면 금융시장 불안으로 업황이 부진한 일부 대기업의 상환 부담이 가중되면서 이들의 재무 건전성이 약화할 가능성도 경계했다.
최열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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