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죽었지 손 벌릴 순 없다 헐~
지난 2월 20일 일본 수도권 사이타마 시내 작은 아파트. 안방에 나란히 누운 60대 부부와 작은 방에 따로 누운 30대 아들이 뼈만 앙상한 미라 상태로 발견됐다. 일가족 세 명은 두 달 전에 굶어 죽은 것으로 드러났다. 집 안에는 먹을 것은 하나도 없고 1엔짜리 동전만 나뒹굴었다.
죽은 이들의 머리맡에는 수돗물이 담긴 페트병이 놓여 있었다. 마지막까지 물만 마시며 연명한 것으로 보인다. 일가족은 반년 전부터 월세를 밀렸고 공공요금도 납부하지 못해 전기와 가스 끊긴 지 오래였다. 아들과 아버지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무자였는데 둘 다 허리를 다쳐 일 년 전부터 쉬고 있었다.
한 이웃은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자가 나를 찾아와 돈을 꿔달라고 했다”며 “평소에 안면이 없었기 때문에 민생위원(통반장)한테 같이 가자고 권유하자 괜찮다며 돌아갔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 홋카이도 삿포로 시내 한 아파트에서도 동사한 40대 자매가 발견됐다. 지체장애가 있는 여동생과 그를 돌보던 언니가 굶다가 저체온증으로 죽은 것이다. 그런데 동생의 휴대전화 발신기록에는 ‘111’이란 번호가 남아 있었다. 언니가 죽자 동생이 어떻게든 외부에 도움을 청하려고 구급전화 번호를 누른 것이다. 그렇지만 4세 아이 수준 지능을 가진 동생은 110번인 일본의 구급전화 번호를 잘못 누른 것으로 보인다.
이 자매는 매달 나오는 동생의 장애인 연금만으로 살았다. 하지만 월세를 빼면 돈이 거의 남지 않았다. <요미우리신문>에 의하면, 언니가 몇 차례 시 복지과에 생활보호 신청 상담을 하러 갔지만 그때마다 자신의 처지가 알려질까봐 그냥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이웃들이 불쌍히 여기는 게 싫다는 이유였다. 언니는 죽기 전까지 동생을 돌보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고 한다.
이런 소식을 접한 미국의 블로거들은 “현대 일본 사회의 병폐”라며 놀라움을 표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부모가 아이를 학대해 굶겨 죽이는 사건은 발생해도 어른이나 일가족이 굶어죽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행정당국에 도움 요청을 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블로거들은 “일본인 고유의 수치의 문화 때문”이라 꼬집고 있다.
‘수치의 문화’란 미국의 저명한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일본문화에 대해 연구해 쓴 책 <국화와 칼>에서 나온 개념이다. 예를 들면 기독교 문명인 서양이 원죄를 윤리기준으로 삼는 데 비해 일본은 체면을 도덕의 잣대로 삼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 블로거가 수치의 문화의 비근한 예로 들고 있는 게 1996년 일본에서 출간돼 반향을 일으킨 책 <기아 일기>다. 이 책은 장애를 가진 40대 아들과 같이 굶어 죽은 70대 어머니가 죽기 20여 일 전까지 쓴 일기를 그대로 출판한 것이다. 일기에서 어머니는 “다음 달 생활비가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라면서도 “매달 월세나 전기, 가스요금을 낼 수 있어 감사하다”라고 썼다. 미국의 블로거는 “음식조차 살 수 없는데도 꼬박꼬박 월세와 공공요금을 냈다는 사실 자체가 난센스”라고 말했다.
2011년 1월 오사카에서 굶어 죽은 60대 자매는 당국이 나서서 시청 복지과에서 꼭 상담을 받으라고 강하게 권유했으나 끝내 거절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지역 내 유지의 딸로 자라났는데 부모가 죽은 후 차츰 가난해졌다고 한다. 이웃에서 집안이 몰락했다는 사실을 알까봐 생활보호를 신청하지 않았고 결국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산케이신문>은 이들 자매가 “살기보다 명예를 택했다”고 전했다.
특히 기아로 인한 사망자 중 50대 남성이 유달리 비중이 높은 것도 ‘수치의 문화’와 관련이 깊다. 지난 10년간 50대 남성 사망자 수는 300명 정도로 동년배 여성의 4.5배에 달한다. 현실적으로 재취업이 힘든 50대 남성들이 혼자 살다가 집에서 굶어 죽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는 “50대 남성은 ‘남자는 자립해야 한다’는 사회규범을 상대적으로 강하게 의식한다. 따라서 당국으로부터 도움 받기를 거부한다”고 지적했다.
생활보호 신청 자체를 금기시하는 일본 사회 전체 분위기도 있다. 생활보호를 받으면 ‘인간으로서 최후에 남은 자존심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인터넷 매체 <매거진9>에서 일본사회의 빈곤 문제를 다루는 작가 아마미야 카린은 생활보호 신청을 하지 않는 이유로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는 분위기를 들고 있다.
한편 지나치게 개인정보 보호를 내세우는 문화도 기아 사망 사건의 배경으로 거론되고 있다. 전기나 가스요금이 밀려 끊겼을 때 관련 정보가 지자체에 거의 통보되지 않는다. 기아로 인한 사망이 일어나기 전에 행정당국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셈이다. 일본 후생성에서는 가정의 전기나 가스 요금 연체가 계속 됐을 때 해당 회사가 지자체에 전달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전기회사나 가스회사 중 4~7%만 지자체에 요금 연체 사실을 전달하는 실정이다.
업체 측은 인력 부족과 개인 프라이버시 보호를 들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집주소나 전화를 가르쳐 줬다가 나중에 고객이 “개인정보가 보호 안 됐다”고 항의하면 골치만 아프다는 이유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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