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MZ 대표론’ 한동훈 차출설, 논란 커지자 윤핵관 진화…‘미래형’ 아닌 ‘관리형’ 선호 기류
#주호영이 쏘아올린 한동훈 등판론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평소 말을 아끼는 편이고, 직설적 언사를 좀처럼 하지 않는다. 불심이 깊어 행사장에서는 물론이고 기자들을 만날 때도 불경에 나오는 말이나 고사를 자주 인용하며 변화구를 주로 쓴다. 이에 시쳇말로 고구마에 가까운 정치인으로 평가됐다.
그랬던 주 원내대표가 최근 사이다로 돌변, 돌직구를 던지고 있다. 주 원내대표는 12월 3일 대구 수성대학교에서 열린 대구·경북 언론인 모임 ‘아시아포럼21’ 초청토론회에서 현재 거론되는 당권 주자들의 이름을 나열한 뒤 “다들 (당원들) 성에 차지 않는다”며 ‘기존 후보 불가론’을 들고 나왔다.
이어 차기 당대표의 조건까지 밝혔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이외에 최고위원 전원이 수도권 출신”이라며 “국회 지역구 의석의 절반이 수도권인 만큼 수도권에서 대처가 되는 대표여야 한다”고 첫째 조건으로 ‘수도권 후보론’을 내세웠다. 이어 “MZ세대에게 인기 있는 대표여야 한다”며 ‘MZ세대에 먹히는 후보론’도 제시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권 도전에 나선 황교안 전 대표, 김기현 윤상현 조경태 의원 등의 이름을 직접 거명한 뒤 “총선에서 이길 수 있는 확신있는 사람이 안 보인다는 게 당원들의 고민”이라고 직격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발언을 흘려듣지 않고 있다. 주 원내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을 지난 11월말 관저에서 잇따라 만난 이후 이 말을 꺼냈기 때문. 평소 직설적인 메시지를 던지지 않는 주 원내대표 성격까지 감안하면 그는 스피커일 뿐, 마이크는 서울 용산 쪽에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이어졌다.
결국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수도권과 MZ세대에 명함을 내밀 수 있는 당권 주자, 게다가 목소리가 용산에서 나왔다면 그쪽과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적임자는 한동훈 장관뿐이라는 것이다.
‘한동훈 차출론’이 들불처럼 번져나가자 이번에는 불길을 진화하려는 세력이 나타났다. ‘윤핵관’들이 앞장섰고 한 장관 본인도 적극 해명에 들어가면서 ‘한동훈 불가론’은 일사불란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장제원 의원은 12월 7일 자신이 주도했던 의원 모임 ‘국민공감’ 출범식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차기 당권주자와 관련한 당 지도부의 발언들을 겨냥해 “옳지 않다”고 직격했다. 이어 “‘성에 차지 않는다’는 표현에 윤심이 담겼다고 하는데, 대통령께서는 우리 전당대회 후보들을 두고 성에 차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권성동 의원 역시 “(한동훈 차출론은) 아주 극히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보고 있다”며 한 장관의 당대표 도전은 현실성이 없다고 진단했다.
한동훈 장관도 12월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참석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차기 여당 대표 차출설’에 대해 “중요한 할 일이 많기에 장관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분명히, 단호하게 말씀드린다”고 거리를 뒀다. 또한 정계에서 당대표 제안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도 “저에게 그런 얘기를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는 “아닌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겠느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논란을 촉발한 주 원내대표부터 이에 반발하는 윤핵관의 목소리까지, 자의적이고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자신이 들은 메시지를 나름대로 반영한 의견 종합적 발언이라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 의원의 해석이다.
“여당 전당대회는 잔치이고 축제다. 그런데 축제를 이끌어나가는 사람들의 지명도가 떨어져 흥행이 안 되니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주 원내대표가 듣고 발언을 한 것이다. 그의 발언 연장선이 한동훈 장관으로 향했다. 한 장관이 등판하면 순기능도 있지만 역효과도 크다. 이에 ‘지금은 아니다’라는 반론이 제기돼 이 정도에서 불을 꺼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윤핵관에다 한 장관까지 직접 입을 열어 노(No)라고 한 것이다.”
국민의힘 전직 의원은 최근의 충돌에 대해 “정치생활을 오래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치 전반을 잘 안다는 자신감 속에서 당대표에다 원내대표 인선, 공천까지 개입하려 했다가 큰 낭패를 봤다”며 “이 과정을 목격한 현 정부 대통령실은 당무와의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이에 따라 적절한 상황관리를 할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 여당 구성원들은 여전히 ‘윤심’이라는 단일 경로에 의존하려 해 전당대회 국면 내내 혼란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래형보단 관리형 선호?
‘윤심’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특정인을 밀지 않더라도, 윤심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후보가 전당대회에서 웃을 것이라는 데는 당내 큰 이견이 없다. 이른바 ‘느슨한’ 윤심 후보론이다. 특히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상승, 대통령실의 국정 장악 자신감이 커지는 가운데 용산 대통령실과 강하게 각을 세우는 후보만 아니라면 굳이 단수 후보를 밀 이유가 없다는 분위기가 여권 내부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한동훈 장관이 급속도로 떴다가 가라앉는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윤핵관을 비롯한 당 주류에서는 차기 당대표로 대선가도를 향해 뛰는 미래 권력형이 아닌 관리형 주자를 분명히 선호하는 모습이다. 2024년 총선 공천 권한을 갖는 당대표가 미래 대권주자로서 급부상한다면, 권력의 조기 전이 현상이 발생해 윤 대통령의 레임덕까지 일찍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미래 권력으로 인식되는 유승민 나경원 전 의원에다 안철수 윤상현 의원을 향해서는 당 주류의 집중 견제구가 이미 쏟아지고 있다. 반면 관리형 주자로서 김기현 의원과 윤핵관 권성동 의원이 유력하게 꼽힌다. 김기현 의원은 장제원 의원과 친하다는 얘기가 나돌면서 김·장 연대설이 제기된 바 있다. 정치권에서는 장 의원이 최근 다시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는 점을 김 의원의 위상 상승과 연결 짓기도 한다.
특히 윤 대통령이 김 의원과 11월 30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비공개 만찬 회동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기현 부상론’은 더욱 고개를 들었다. 4선 중진인 김 의원은 윤 대통령과 서울대 법대 선후배 사이로, 대선 기간 원내대표와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지내 윤 대통령과는 거리가 멀지 않은 사이다.
원조 윤핵관 권성동 의원이 김기현 의원보다는 세력 규합이 더 쉬울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김 의원보다는 권 의원이 인지도 면에서 앞선다는 평가가 많고, 당원 비율이 높은 대구·경북(TK)의 당권 주자가 현재 없는 상황이라 권 의원이 TK와 손을 잡는다면 의외로 쉬운 승부를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시한폭탄 룰 개정은 어떻게
주호영 원내대표 발언처럼 현재 뛰고 있는 당권주자 가운데 당원들의 성에 차는 후보가 정말 없다면 전당대회는 내년 봄 이후로 밀린다. 비상대책위 임기 종료(내년 3월 12일) 전인 내년 3월 초쯤 전당대회가 개최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당대회 시기가 이쯤으로 정해지면 현재 장관직을 수행하는 정치인 출신 유력 당권 후보들(권영세 원희룡)의 출마는 봉쇄된다. 한동훈 장관의 등판론 역시 ‘실현되기 어려운 일’로 조기에 정리돼가는 국면이라 현재로서는 기존 주자들만 등판하는 전당대회가 치러질 것이 확실시된다.
이렇듯 ‘언제쯤’은 쉽게 예측되는 분위기지만 ‘어떻게’는 좀처럼 윤곽을 드러나지 않고 있다. 특히 윤심이 거부감을 나타낼 가능성이 큰 ‘미래형’ 권력 후보에 대한 견제구로 기존 경선 규칙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당 주류인 친윤계를 중심으로 현재 당헌상 ‘7 대 3’으로 규정된 당심(당원 투표)과 민심(일반국민 여론조사) 비율을 ‘9 대 1’ 또는 ‘10 대 0’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
당원 투표 비율을 높이면 윤심을 앞세운 친윤계 후보의 당선이 유리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일반론이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40%대를 넘기고 있는 것도 당헌 개정 목소리를 더욱 키우는 데 힘을 보탠다. 기다렸다는 듯 관리형 주자로 불리는 김기현 권성동 의원이 당헌 개정에 찬성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반면 안철수 윤상현 의원과 유승민 나경원 전 의원 등은 “룰 변경은 안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일반국민 상대 여러 여론조사에서 차기 당권주자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유승민 전 의원은 12월 7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최근 당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룰 개정 움직임을 두고 “삼류 코미디” “축구 골대를 옮기는 것”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여권 내부에서는 당원 투표 비율을 높이는 룰 개정이 ‘특정인 챙기기’라는 욕만 잔뜩 먹고 실제 기대효과는 없을 것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체육관 전당대회가 아닌 당원 모바일 투표가 일반화된 이후 당심과 일반 여론조사가 동조화되는 경향이 커져, 당심 상향 조치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전 대표가 바람을 일으켰을 당시에도 이 전 대표가 당심에서는 나경원 전 의원에 밀리기는 했지만, 투표 막판에는 당심의 상당 부분이 이 전 대표에게로 쏠려갔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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