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소의 소년 직공으로 일하며 공부했던 선생님은 스스로를 좌파라고 할 정도로 노동자를 사랑했다. 공장에도 노동조합이 있었지만 모두 사장을 ‘선생님’이라고 하면서 존경했다. 어느 날 선생님이 내게 전화를 걸어 분노한 어조로 말했다.
“어느 날 상급 노조라고 하면서 모르는 놈이 공장에 나타나더니 단번에 욕을 하면서 나보고 노동자들을 착취했다고 행패를 부리는 거야. 순간 내가 평생 살아온 삶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어. 사업을 그만둬야 할 것 같아.”
그들은 노동운동가가 아니라 폭력배이고 업무를 방해한 범죄인이었다. 변호사인 나는 피해자인 선생님을 대리해서 범죄인인 그들을 고소했다. 시간이 지나가도 담당 형사가 조서 한 장 받지 않았다. 노동운동이라는 가면을 쓴 범죄가 법치를 이기는 장면이었다.
내가 원고의 대리를 맡았던 어떤 법정에서였다. 나는 땅의 소유주를 대리해서 그곳에 불법적으로 집을 짓고 살던 사람들에게 그 땅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하는 날 그들이 ‘생존권 보장’이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몰려와 시위를 했다. 그들의 대표가 재판장 앞에 나와 말했다.
“당신이 적용하려는 법은 가진 자들만을 위한 법이지 우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법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재판을 거부합니다.”
재판장은 조용히 분노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말이 없었다. 재판장은 내게 변론을 하라고 명령했다.
“이 사회는 개인의 소유권이 인정되는 민주주의 사회입니다. 남의 땅에 불법으로 집을 짓고 공짜로 살아왔다면 사용료를 내고 그 땅을 소유자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게 법치입니다. 당신들의 법은 무슨 법입니까? ‘떼법’입니까?”
그들은 나를 때려죽일 듯이 보고 있었다. ‘떼법’에 밀린 지 오래 된 세상이었다.
광우병 시위가 한창일 때였다. 군중들이 광장을 점령하고 가로수를 뽑아 불을 때고 거의 폭동에 가까워진 순간도 있었다. 장관들이 도망가고 대통령이 청와대 뒷산으로 몸을 숨겼다. 광장에 나가 보았다. 눈에 독이 번들거리는 사람들이 진을 친 광장에는 이미 법은 없었다. 백만 명만 모으면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속에서 나는 이 나라에는 또 다른 정부와 법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박헌영 동지를 존경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골목골목에 붉은 깃발이 휘날리면 좋겠다는 사람도 봤다. 광우병 사태 때 나는 소고기 협상 대표를 맡았던 친구를 대리해서 그를 명예훼손한 선동가들을 고소했다. 담당검사가 나를 부르더니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이념의 좌우 어느 편도 들지 않으렵니다.”
내가 바로 되물었다.
“검사는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닙니까? 헌법의 기본이념이 뭔가요? 자유민주주의 아닌가요? 그리고 저는 형법에 위반된 점에 대해 법과 상식에 따라 판단해 달라고 하는 거 아닌가요?”
그가 얼굴이 붉어지면서 죄송하다고 내게 사과했다. 분노한 군중이 정의고 법이고 신적 권위를 가진 사회다.
노동계의 지도자들이 정치투쟁을 결정하고 총 파업을 하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목표는 현직 대통령의 퇴진인 것 같다. 선거에 의해 합법적으로 성립한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게 과연 어떤 것일까. 밑에 있는 젊은 조합원들은 성실하게 일하고 싶지 않을까. 주유소에 기름이 없고 건설 현장이 정지되고 항구가 마비되는 위험에 민심이 흔들리고 있다.
비노조인 노동자들은 일하고 싶어도 노조의 폭력과 방해를 두려워하고 있다. 경찰이 그들이 일하도록 지켜줘야 하는 게 법치인데 그렇게 하지를 못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장관이 헌법이 ‘떼법’을 이기게 하겠다고 했다. 검사 출신 대통령이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할지 정해졌다. 더 이상 법치의 방파제가 허물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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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