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자 고용한 중국 기업에 외주 방식 “2017년 이전엔 북한에 생산공장”…쌍방울 “당시 정보 취합 어려워”
중국 길림성 동쪽 끝에 위치한 훈춘은 동쪽에 러시아, 남쪽으로 북한을 접경하고 있는 도시다. 곳곳에 러시아어, 중국어, 한글 간판이 눈에 띄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간이기도 하다(관련기사 [단독] 대규모 북한 노동자들 ‘북·중·러 삼각지대’에 발묶인 내막). 이곳엔 ‘길림 트라이 방직 유한공사(길림 트라이)’가 운영하는 공장이 있다. 길림 트라이는 쌍방울이 중국 내에 두고 있는 국외 계열사 중 하나다. 2015년 길림 트라이는 매출액 447억 원을 기록하며 ‘연변 30강’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2022년 국내 정치권 최대 이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다. 쌍방울을 둘러싼 불법 대북송금 의혹은 사법 리스크 양대 축 중 하나다. 검찰은 경기도와 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 쌍방울의 커넥션을 비롯해 안 아무개 아태협 회장과 쌍방울 임직원을 둘러싼 대북송금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대북송금 의혹 외에도 수사범위를 확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쌍방울이 중국 현지 공장에서 북한 노동자를 고용했다는 의혹이다. 11월 24일 채널A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쌍방울 관계자들로부터 “2019년 중국 현지에서 북한 사람들을 고용했다”는 진술과 관련 문건을 확보했다. 북한 노동자를 고용했다는 의혹 중심엔 길림 트라이 공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9년은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중국 현지에서 북한 고위급 관계자와 접촉해 대북사업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진 시기다. 북한 인력 고용을 주선한 핵심 인물로는 안 아무개 아태협 회장이 거론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북한 노동자를 고용한 시점에 따라 유엔 대북제재 위반 소지 가능성도 제기된다. 채널A에 따르면 쌍방울 측은 “시기와 지역을 막론하고 중국 공장에서 북한 사람을 고용한 적은 없다”고 했다.
일요신문 취재에 따르면 쌍방울 측 해명에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훈춘 현지 사정에 밝은 유력 대북 소식통은 “쌍방울은 바보가 아니”라면서 “아무리 검찰이라도 길림 트라이 공장에 북한 노동자를 직접 고용한 사례는 찾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이 소식통은 “쌍방울은 그간 북한과 협력한 내공이 적지 않다”면서 “보다 고차원적인 방법으로 북한 노동자를 활용했다”고 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쌍방울이 북한 노동자를 활용한 방식은 시기별로 다른 양상을 띤 것으로 알려졌다. 기준점은 유엔 대북제재(안보리 결의 2375호·2397호)가 본격 발효된 2017년이다. 소식통은 “쌍방울은 중국 기업에 외주를 줘 상품을 생산했는데, 외주를 준 중국 기업들은 북한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기업들이었다”면서 “2017년 대북제재를 전후로 그 양상은 다르게 나타났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2017년 이전까지 쌍방울이 외주를 맡긴 중국기업의 생산 공장은 북한 현지에 있었다”면서 “북한 나진 현지에서 북한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중국기업에 외주를 맡겨 상품을 생산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쌍방울이 중국 기업에 상품 생산 관련 외주를 맡기면, 해당 기업이 운영하는 북한 나진시 소재 공장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상품을 만들었다. 길림 트라이에선 부장급 직원을 북한 현지 공장에 파견해 생산 상품에 하자가 없는지 검수를 하러 갔다. 검수를 하러 파견된 길림 트라이 직원은 ‘조선어’가 가능하면서 북한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조선족 출신으로 주로 구성됐다. 당시 파견됐던 조선족 출신 직원들은 한 번 갈 때마다 1개월에서 2개월 정도 북한에 체류하며 현지에서 상품 검수를 진두지휘했다.”
2017년 이전 북한에서 길림 트라이 상품을 만들어 조달하는 조치는 남북 당국 간 합의 아래 이뤄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길림 트라이 사정에 정통한 조선족 A 씨는 “옛날에 광명성(김정일) 때부터 조선(북한) 관공서가 한국하고 타협해서 옷을 만들었다”고 했다. A 씨는 “예전엔 나진·선봉에서 쌍방울 옷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못한다”고 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2017년 유엔 대북제재 국면이 본격화한 뒤에도 길림 트라이는 중국 기업에 외주를 맡겨 상품을 위탁 생산했다. 다만 제재 국면 이후엔 북한이 아니라 훈춘에서 상품 위탁생산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훈춘 현지에서 활동했던 사업가 B 씨는 “유엔 대북제재 국면 이후 쌍방울이 길림 트라이 제품 위탁생산 및 조달 방식을 바꿨다”고 했다. B 씨는 “중국 훈춘에서 북한 노동자를 고용한 중국 공장에 외주를 맡겨 길림 트라이 제품을 위탁 생산했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기존 북한으로 파견됐던 쌍방울 소속 조선족 검수자들은 이제 북한까지 갈 필요 없이 중국 현지 외주 기업 공장에서 북한 노동자가 만든 쌍방울 제품을 검수했다. 길림 트라이에서 20여 년간 근무하며 임원까지 된 한국인 임직원이 있는데, 그라면 모든 과정을 알고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 활동했던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과거 길림 트라이가 잘나갈 당시엔 수천 명을 고용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면서 “하지만 2010년 이후 중국 내 인건비가 치솟으며 점차 인력이 줄었고, 현지에서 듣기론 지금 직원 수가 몇 백 명 규모까지 축소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중국 경제성장과 더불어 길림 트라이도 인건비 고민이 깊어진 부분이 있었다”고 전했다.
앞서의 대북 소식통은 “쌍방울이 북한 노동자를 고용한 중국 기업에 외주를 줘 위탁생산을 한 부분은 대북제재 위반 소지가 있다”면서 “2022년까지도 현지에 소문이 많이 돌았던 부분”이라고 했다. 소식통은 “쌍방울은 북한 노동자를 직접 고용한 것이 아니라 활용한 것”이라면서 “쌍방울 소속 검품 담당자가 북한 노동자가 고용된 공장에 파견된다. 북한 노동자 고용 여부를 분명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 노동자가 위탁 생산을 하면 인건비가 저렴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 현지에서 중국 노동자와 북한 노동자 사이 임금 격차는 2배에서 3배 정도가 난다. 생산 원가 100~200원 차이로 사업에 성패가 갈리기도 하는 것이 방직공장이다. 그런데 임금 격차가 이 정도로까지 크게 난다면 기업 입장에선 어떻게든 북한 노동자를 활용하고 싶을 수밖에 없다.”
그는 “북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기업 상품을 만들고 있는지를 모른다”면서 “상표 부착 등 마감 및 포장 과정은 다른 공장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훈춘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훈춘엔 여전히 수많은 북한 노동자들이 발이 묶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통은 “현재 훈춘에 체류 중인 여성 노동자의 경우는 의류 공장에서 일하는 방직공의 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전했다.
12월 9일 일요신문은 쌍방울에 길림 트라이 관련 생산 위탁 외주 관련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다. 쌍방울 측은 “당시 실무를 담당했던 직원이 없고, 담당 부서 쪽 확인을 해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정보 취합에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쌍방울 측은 길림 트라이 공장에 북한 노동자를 직접 고용했는지 여부엔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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