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개 공공기관 중 상당수 부채 압박 시달려…유관기관 있음에도 마구잡이 발의, 정부 부정적 입장
지난 문재인 정부 5년간 정부부처 산하 공공기관은 18개가 신설됐다.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현재 운영 중인 공공기관은 350개다. △공기업 36개 △준정부기관 94개 △기타 공공기관 220개 등이다. 공공기관은 2012년 이명박 정부 288개, 2016년 박근혜 정부 321개로 꾸준히 상승세를 보였다.
공공기관 신설로 인해 인력과 부채도 증가했다. 올해 5월 기준 공공기관 종사자는 44만 9000명으로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33만 4000명)보다 11만 5000명이 늘었다. 부채 규모는 2021년 말 583조 원으로 2016년 말(499조 4000억 원)보다 84조 원가량 늘어났다. 공공기관 인건비 등으로 부채 규모가 늘어나는 양상이다.
공공기관은 정부 자산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2021 회계연도 공공기관 결산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350개 공공기관 중 3개 은행형 공공기관(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중소기업은행)을 제외한 347개 기관의 자산 규모는 969조 원이다. 정부 총 자산의 78%에 달하는 수치다.
윤석열 정부가 공공기관 축소 방침을 정한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공공기관에 소요되는 비용을 줄여 재정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공공기관 기능 축소, 정원 감축, 예산 삭감, 자산 매각 등을 추진 중이다. 조만간 공개될 공공기관 정원 감축 인원은 1만 명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7월 말 윤석열 정부가 내세웠던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에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여전히 공공기관 신설 입법을 제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재부 등 정부부처는 신설 공공기관이 기존의 공공기관과 업무가 중복된다는 등의 이유로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향후 정부와 국회가 공공기관 신설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일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12월 14일 기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올라온 공공기관 신설 법안은 70개가량인 것으로 확인됐다.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 2021년 6월 25일 대표 발의한 ‘이순신재단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도 그중 하나다. 신 의원은 “이순신재단을 설립해 이순신의 근본정신을 널리 펴는 사업을 함으로써 우리 국가와 사회가 건강하게 되도록 진력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현재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연구·조사 및 기념사업 기관은 전국에 약 45개가량 있다. 문화재청 소속기관인 현충사관리소를 포함해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특정 위인의 선양을 위한 재단 설립 사례 역시 전무하다. 기재부는 “현충사관리소에서 이순신 장군의 선양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별도의 재단을 설치하는 것보다는 필요시 현충사관리소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별도의 법률에 따른 재단 설립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해당 법안에 반대 의견을 냈다.
행안부도 수용 불가 입장을 냈다. “국가에서 설립하는 이순신재단을 위하여 지방자치단체의 공유재산을 무상으로 대부하거나 사용·수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열악한 지방재정을 감안할 때 수용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주철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11월 19일 대표발의한 김치산업진흥원 설립 법안 역시 마찬가지다. 주 의원은 제안 이유에서 “전통식품인 김치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세계화를 촉진하기 위해 김치산업 역량을 집중 강화시켜 김치재료의 파종단계에서부터 생산·유통·수출홍보까지 책임지고 계획을 세우고 집행하는 전담기구를 설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세계김치연구소,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등 여러 유관 단체가 김치 연구개발(R&D) 및 수출 지원, 원료 수급 동향 파악을 수행 중이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김치산업진흥원을 설립할 경우 기존에 김치 사업을 수행하던 기관들과 사업 범위가 일부 중복되는 측면이 존재하기 때문에 기관 간 업무 범위를 사전에 조율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전봉민 국민의힘 의원의 한국치의학산업연구원 설립 법안 역시 공공기관의 중복 기능으로 기재부로부터 ‘불필요’ 검토 의견을 받았다. 전 의원은 2020년 9월 23일 ‘치의학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냈다. 치의학산업의 발전 기반을 조성하고 경쟁력을 강화하여 국민건강의 증진과 국가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게 법안 취지다.
해당 법안에 보건복지부와 기재부는 각각 일부수용, 불필요 입장을 냈다. 보건복지부는 “위원회에 대해서는 기존 관련 위원회 기능과의 중복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재부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등을 설립하여 치의학산업 등 보건산업 육성․진흥 등을 적극 지원 중”으로 “현행 보건산업 지원과의 중복성 여부, 타분야와의 형평성 논란 등이 제기될 우려가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치·인삼·태권도세계화진흥재단 역시 정부로부터 ‘불필요’ 평가를 받았다.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은 6월 28일 김치·인삼·태권도세계화진흥재단 설립 법안을 내놨다. 김치, 인삼, 태권도의 세계화를 통해 대한민국이 건강문화 자원부국으로서 세계 초일류 국가로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하는 취지다.
김치의 경우 △한식진흥원 △세계김치연구소, 인삼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한국인삼공사 △한국인삼협회 △고려인삼연합회가 담당하고 있다. 태권도는 △태권도진흥재단 △국기원이 유관기관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기획재정부, 농림축산식품부 등은 김치, 인삼, 태권도의 세계화·진흥·육성 등 업무는 개별법령에 따라 분야별 기존 유관기관 등에서 있으므로 제정안에 따른 별도 기관 신설은 불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임오경 민주당 의원이 2021년 11월 22일 대표발의한 한복진흥원 신설 법안도 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한복진흥센터, 한국한복진흥원 등이 있어 기존 기관과 중복된다는 지적이다. 문체위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기존의 기관을 통해서도 한복문화산업 진흥을 위한 각종 사업을 수행할 수 있으므로, 한복진흥원 신설은 기능이 중복될 우려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내놨다.
지역구 사업 민원 해결 등을 위해 입법권을 남용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공공기관 신설에 대한 제어 입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정일영 민주당 의원은 2021년 3월 22일 공공기관의 과도한 중복 신설을 막기 위해 기재위와 법안을 미리 협의하라는 취지의 국회법 개정안을 내놨다.
정 의원은 “공공기관은 설립과 운영에 상당한 국고가 소요되며 대규모 인력 및 시설이 요구돼, 공공기관 간 기능의 유사‧중복은 비효율을 초래한다”며 “민간에 이미 개방됐거나, 시장경합 가능성이 있는 서비스 등을 공공기관 신설을 통해 공적 부분이 독점하면 민간 분야를 위축시켜 시장기능 왜곡이 초래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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